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젠슨 황 다녀갔다”…취향 놀이터 된 요즘 지도 [비크닉]
![“여기 젠슨 황 다녀갔다”…취향 놀이터 된 요즘 지도 [비크닉]](https://imgnews.pstatic.net/image/025/2026/07/03/0003535119_001_20260703060118662.jpg?type=w800)
b.트렌드 지난달 5일,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국내 주요 기업 총수들의 깜짝 회동이 있던 날. 모임 장소로 서울 마포구의 한 삼겹살집이 알려지자 사람들이 몰려든 곳은 다름 아닌 지도 앱이다. 카카오 맵은 방문 인증 없이도 리뷰를 남길 수 있어 “미리 성지 순례하고 갑니다”라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인터넷 아저씨(이해진 네이버 의장)가 고기 쏜다고 해서 들렀음”처럼 회장을 빙자한 댓글이 올라오며 리뷰란은 순식간에 하나의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트) 놀이터가 됐다. 지난 6월 5일, 서울 마포구 한 고깃집에서 열린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의 회식은 카카오맵의 장소 리뷰에서 밈으로 회자되며 인기를 끌었다. 사진 중앙포토, 카카오맵 캡처 이런 현상은 일회성이 아니다. 지난해 젠슨 황의 이른바 ‘깐부치킨’ 회동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유명인의 방문 소식이 알려질 때마다 지도 앱에는 인증과 패러디가 이어졌고, 이용자들은 댓글을 읽기 위해 지도를 찾는다. 이처럼 요즘 지도는 단순히 목적지를 찾아가기 위한 도구에 머무르지 않는다. 유명인이 방문했던 장소를 성지 순례하듯 들르고 농담 섞인 리뷰를 쓰며 즐기는, 일종의 놀이터이자 취향을 탐험하는 콘텐트로 진화하고 있다. 두아리파와 구글맵의 협업으로 탄생한 '두아스 리스트'. 그가 저장해둔 전 세계 맛집이나 바, 서점이나 미술관 등 문화 공간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google maps 캡처 이런 변화는 유명인의 ‘취향 지도’에서도 나타난다. 지난 5월, 영국 팝스타 두아 리파는 전 세계 투어를 다니면서 저장해 둔 장소들을 지도 서비스 ‘구글 지도’에 공개했다. 리스트를 보면 런던·LA·뉴욕·도쿄 등 주요 도시마다 약 10곳의 추천 장소가 담겼다. 이 프로젝트는 두아 리파가 운영하는 콘텐트 플랫폼인 ‘서비스95(service 95)’와 구글 지도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평소 책 마니아로 알려진 그는 서비스95를 통해 읽을 책과 음악, 여행지 등 자신의 취향을 꾸준히 소개해왔다. 이번에는 그 리스트를 ‘지도’로 옮겨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따라가 보는 경험을 제안한 것이다. 미국 등지에서 활성화된 애플 맵스는 배우, 가수, 래퍼 등 유명인을 내세워 그들의 애착 공간을 소개하는 '아이 저스트 러브' 시리즈를 지난해 선보였다. 사진 apple maps 캡처 경쟁사인 ‘애플 지도’ 역시 인물 중심의 장소 선별에 적극적이다. 미국에서 서비스 중인 ‘아이 저스트 러브(I Just Love)’ 시리즈는 유명인이 즐겨 찾는 장소를 소개한다. 드라마 ‘모던 패밀리’의 제시 테일러 퍼거슨이 자주 가는 미국 LA 지역 식당이나 가수 리타 오라가 웰니스를 위해 찾는 장소 등이다. 지도 서비스가 유명인의 장소를 선별해 제안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단순히 ‘어디로 갈까’를 넘어 ‘누군가처럼 경험해 보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하면서 지도 서비스의 체류 시간과 충성도를 늘리려는 전략이다. 가수 성시경의 유튜브 채널 '먹을텐데' 맛집 지도. 매회 소개하는 식당이 인기를 끌며 팬들이 자체적으로 영상 속 장소를 지도에 정리해 공유하거나, 자체 앱 서비스에서 테마 리스트로 다루기도 한다. 사진 유튜브플레이스 캡처 취향에 이어 관심사도 지도 위에 모이고 있다. 가성비 맛집을 소개하며 한 달 새 누적 이용자 100만 명을 기록한 ‘거지맵’의 성공이 대표적이다. 이후 최근 골칫거리로 떠오른 러브버그 출몰 지역을 한눈에 보여주는 ‘러브버그맵’, 야외 테이블 식사가 가능한 식당을 모은 ‘야장앱’, 반려동물 전용 병원과 동반 가능한 음식점 등을 모은 ‘집사맵’ 등이 잇따라 등장했다. 지금은 삭제됐지만, 국회의원들의 법인카드 사용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든 ‘국회의원 맛집 지도’도 화제가 됐다. 강아지와 고양이 반려인들을 위한 지도 서비스 '집사맵'. 병원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동반식당, 팬션, 미용, 놀이터, 실종 신고까지 다양한 정보를 아우르는 플랫폼을 그리고 있다. 사진 집사맵 지난 5월 집사맵을 출시한 조원석 상상로드 대표는 “반려동물이 밤에 아플 때 쉽게 찾을 수 있는 병원 지도의 필요성을 느껴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동반 식당이나 실종 안내 등 다양한 기능까지 추가됐다”면서 “이제 지도 앱은 뚜렷한 목표 고객을 기반으로 필요한 정보를 한곳에 모아 제공하는 올인원 서비스로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자체 지도 앱이 잇따라 등장한 배경에는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가 숨은 공신으로 자리 잡는다. ‘코로나 맵’처럼 특정 주제의 지도는 이전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문가가 아니라도 앱을 출시할 수 있을 만큼 개발 문턱이 크게 낮아졌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일반인도 몇 주 사이에 뚝딱 지도를 만들 수 있을 정도다. 특히 마케팅 업계에서 지도가 브랜드의 세계관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스토리텔링 도구가 됐다. 지난 5월, 교보문고가 선보인 ‘교보갔다 가볼지도’는 대구점과 울산점 팝업에 맞춰 제작한 지역 특화 지도다. 직원들이 직접 추천한 서점 주변 장소를 담았다. 서점을 하나의 문화 거점으로 보고 주변 지역과 경험까지 하나의 문화 지형으로 엮어냈다. 지난 5월 교보문고 대구점과 울산점에서 열린 '교보문고X발란사' 팝업에서는 로컬 지도를 선보였다. 여행의 시작이 지역 서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지점 직원의 아이디어와 본사의 마케팅 및 디자인 지원이 더해진 결과다. 사진 교보문고 최근 개봉한 영화 ‘백룸’은 작품에 등장하는 기묘하고 낯선 공간인 ‘리미널 스페이스(liminal space·통로 및 경계 공간)’만 모은 ‘백룸 맵’을 공개했다. 이 지도는 배급사 바이포엠 스튜디오가 영화 홍보의 목적으로 만들었다. 폐공장이나 텅 빈 쇼핑몰처럼 영화 속 공포 공간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 백여 곳이 소개돼 있다. 작품의 세계관을 지도에 옮겨 실제 체험까지 연결하려는 시도다. 영화 백룸은 이용자들의 제보를 바탕으로 구성하는 오픈형 지도로 리미널 스페이스의 위치와 접근 방식, 공포도, 안전 등급까지 공유한다. 사진 백룸맵 요즘 지도의 경쟁 상대는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일지도 모른다. SNS와 커뮤니티, 콘텐트 플랫폼의 역할까지 일부 흡수하며 이용자들의 소비 시간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종우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는 “궁금한 게 있으면 포털이나 SNS를 검색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취향이 비슷하거나 선망하는 이들의 선별 공간을 따르는 추세”라면서 “지도 서비스의 부상은 경험 공유를 넘어 선택 자체를 간편하게 해결하려는 움직임”이라고 설명했다. ‘교보갔다 가볼지도’를 기획한 박정남 교보문고 점포 마케팅팀장은 “매장 한 곳만 찾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주변까지 함께 경험할 때 브랜드 각인 효과가 높아지는 것 같다”며 “가고 싶은 장소를 저장해 두고 도장 깨기를 하듯 방문하는 젊은 세대의 지도 사용법과 남다른 취향을 발견하려는 수요가 맞물리면서 지도 사용법도 변화하는 중”이라고 분석했다. 트렌드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가치를 반영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모호함을 밝히는 한줄기 단서가 되기도 하고요. 비크닉이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의미 있는 트렌드를 건져 올립니다.
원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