“탄소 줄이려다 공장 세울 판”…철강 살리자는 K-스틸법, 반쪽짜리.....

[비즈니스 포커스]포스코 포항제철소 창고에 놓인 열연강판. 사진=포스코국내 철강산업의 탄소중립 전환을 전방위 지원하겠다며 공표된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특별법(K-스틸법)’이 6월 17일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1986년 철강공업육성법 폐지 이후 40년 만에 부활한 독자 특별법이라는 점에서 시장의 이목이 쏠렸다.제도적 틀은 마련됐으나 정작 자본시장과 산업 현장의 반응은 냉랭하다. 친환경 공정 전환의 핵심 열쇠인 ‘산업용 전기요금’ 지원 방안이 알맹이처럼 빠지며 반쪽짜리 입법이라는 비판이 지배적이다.대규모 세제 혜택과 공정거래법상 담합 규제 제외라는 파격 특례를 얹었으나 당장 공장을 돌릴 전력 비용 대책이 없다. 현장 일각에서 무용론까지 고개를 드는 실정이다. kWh당 181원…친환경으로 갈수록 망하는 전기로의 역설법안에서 전기요금 지원이 빠진 데는 구조적 이유가 있다. 한국전력의 누적 적자가 수십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철강 대기업에 전기료를 깎아주면 그 손실은 다른 산업용 요금이나 주택용 전기료 인상 압박으로 돌아온다.주택용 요금은 물가와 직결돼 조정 부담이 크다. 한전 재무구조 개선, 산업 경쟁력, 물가 관리가 동시에 얽혀 있어 어느 한쪽을 건드리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문제는 그사이 국내 철강사들의 기초체력이 바닥나고 있다는 사실이다.최근 4년간 산업용 전기요금은 kWh당 105.5원에서 181원대로 70% 이상 급등했다. 지난 4월 도입된 계절·시간대별 요금제 역시 철강사에 치명타를 입혔다. 태양광발전량이 많은 낮 시간대를 최대 16.9원 내리는 대신 저녁과 심야 시간대를 최대 5.1원 올리는 구조다.24시간 연속 가동이 필수적인 제철소 특성상 심야 요금 인상분이 고스란히 제조원가에 반영된다. 한국 산업용 전기요금이 180원대를 돌파하는 사이 글로벌 경쟁국들은 저전력 원가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112원대, 중국은 116원대에 불과하다.현대제철이 국내 투자를 보류하고 미국 루이지애나 전기로 투자를 전격 결단한 배경에도 이 같은 에너지 비용 격차가 자리한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탄소배출을 줄이려 투자할수록 공장 원가가 치솟는 역설도 현실화했다. 포스코는 최근 전남 광양에 6000억원을 투입해 연산 250만 톤 규모의 전기로를 구축하고 6월 상업 가동에 돌입했다. 석탄 대신 전기를 써서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구상이다.현재 전력비 수준에서 전기로 제품을 생산할 경우 기존 고로(용광로) 제품보다 쇳물 톤당 수만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업계에서 말하는 ‘그린 프리미엄’이 사실상 기업에 막대한 손실을 강요하는 ‘그린 페널티’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나온다.한국·미국·중국 산업용 전기요금 및 전기로 원가 비교. 그래픽=송영 기자 보완 입법 나섰지만…전기사업법 개정안도 ‘반쪽’국회는 보완 입법에 나섰다. 이상휘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수소환원제철 등 저탄소 공정에만 선택공급약관(특례요금)을 신설하고 전기요금의 3.2~3.7%를 차지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을 면제하는 내용의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K-스틸법의 치명적 공백이었던 에너지 비용 리스크를 정조준한 대책이다.현장의 시각은 여전히 회의적이다. 우선 비용 분담 주체가 불분명하다. 산업계 관계자는 “한전의 재무 개선 가이드라인과 정부의 물가안정 기조가 정면충돌하는 사안”이라며 “국민 정서상 대기업 제철소에 특혜성 전기료를 퍼준다는 프레임에 갇힐 경우 국회 문턱을 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전의 손실분을 메울 별도의 재정 보조금 투입이 전제되지 않는 한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이다.지원 범위의 편중성도 도마에 올랐다. 개정안은 감면 대상을 ‘수소를 활용해 탄소배출을 줄이는 기술’로 못 박았다. 이 경우 당장 가동을 시작한 포스코 광양 전기로나 현대제철, 동국제강이 운영 중인 기존 전기로 공정은 지원 대상에서 대거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포스코 광양제철소 전기로 준공식. 사진=연합뉴스수소환원제철 기술의 상용화 마지노선은 아무리 빨라도 2030년대 중반이다. 한 철강사 임원은 “10년 뒤에나 상용화될 수소 공정에만 혜택을 몰아주면 과도기를 버텨낼 제철소는 없다”고 말했다.송전망 인프라의 낙후성도 실효성을 갉아먹는 요인이다. 250만 톤 규모의 수소환원제철 설비 1기를 돌리려면 그린수소 생산과 용융 공정에 최소 1.25GW(기가와트)의 전력이 추가로 필요하다. 최신 원자력발전소 1기 발전량과 맞먹는 규모다.법안을 통해 요금을 아무리 깎아준다 한들 동해안과 호남 지역 제철소까지 이 막대한 전력을 끌어올 전력망이 없다면 전력 공급 자체가 불가능하다.지난해 2월 우여곡절 끝에 ‘국가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국회 문턱을 넘었으나, 막대한 재원 마련과 지자체·주민 반발에 발목이 잡혀 실제 송전망 구축 사업은 하세월이다. 전기를 싸게 주겠다는 법안과 전기를 보낼 길을 뚫겠다는 법안이 완전히 따로 노는 형국이다.동국제강 인천 전기로 공장. 사진=동국제강 7월 관세 폭탄에 통상 불확실성까지…대외 압박 가중수출 전선도 동시에 좁아지고 있다. 당장 7월 1일부터 유럽연합(EU) 철강 관세할당제도(TRQ)가 개편된다. 무관세 적용 물량이 3382만 톤에서 1835만 톤으로 45.7% 줄고 초과 물량 관세는 현행 25%에서 50%로 오른다.한국산 철강의 EU 수출 비중은 미국 다음이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무관세 물량 감축폭을 산술적 수준보다 줄이는 컨센서스를 확보했다고 밝혔다.이와 관련해 6월 30일, 정부는 협상 끝에 한국의 대(對)EU 철강 무관세 수출 쿼터 감소폭을 전체 평균인 46%보다 낮은 19.7% 수준으로 방어해냈다고 공식 발표하며 수출 충격 최소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정부의 협상 노력으로 절대적인 수치는 방어했으나, 쿼터 물량 자체가 감소한 상황에서 수출 채산성 악화와 시장 진입 장벽 강화라는 실질적인 통상 리스크는 여전히 국내 철강업계의 해결과제로 남게 됐다.포스코경영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철강 생산량은 24억5000만 톤으로 수요를 36% 초과했다. 중국 생산량은 11억4000만 톤으로 전체의 47%다. 내수 침체에 직면한 중국 베이징 당국이 밀어내기식 저가 수출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올 하반기 EU의 장벽 강화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맞물릴 경우 국내 철강업계는 사면초가에 빠질 공산이 크다.정부는 6월 말에서 7월 초 사이 철강 기업 지원 방안을 추가로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국가 재정 보조금 직접 투입이나 전력 인프라 조기 구축 같은 실효성 있는 조치가 함께 나오느냐가 관건이다.철강업계 관계자는 “전기로 전환과 수소환원제철의 본질은 결국 원가의 전기 요금화”라며 “7월 초 정부 대책에 파격적인 전력 원가 보전 방안이 포함되지 않으면 기업들이 K-스틸법의 일몰 시한인 2028년 전까지 수조원 규모의 친환경 투자를 이어갈 명분도 동력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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