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銀과 ‘코인 실험’ 나선 신한·우리...맞손 배경은

은행 10곳 자율협의체 유니카 설립원·유로화 코인 프로젝트 ‘판게아’ 참여하반기 원화코인 법제화 앞두고 실험 확대신한은행과 우리은행 등 국내 은행권이 유럽 은행들과 손잡고 원화·유로화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국경 간 송금 및 지급결제 실험에 나선다. 원화 코인 발행을 둘러싼 논의가 하반기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국내 은행들이 발행 주도권 경쟁을 넘어 글로벌 결제 인프라와의 연동 가능성을 먼저 검증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25일 금융계에 따르면 글로벌 블록체인 인프라 기업 체인링크는 23일(현지 시간)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포인트 제로 포럼(PZF) 2026’에서 유럽 37개 은행이 만든 민간 컨소시엄 키발리스와 한국의 유니카가 공동 참여하는 스테이블코인 협력 프로젝트 ‘판게아(Pangea)’를 출범한다고 밝혔다.판게아는 원화와 유로화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해 국경 간 외환거래와 지급결제 구조를 실시간에 가깝게 바꿀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프로젝트다. 기존 외환거래는 통상 거래 체결 이후 2영업일 뒤 결제가 이뤄지는 T+2 방식이지만 판게아는 이를 실시간 결제인 T+0 구조로 전환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양쪽 통화의 지급이 동시에 이뤄지는 지급대지급(PvP) 방식의 원자적 결제를 구현해 한쪽 결제만 먼저 이뤄지는 위험을 낮추겠다는 취지다.키발리스는 유럽 주요 은행들이 유로화 코인 발행을 위해 공동으로 추진하는 법인이다. 유럽연합(EU)이 2023년 가상화폐 규제 체계인 미카(MiCA)를 마련한 이후 유럽 은행권은 달러 스테이블코인 중심의 디지털 결제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유로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인프라를 준비해왔다. BNP파리바와 유니크레디트, 인테사산파올로 등 15개국 37개 금융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개별 은행이 저마다 코인을 발행할 경우 시장이 분절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유럽 단일 표준에 가까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유니카는 이 같은 유럽 은행권의 공동 대응 흐름에 맞춰 국내 은행권이 구성한 자율 협의체다. 신한은행과 전북은행, 케이뱅크, 페어스퀘어랩, 오픈블록체인인공지능협회(OBDIA)로 구성된 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프로젝트 방향과 글로벌 협력, 공동 대응 사항을 논의한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등 10여 곳의 국내 은행이 참여하고 있으며 추가 참여 기관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유니카에 참여하는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유럽 은행권이 키발리스를 중심으로 공동 협력 체계를 구축하면서 국내에서도 은행권의 의견을 모을 창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있었다”며 “유니카는 발행 법인이나 법적 컨소시엄이 아니라 스테이블코인 관련 글로벌 논의와 실증에 대응하기 위한 자율 협의체”라고 말했다.이번 프로젝트의 특징은 기존 은행 인프라를 전면 교체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판게아는 스위프트와 ISO 20022 등 기존 금융 메시징 체계를 블록체인 기반 정산 인프라와 연결하는 방식을 검토한다. 은행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는 국제 결제 메시지 체계는 유지하되 실제 정산 단계에서 원화·유로화 코인을 활용해 결제 속도와 효율성을 높이는 구조다. 체인링크는 데이터와 상호운용성, 오케스트레이션 표준을 제공하고 페어스퀘어랩은 온체인 외환거래 엔진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는다.금융계는 이번 프로젝트를 지난해 한일 간 스테이블코인 송금 실증으로 추진된 ‘프로젝트 팍스’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 프로젝트 팍스에는 신한은행과 NH농협은행, 케이뱅크가 참여했으며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 우리은행도 2단계 합류가 추진된 바 있다. 팍스가 한일 간 송금과 정산 가능성을 살펴본 실험이었다면 판게아는 이를 유럽으로 넓혀 원화 코인이 글로벌 통화·결제망과 연결될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성격이 강하다.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프로젝트 팍스를 통해 한일 간 스위프트망 연동과 실시간 정산 가능성을 일부 확인한 만큼 유럽으로 실험 범위를 넓히려는 측면이 있다”며 “전통 은행들이 기존 금융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블록체인과 스테이블코인을 접목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단계”라고 설명했다.은행권이 유럽과 손잡은 배경에는 원화 코인의 국제 활용 가능성을 조기에 검증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국내에서는 원화 코인 발행 주체와 규제 체계, 은행과 빅테크·가상화폐 사업자의 역할 분담을 놓고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원화 코인이 단순히 국내 결제 수단에 머물지 않고 해외 송금과 무역 결제, 외환 정산 등으로 확장되려면 해외 금융기관과의 연동 구조가 필수적이다. 미카를 바탕으로 제도적 틀을 먼저 마련한 유럽 은행권과의 협력은 국내 은행들이 글로벌 표준 논의에 올라탈 수 있는 시험대가 될 수 있다.올 하반기 원화 코인 법제화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유니카 출범이 은행권 내 주도권 경쟁에도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개별 은행이나 금융그룹 차원의 발행 법인 설립, 빅테크·가상화폐 거래소와의 제휴가 각각 추진되더라도 국경 간 결제와 외환 정산은 개별 사업자만으로 풀기 어려운 영역이기 때문이다. 유니카에서 축적한 기술 검증 결과와 글로벌 협력 경험이 향후 은행권 공동 인프라 논의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향후 복수의 발행 법인이나 다양한 사업 모델이 추진되더라도 유니카에서 축적한 결과물은 은행권이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이 논의될 것”이라며 “원화 코인 논의가 국내 발행 경쟁에만 머물지 않고 글로벌 결제망과 연결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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