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에 답하다] 삼성의 ‘메모리 잔혹사’ 정말 끝났나
![[질문에 답하다] 삼성의 ‘메모리 잔혹사’ 정말 끝났나](https://imgnews.pstatic.net/image/029/2026/06/25/0003033748_001_20260625161113745.png?type=w800)
HBM3E 발열 논란에 엔비디아 공급망 진입 지연AI發 메모리 공급 부족… 과거와 다른 슈퍼사이클HBM4·ASIC 고객 확대에도 SK·중국 추격은 변수챗GPT가 그린 일러스트2024년 삼성전자는 자존심을 제대로 구겼다. 인공지능(AI) 시대 최대 수혜 제품으로 떠오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밀렸고, AI 반도체 최강자인 엔비디아 공급망에서도 좀처럼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한때 메모리 반도체의 절대 강자였던 삼성을 두고 "HBM 시대에 뒤처졌다"는 평가와 함께 "메모리 왕좌를 SK하이닉스에 내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하지만 불과 2년 만에 분위기가 달라졌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HBM4 양산 출하에 성공했고 차세대 제품인 HBM4E도 가장 먼저 샘플 공급에 나섰다. 시장에서는 이번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과거와 다르다는 분석도 나온다.삼성의 '메모리 잔혹사'는 정말 끝난 것일까.◇AI 시대 첫 승자는 삼성 아닌 SK하이닉스였다AI 열풍 초기 승자는 삼성전자가 아니었다.2022년 말 챗GPT 등장 이후 AI 모델 학습과 추론에 필요한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요가 폭증하면서 HBM은 메모리 시장의 핵심 제품으로 떠올랐다.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인 제품으로, AI 반도체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으로 꼽힌다.SK하이닉스는 발빠르게 HBM3와 HBM3E 시장을 선점하며 엔비디아 핵심 공급사로 자리 잡았다. 특히 2024년 업계 최초로 HBM3E 양산에 돌입하며 AI 메모리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했다. 당시 엔비디아 AI 가속기 공급망에서 SK하이닉스의 존재감은 절대적이었다.반면 삼성전자는 좀처럼 엔비디아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24년 5월 로이터통신은 삼성전자의 HBM3E 제품이 발열과 전력 소모 문제로 엔비디아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삼성은 곧바로 "다양한 글로벌 고객사와 테스트를 진행 중"이라고 해명했지만 시장 충격은 컸다. AI 시대 최대 고객인 엔비디아 공급망 진입이 지연되면서 삼성은 HBM 호황의 수혜를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업계에서는 "AI 시장 확대의 최대 수혜를 놓쳤다"는 평가가 나왔고, 일각에서는 "삼성이 메모리 주도권을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됐다.결과는 숫자로 나타났다.지난해 SK하이닉스는 사상 처음으로 D램 매출 기준 삼성전자를 앞질렀다. 삼성이 메모리 사업을 시작한 이후 사실상 처음 맞이한 상징적 패배였다.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졌던 '메모리=삼성' 공식이 흔들리기 시작한 순간이었다.◇이번 반도체 사이클은 뭐가 다를까지난 2017~2018년 슈퍼사이클 당시 삼성전자 반도체 영업이익은 연간 40조원을 넘어섰다.하지만 이후 중국 업체들의 증설과 수요 둔화가 겹치며 D램 가격은 급락했고, 메모리 업황은 다시 긴 침체기에 빠져들었다.그래서 시장에서는 지금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번에도 결국 똑같은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 메모리 업황은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며 대표적인 '치킨게임 산업'으로 불려왔다.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사이클이 과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본다. 가장 큰 차이는 수요의 성격이다.과거 메모리 시장은 스마트폰과 PC 판매가 성장을 이끌었다. 수요가 늘면 업체들은 곧바로 생산능력을 확대했고, 결국 공급 과잉과 가격 폭락으로 이어졌다. 반면 지금은 AI 데이터센터가 시장을 움직이고 있다.특히 HBM 수요가 폭증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주요 업체들은 생산라인 상당 부분을 HBM용 D램 생산에 투입하고 있다. 문제는 HBM 생산이 늘어날수록 범용 D램 생산 여력이 줄어든다는 점이다.과거에는 증설이 공급 부족을 해결했지만 지금은 HBM이 오히려 범용 메모리 공급을 잠식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실제로 최근 서버용 DDR5와 LPDDR5X 가격은 큰 폭의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범용 D램마저 공급 부족 조짐을 보이면서 메모리 업체들의 가격 협상력도 과거보다 크게 높아졌다.◇삼성의 반격 카드도 달라졌다삼성전자가 기대를 거는 부분도 여기에 있다.과거 삼성의 강점은 생산 규모였다. 하지만 HBM 시대에는 단순 생산능력보다 고객 맞춤형 설계와 패키징 기술이 중요해졌다.삼성전자는 올해 2월 세계 최초로 HBM4를 양산했고 최근에는 HBM4E 샘플도 가장 먼저 공급했다.또 HBM5에는 2나노 공정과 새로운 열관리 기술을 적용하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열관리 기술이다. 삼성전자는 이달 초 컴퓨텍스 2026에서 HBM5의 첫 실물 모형(목업)을 공개하고 차세대 열관리 기술인 'HPB(Heat Path Block)'를 처음 선보였다.업계에서는 HBM 적층 수가 늘어날수록 발열 문제가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는 만큼 HBM5 경쟁력의 핵심 역시 열관리 기술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과거 HBM3E 발열 논란으로 수세에 몰렸던 삼성이 이제는 열관리 기술을 앞세워 HBM5 경쟁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특히 삼성은 메모리와 파운드리, 패키징을 모두 보유한 세계 유일의 종합반도체기업(IDM)이라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최근 구글 차세대 텐서처리장치(TPU) 생산 협력설이 제기된 것도 이런 경쟁력과 무관하지 않다. AI 반도체가 고도화될수록 메모리와 연산칩, 패키징을 동시에 최적화하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브로드컴,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ASIC 업체 중심의 다변화된 고객 기반을 확보한 삼성전자의 내년 HBM 출하량이 큰 폭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도 "AI 시장에서 ASIC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삼성전자의 HBM 고객 기반이 확대될 것"이라며 "내년 HBM 출하량은 전년 대비 200% 이상 증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삼성의 메모리 잔혹사는 정말 끝난 걸까다만 삼성의 잔혹사가 끝났다고 단정하기에는 이르다.현재 HBM 시장 주도권은 여전히 SK하이닉스가 쥐고 있다. 엔비디아의 최대 메모리 공급사 지위도 유지하고 있다. HBM4와 HBM4E 시장에서도 양사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중국 변수도 여전하다. AI 수요 확대가 메모리 시장 성장세를 이끌고 있지만 중국 업체들의 기술 추격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D램 분야에서는 창신메모리(CXMT)가 공격적인 증설을 통해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CXMT의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이 지난해 3%대에서 올해 7% 안팎까지 상승한 것으로 보고 있다.낸드플래시에서는 양쯔메모리(YMTC)가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에도 불구하고 YMTC는 중국 내 주요 서버·PC 업체를 중심으로 공급을 확대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제품 대신 중국산 메모리를 채택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AI가 만들어낸 메모리 호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중국의 자급화 속도가 빨라질 경우 중장기적으로는 또 다른 공급 과잉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메모리 산업은 지난 30년간 수차례의 슈퍼사이클과 공급 과잉을 반복해왔다. 지금 시장이 주목하는 것은 삼성의 반격보다도 AI 시대에도 메모리가 과거처럼 공급 과잉 산업으로 되돌아갈 것인지 여부다.고영민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요 고객과의 장기공급계약(LTA)이 마무리 단계로 보이며 경쟁사 대비 높은 범용 제품 가격으로 협상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삼성전자는 이미 HBM4를 양산 중인 데 이어 HBM5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송재혁 삼성전자 최고기술책임자(CTO) 겸 반도체연구소장은 이달 초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컴퓨텍스 2026에서 기자들과 만나 "급변하는 AI 산업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메모리·파운드리·로직·패키징까지 아우르는 토탈 솔루션 경쟁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며 "종합 반도체 회사로서 삼성전자가 AI 시대를 충분히 뒷받침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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