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

일은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최기훈의 외국계기업 생존기] 등록 2026-07-04 오전 8:06:31 수정 2026-07-04 오전 8:06:31 가 가 페이스북 트위터 메일 프린트 KAKAO URL 외국 생활 경험없이 외국계 기업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국내 기업에서 10년 가까이 일한 뒤 30대 후반에 외국계 기업으로 옮겨 고위 임원까지 지낸 금융인은 흔치 않다. 저자가 들려주는 외국계 기업의 문화와 업무 방식, 그 안에서 부딪히고 배운 생생한 장면들은 외국계 기업 취업과 커리어 전환에 관심 있는 2030 독자들에게 현실적인 길잡이가 될 것이다. [편집자 주][최기훈 아자스쿨 이사] 미국계 회사에서 근무할 때 일본으로 출장을 가 도쿄 사무실에 갔다. 자리 배치가 전형적인 긴 T자 모양으로 돼 각 팀에서 직급이 낮은 사람들이 아래쪽에 앉고 상석에는 팀장이 있었다. 그보다 높은 부서장이나 본부장급은 창가에서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내 눈에 낯설었던 것은 20대, 30대 직원들과 함께 팀원 자리에 앉아 있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직원들이었는데 흰머리가 많아 50대 중반은 넘어 보였다.저녁 식사 자리에서 넌지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젊은 사람들과 같은 위치에서 일하는 것이 괜찮은지?” 질문을 했다. 돌아온 답은 “승진할 만큼 돋보이는 능력과 영어 실력을 갖추기가 쉽지 않고 그냥 팀원급 업무를 계속할 수 있으니 만족한다”였다. 저녁 자리가 끝나고 쏟아져 나오는 인파를 헤치며 지하철로 1시간 반 넘게 걸린다는 집으로 정장 차림에 가방을 메고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 금융권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50대 중반이면 부서장급 이상이 돼 실무에서 손을 떼고 여유있게 지내거나 승진하기에 부족하다고 평가받으면 회사로부터 눈총을 받고 퇴직 압박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외국계 기업에서는 젊은 사람도 능력이 있으면 최고경영자(CEO)나 임원으로 발탁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반대로 나이가 많더라도 배척하지 않고 맡겨진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면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연공서열 문화가 강한 일본에서 이런 모습이 무척 신기했다. 외국계도 기업에 따라 고용 문화가 다 같진 않은데 이 경우는 종신고용이라는 일본 전통과 장기근속을 중요시하는 오너의 철학이 있는 미국기업의 문화가 절묘하게 결합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미국 보스턴으로 출장을 갔을 때도 다양한 업무 영역에서 자부심을 보이며 일하는 60대 직원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나이는 특권도 아니고 약점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도 고려는 하겠지만 맡은 역할과 성과를 더 우선하는 것이다. 요즘은 우리나라 기업에서도 팀장과 팀원의 나이가 역전되는 모습이 흔하고 직급을 빼고 영어 이름으로 부르는 등 연공서열 문화의 단점을 극복하려는 시도도 많다.다른 측면에서 빠른 승진에 대해서도 좀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젊은 세대 입장에서는 능력을 발휘해 빨리 승진할 수 있는 외국계 기업을 선호한다. 그러나 자칫 충분히 준비되기 전에 큰 책임이 따르는 위치로 올라가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승진을 노리는 진취적인 사람일수록 ‘내가 의사결정권이 있으면 이렇게 할 텐데’라는 생각을 미리부터 많이 한다. 이런 일종의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것은 성장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막상 그 자리에 가서 의사결정을 하려고 하면 전에 미처 몰랐던 골치 아픈 변수를 고려해야 하고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직면해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조직에서는 잠재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더 넓어진 역할을 맡으면서 성장하는 측면을 함께 고려해서 조기 승진을 시킨 것이니 상당기간은 지켜볼 것이다. 일종의 유예 기간(grace period)이다. 하지만 승진후 시간이 상당히 지났는데도 계속 부족한 부분이 문제가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조직의 부정적 평가는 한 번 생기면 이를 지우고 만회하기가 쉽지 않다. 빠른 승진은 보상인 동시에 시험이다. 조직은 더이상 가능성만 보지 않고 판단력과 실제 결과에 주목할 것이다. 누구나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위로 올라갈수록 혼자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빠르게 줄어든다. 다행스러운 것은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있는 만큼 의외의 도움도 있다는 점이다. 어려울 때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나를 신뢰하는 동료가 있어야 한다. 평소에 내가 번거롭더라도 주변 동료들의 업무에 힘을 보태고 좋은 리더십으로 인간관계를 만들어왔다면 주위의 도움으로 무난히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함께 일하는 팀워크가 좋다는 평가도 덤으로 따라올 것이다. 팀워크는 때로는 개인의 능력 이상으로 중요한 평가항목이 되기도 한다.실력만큼 중요한 것이 조직 안의 신뢰자산이다. 승진에 대한 열망이 강할수록 이 부분을 소홀히 하고 자기 혼자만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기 쉽다. 빠르게 성과를 인정받지 못하면 초조해하기도 한다. 조직은 생각보다 꾸준히 구성원을 지켜보고 평가한다. 순리에 따라 잔이 어느 정도 충분히 찼을 때 더 큰 잔으로 옮겨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최기훈 이사 =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하나은행, 미래에셋증권, 피델리티자산운용,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SC제일은행 등 금융권에서 30여 년을 근무하고 지금은 국내 최대 체험학습 플랫폼 아자스쿨에서 최고전략책임자(CSO)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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