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행은 가상에서, 품질은 디지털로… 미래 車 개발 전진기지

현대차그룹 남양연구소를 가다현대자동차그룹 남양기술연구소 내 노바 랩(NOVA Lab)에서 연구원들이 와이어카를 활용해 차량 기능과 제어기를 검증하고 있다. 와이어카는 차량의 전기·전자 시스템을 실물 하드웨어로 구현한 검증 플랫폼이다. 현대차그룹 제공천막에 가려진 연구용 차량들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곡면 스크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크린 앞에는 차량을 절반으로 잘라놓은 듯한 제네시스 G80 운전석이 놓여 있었다. 운전대(스티어링 휠)와 시트, 사이드미러까지 실제 차량과 비슷하게 구현한 ‘콕핏’이었다. 연구원이 올라타자 이내 콕핏은 레일을 따라 화면 정중앙으로 이동했다.가속페달을 지그시 밟자 270도 곡면 스크린에 가상의 남양 주행시험장이 펼쳐졌다. 도로를 1㎜ 단위까지 정밀하게 스캔해 경사와 노면의 요철, 아스팔트의 질감까지 옮겨놓은 공간이었다. 과속방지턱을 지날 땐 차체가 흔들렸고, 거친 비포장 노면의 미세한 떨림과 소음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콕핏은 상하, 좌우, 전후로 움직이며 G80의 주행 감각을 재현했다.지난 1일 찾은 경기도 화성시 현대자동차그룹 남양기술연구소는 디지털 전환 시대 완성차 연구·개발(R&D)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스튜디오에 선 정필영 주행성능컨셉개발팀 책임연구원은 “가상 환경에서 차량이나 부품의 특성을 입력하면 곧바로 주행 평가를 할 수 있다”며 “유럽·미국 등 해외 주요 도로도 데이터화해 승차감과 핸들링을 동시에 평가할 수 있어 경쟁사가 굉장히 놀라워했다”고 전했다. 시제품 차량을 만들어 시험장으로 가져가던 과정의 상당수가 가상공간으로 옮겨진 것이다.드라이빙 시뮬레이터가 가상으로 구현된 도로를 주행하고 있는 모습. 현대차그룹 제공현대차그룹에 따르면 기존 한 두달이 걸리던 주행 성능 검증은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를 통해 최대 3일까지 단축됐다. 현대차·기아가 2020년 이후 출시한 차량 대부분에도 이 시뮬레이터를 활용한 검증 과정이 적용됐다고 한다.복도를 따라 이동한 공간에선 차량의 치수 품질을 정밀 측정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노란색 로봇팔이 차량 문짝을 광학식 3D 스캐너로 훑었고, 3차원 측정 장비인 가느다란 센서침이 차량 뼈대의 주유구로 들어가 좌표를 하나씩 읽어냈다. 차량 한 대당 측정되는 포인트만 1000여개에 이른다. 디지털 측정센터(DMC)에서 만난 한진수 파이롯트품질검증팀 팀장은 “연관성 있는 포인트 간의 편차와 거리, 평행도를 계산해 품질을 판단한다”며 “600개 평가 항목이 있는 측정 체계는 양산 공장으로 이관돼 동일한 기준의 품질을 구현한다”고 설명했다. 센터 한편에서는 차량 문을 반복해 여닫는 작업도 진행됐다. 문이 닫히는 순간 충격이 집중되는 부분이 모니터에 붉게 표시됐고, 동시에 문짝의 변형 정도가 쉽게 확인됐다.디지털측정센터(DMC)에 구비된 광학식 3D 스캐너가 차체 수치를 측정하고 있는 장면. 현대차그룹 제공차량의 완성도를 데이터로 관리하는 공간을 지나자 ‘적층 제조’ 현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로봇 팔이 녹색 불꽃을 튀기며 금속 와이어를 녹였다. 금속은 한 층씩 쌓이며 서서히 차량 부품의 모습을 갖춰갔다. 별도의 금형 없이 이뤄지는 제작 과정이었다. 금속 분말을 레이저로 녹여 쌓는 설비도 눈에 띄었다. 세계 최초로 도입된 금속 적층 설비로 주조나 프레스로 만들 수 없는 복잡한 형상을 제작할 수 있다는 게 현대차그룹의 설명이다. 현장에선 적층 제조 기술로 복원한 현대차 포니의 부품도 전시돼 있었다.보안 구역으로 둘러싸인 마지막 공간인 ‘노바랩’(NOVA Lab)은 앞선 곳들과 분위기가 달랐다. 테스트 벤치 위로 제어기와 배선, 전장부품이 그대로 연결됐다. 이른바 ‘와이어카’로 차량 전체의 전기·전자 시스템을 실물 하드웨어로 구현한 검증 플랫폼이었다.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시대를 앞두고 차량의 복잡한 소프트웨어와 전장 시스템을 검증하는 게 와이어카의 핵심 역할이다. 김상연 파이롯트전장제어개발팀 파트장은 “완성차에서는 트림 내부의 제어기를 탈거하거나 회로를 분석하기 어렵지만, 와이어카에선 기본 기능들을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검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보안 구역을 빠져나오자 흩어져 있던 공간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됐다. 주행은 가상환경에서 먼저 이뤄졌고, 차체 품질은 디지털 측정값으로 확인됐으며, 차량 시스템 시험은 실차 없이 진행됐다. 서로 다른 공간처럼 보였지만 모두 데이터를 먼저 확보하고 검증하는 과정이었다. 남양기술연구소에서는 지금도 차보다 데이터가 먼저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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