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전북인] '자랑스런 전북인상' 수상한 (주)인탑스 김재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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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chevron_right 사회 chevron_right 사회일반 일반기사[뛰는 전북인] '자랑스런 전북인상' 수상한 (주)인탑스 김재경 회장 "새해 창사 30주년 '수구초심'의 자세로 고향발전에 기여할 터" 재경 전라북도민회(회장 송현섭)의 제7회 '자랑스런 전북인 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재경 ㈜인탑스 회장(63)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의 사업가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와 함께 '올해의 자랑스런 전북인'이 된 김 회장은 각고의 노력끝에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뚝심이 돋보인다. 하지만 김 회장은 덕장(德將)이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두드러진다. 김 회장을 통해 유능제강(柔能制剛)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되새길 수 있다. 김 회장은 자랑스런 전북인상 수상에 대해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며 잠시도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그는 "그 어떤 상보다 뜻깊은 상을 주신 동향 선후배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면서 "재경 전북도민들의 구심체가 되어 도민의 단결과 결속을 이끌어 오신 도민회와 관계자 여러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자랑스런 전북인상 수상이 과분한 영예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그동안 기업을 경영하는 한길만 걷다보니 전북도민들의 발전을 위해 이렇다 할 만한 업적이 없었는데도 큰 상을 수상하게 돼 송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자랑스런 전북인상 을 앞으로 도민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미력하나마 성심성의껏 도민의 안녕과 전북발전을 위해 힘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근면성실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경영자로 유명하다. 지난 30여년동안 하루평균 수면시간을 네시간으로 줄인 채 나머지 시간을 기업경영에 전력을 다했다. 그는 그동안의 회사경영 철학을 묻는 질문에 "사람·자금·일의 삼박자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경영의 기본"이라면서 "'기본에 충실한 기업만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한시도 잊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영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인간적인 매력, 인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내년 7월 1일이면 ㈜인탑스가 창사 30주년을 맞게 됩니다. 그동안 종업원들과 노사문제 한건 없이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이같은 배경에는 저 스스로 모든 일을 종업원 입장에 서서 먼저 실행에 옮기는 솔선수범과 인덕을 베풀기 위한 노력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실 오수에서 8남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난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은 아니었지만 고교 1학년때부터 내힘으로 학비를 벌었을 만큼 자립심이 강했다"면서 "고교시절 선생님의 구두를 닦아 학비를 해결했는데 태어나 처음 해본 아르바이트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학창시절 리어커 과일장사를 하거나 공사판에서 노동일도 해봤습니다. 그렇게 벌은 돈으로 등록금을 못내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지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내 인생은 내가 개척하자'는 생각이 굳어진 것같습니다" 전주제일고(전주상고)와 한양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지난 1974년 수십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플랜트제조 중견기업이었던 신화공업에 입사했고, 직장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1981년 ㈜인탑스의 전신인 신영화학공업사를 설립했다. 그는 스스로도 "일욕심이 많다"고 말한다. 그는 "직장생활 당시 관련이 없는 부서의 일도 억지로 만들어 일을 하곤 했었다"면서 "아예 회사에 야전침대를 가져다 놓고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생활을 하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특유의 성실함으로 앞세워 ㈜인탑스를 국내에서 손꼽히는 강소기업으로 키워낸 그에게도 아찔했던 순간이 있었지만, 현장경험에서 얻은 냉철한 판단력을 앞세워 위기를 정면돌파했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지난 1984년 서울 영등포에서 현재의 안양으로 사업장을 확장 이전할 때였어요. 주거래업체가 휴대용 녹음기 수출업체였는데, 당시 이 업체가 노사대립으로 인한 부도가 나면서 덩달아 ㈜인탑스도 자금부족 등 최악의 상태에 시달려야 했어요. 다행히 같은 해 삼성전자 납품업체로 선정되면서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삼성전자와 손잡으면서 본격적으로 휴대전화 부품제조사업에 참여하게 됐지만, 당시만 해도 휴대전화시장이 어떻게 펼쳐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어요" 그는 "당시 고심끝에 사력을 휴대전화사업에 집중시켰고, 지난 1993년 안양 본사에 주요부서만 남긴 채 공장설비와 인력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가 위치한 구미로 이전시키는 결단을 내렸다"면서 "돌이켜보면 물류 이동시간 단축과 비용감축을 위한 생산기지 이전 결정이 었는데 ㈜인탑스를 급성장시킨 추동력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그동안 고향의 친지와 선후배들로부터 많은 가르침과 도움을 받았으면서도 우리 지역을 위해 기여한 것은 많지 않았다는 자책감을 느낀다"라면서 "그동안 일궈왔던 회사를 영속할 수 있는 기업으로 만드는 것과 고향의 발전을 위해 물심양면 기여를 하는 것이 앞으로 해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앞으로는 마음의 빚을 갚겠다는 생각을 앞세워 수구초심을 가슴속에 새길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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