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발 돈잔치’는 누구의 몫이어야 하는가

손현주의 AI 인류학(13) AI 반도체 호황이 던진 새로운 분배의 질문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천문학적 성과급은 AI가 창출한 막대한 초과이윤을 누구에게, 어떤 기준으로 나눌 것인지에 대한 논란을 촉발했다. SK하이닉스 홍보영상 갈무리수원의 한 사업장 구내식당, 점심시간. 반도체(DS) 부문 김 과장과 가전·모바일(DX) 부문 이 과장이 같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식사한다. 같은 회사에 다니고, 비슷한 경력을 쌓아 왔으며, 같은 공간에서 일한다. 그러나 2027년 봄, 성과급 통보서를 받아 든 순간 두 사람의 현실은 달라진다. 한 사람은 연봉의 상당 부분에 해당하는 성과급에 환호하고, 다른 한 사람은 깊은 박탈감을 느낀다.이 장면은 단순한 기업 내부의 보상 격차를 보여주는 사례가 아니다. 문제는 개인의 성실함이나 노력의 차이에 있지 않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AI가 만들어내는 가치가 집중되는 산업과 그렇지 않은 산업의 차이가 보상의 격차로 나타난다. 결국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누구의 ‘노력’에 보상하고 있는가, 아니면 누구의 ‘위치’에 보상하고 있는가.최근 SK하이닉스 직원의 예상 성과급이 6억~7억원에 육박하고,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이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을 제도화했다는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언론은 이를 ‘AI 돈잔치’라고 부른다. 이러한 성과급 잔치는 단순히 특정 기업의 호황을 넘어, 한국 사회에 의사 집단에 버금가는 새로운 ‘초고연봉 노동자 집단’의 등장을 예고한다. 그러나 진짜 쟁점은 성과급 규모 자체가 아니다. AI가 창출한 막대한 초과이윤을 누구에게, 어떤 기준으로 나눌 것인가.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질문에 대한 합의를 아직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성장은 자동으로 분배되지 않는다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솔로가 말한 생산성 역설은 정보기술(IT)에 대한 투자가 늘어났음에도 경제 전반의 생산성과 성장률이 기대만큼 높아지지 않는 현상을 가리킨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한 역설은 조금 다르다. 기술은 실제로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있다. 문제는 생산성 향상의 결실이 누구에게 돌아가느냐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생산성과 소득의 디커플링(decoupling)’이라고 부른다. 파이는 커지지만, 그 과실은 점점 더 소수에게 집중되는 현상이다.한국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수요에 힘입어 사상 최대 수준의 실적을 기록했지만, 같은 시기 제조업 전반의 고용은 오히려 감소했다. 1인당 GDP는 4만달러에 근접했지만, 상당수 근로자는 평균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득을 받고 있다. 문제는 단순한 통계상의 불균형이 아니다. 같은 조직 안에서도 성장의 혜택이 다르게 배분되면서 ‘우리는 함께 성장하고 있다’라는 공동체적 감각이 약화하고 있다는 점이다.이것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앤트로픽 CEO 다리오 아모데이는 2026년 발표한 ‘기하급수적 AI 시대의 정책’에서 AI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성장 엔진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그는 경제성장이 가속될수록 편익의 분배와 부의 공정성은 오히려 더 어려운 과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AI는 막대한 부를 창출할 수 있지만, 그 혜택이 사회 전체에 고르게 돌아간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국제통화기금(IMF)은 생성형 AI가 전 세계 고용의 약 40%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으며, 특히 고소득 국가에서는 최대 60%의 일자리가 AI에 노출될 것으로 분석하였다. IMF는 AI가 생산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지만, 적절한 정책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노동수요 감소와 노동소득 비중 하락, 그리고 소득 불평등 심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실제로 2024년 미국에서는 AI 스타트업을 통해 19명의 신규 억만장자가 탄생했고, 이들의 자산 규모는 총 590억달러(한화 약 80조원)에 달했다. 이 숫자들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부의 증가가 아니다. 이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얼마나 성장할 것인가’가 아니라 ‘그 성장의 과실을 누구와 어떻게 나눌 것인가’라는 점이다.초과이윤에 대한 기여도를 어디까지 고려하느냐에 따라 성과급 논쟁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두가지로 갈린다. 사진은 삼성전자 홍보영상모두가 만들고, 소수가 가져간다성과급 논쟁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정당한 보상론이다. 성과를 낸 사업부와 직원이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것은 시장경제의 원리이며, 이를 제한하면 혁신의 동력이 약화한다는 주장이다. 위험을 감수한 투자와 성과에 대한 보상이 투자자와 구성원에게 돌아가는 것은 분명 타당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 논리가 놓치고 있는 질문이 있다. 그 성과는 과연 그 기업만의 것인가.사회 환원론은 다른 답을 내놓는다. AI와 반도체 기업이 거둔 막대한 초과이윤은 특정 기업과 개인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공교육은 인재를 길러냈고, 국가는 인프라를 구축했으며, 공공 연구개발은 핵심 기술의 토대를 제공했다. 삼성전자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선도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정부의 전략적 산업 육성과 국가적 지원이 존재했다. 그렇다면 그 토대 위에서 창출된 초과이윤의 일부는 사회와 공유되어야 하지 않을까.이 주장은 단순한 도덕적 호소에 머물지 않는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거대 기술 기업의 데이터 독점과 플랫폼 지배력이 새로운 형태의 지대(rent)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대란 혁신의 결과라기보다 독점적 위치와 시장 지배력에서 발생하는 초과수익을 의미한다.AI 산업은 이러한 지대의 성격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생성형 AI가 학습하는 데이터의 상당 부분은 수억명의 인터넷 이용자들이 만든 글과 이미지, 댓글, 지식과 경험이다. 그러나 그 경제적 가치는 데이터를 생산한 개인보다 이를 수집하고 활용한 기업에 집중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플랫폼 레딧(Reddit)이다. 레딧은 이용자들이 생산한 데이터를 AI 기업에 제공해 수억달러 규모의 라이선스 수익을 올렸지만, 콘텐츠를 만든 이용자들에게는 사실상 아무런 경제적 보상이 돌아가지 않았다.결국 문제의 핵심은 데이터만이 아니다. 한 사회가 누구의 기여를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하고, 누구의 기여를 당연한 배경으로 취급하는가의 문제다. AI 시대의 초과이윤은 수많은 시민이 제공한 데이터와 공공의 투자, 사회적 인프라 위에서 만들어진다. 그런데도 그 결실은 소수 기업과 투자자에게 집중된다. 모두가 만들었는데, 보상은 소수에게만 돌아가는 구조. 바로 여기에 오늘날 분배 논쟁의 출발점이 있다.성과급 문제는 ‘얼마나 더 줄 것인가’가 아니라 ‘공동체의 경계를 어디까지로 정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SK하이닉스 제공김 과장과 이 과장, 그들이 보지 못하는 사람들다시 구내식당으로 돌아가 보자. 김 과장은 올해 성과급으로 수억원에 해당하는 보너스를 받았다. 이 과장은 그렇지 못했다. 둘 사이의 거리는 분명 아프다. 그런데 이 식당에는 두 사람보다 더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있다. 협력업체와 하청업체 노동자들이다. 그들은 성과급 논쟁의 주인공도 아니고, 때로는 논쟁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기로 합의하고, 삼성전자 노조가 성과급 산정 기준의 장기 제도화를 요구하는 가운데, 현대자동차·카카오·LG유플러스·조선업계에서도 기업 성과를 노동자와 공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산업은 다르지만 흐름은 같다. 성과 보상을 회사의 시혜가 아니라 노동의 권리로 만들려는 움직임이다. 이는 분명 중요한 진전이다.그러나 원청 기업의 영업이익이 폭발적으로 늘어도 그 과실이 협력업체와 하청업체 노동자에게까지 전달되는 경우는 드물다. 같은 회사 안에서도 AI와 반도체 등 고수익 사업부와 그렇지 않은 사업부 사이에 보상 격차가 커지면서 이른바 ‘노노(勞勞) 갈등’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갈등의 바깥에는 성과 공유 논의에 참여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수많은 노동자가 존재한다.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문제가 단지 ‘얼마나 더 줄 것인가’의 산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우리 공동체의 경계를 어디까지로 정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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