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경색의 첫 타깃…‘코인의 시대’ 막 내리나

[긴축시대의 귀환]②비트코인·이더리움·리플 1년 새 반토막그랜섬 “실물 없는 투기 자산, 신음과 함께 사라질 것”일본 연금 기금은 디지털 자산 편입…제도권 진입 움직임도 6월 25일 서울 강남구 빗썸라운지 전광판에 비트코인 시세가 표시돼 있다.[사진 연합뉴스][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가상자산 시장이 가라앉고 있다. 지난해 10월 12만6000달러를 기록하며 연일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웠던 비트코인이 6만달러 안팎에서 횡보하고 있다. 국내 거래가격도 1억8000만원 수준에서 9000만원 선까지 떨어지며 반토막이 났다. 시가총액 2위 가상자산인 이더리움 역시 올해 들어서만 50% 가까이 하락했다. 3400원을 넘나들었던 엑스알피(리플)도 1300원 수준까지 쪼그라들었다.‘버블 예측의 대가’로 불리는 제러미 그랜섬은 6월26일(현지시간) 미국 소비자뉴스·비즈니스채널(CNBC) ‘스쿼크 박스’에 출연해 “비트코인은 쓸모없고 투기적인 자산”이라며 “앞으로 수년, 수십 년이 흐르면 비트코인은 서서히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했다. 그는 비트코인이 펑 하고 터지는 것이 아니라 나지막한 신음소리처럼 소멸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랜섬은 미국 보스턴의 자산운용사 GMO의 공동창업자다. 2000년 닷컴버블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시장의 대폭락장을 예견하며 이름을 알렸다.그랜섬이 비트코인의 미래를 어둡게 보는 것은 실물 경제에서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이 비트코인으로 저녁 식사를 사거나 슈퍼마켓에서 결제하는 등 진정한 거래를 하지도 않는다”며 “그저 사기꾼들이 자금 세탁을 하는 데 쓰인다”고 비판했다.일각에서는 글로벌 긴축 분위기가 가상자산 시장의 축소를 앞당겼다고 평가하고 있다. 불과 1~2년 전까지 글로벌 금융 시장을 지배했던 ‘무제한 유동성 공급’ 기조가 깨지고 돈의 가치와 금리가 높아지는 새로운 게임의 규칙이 적용되면서 위험 자산에 대한 투자자들의 회피 심리가 커졌다는 것이다. 다시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이른바 ‘킹 달러’의 시대가 오면서 상대적으로 훨씬 위험성이 크다고 평가되는 코인에서 투자자가 멀어지고 있다는 뜻이다.킹달러의 귀환, 위험 자산 기피에 코인 직격탄실제 전통적으로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고 양적긴축을 통해 시중의 돈을 회수하면 안전하고 높은 이자를 주는 국채나 정기예금으로 돈이 이동한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대로 위험도가 높은 자산은 포트폴리오에서 정리된다. 과거에는 채권과 대척점에 있는 주식이 정리 대상 1순위였다면 이제는 코인이 투자 위험성 기준으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면서 직격탄을 맞게 된 것이다.가상자산 업계의 실시간 자금 흐름을 분석하는 금융 데이터 플랫폼 파사이드인베스터스에 따르면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는 6월24일에 4억6900만달러, 25일 6억9100만달러, 26일 4억4400만달러가 순유출됐다. 사흘만에 16억1000만달러에 달한다.가상자산 가격을 끌어올렸던 배경 중 하나는 빚을 내서 투자하는 레버리지 자금이다. 코인 가격이 오를 것이란 전망이 많으면 빚을 내 투자하는 비중도 커지고 코인 가격이 오르면 뒤이어 다른 투자자들이 가세하며 가격을 밀어올린다. 그러면 다시 투자자들이 빚을 내 투자하면서 가격을 올리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금리가 치솟으면 위험 회피 심리로 코인 가격이 떨어지는데 여기에 이자 부담까지 커지면서 투자자들은 대출 상환을 위해 코인을 매도하게 된다. 가격 하락·매도·매도로 인한 가격 하락의 고리가 가상자산 시장을 위축시킨다. 이런 경우 새로운 자금의 유입도 사실상 차단되면서 시장의 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블록체인 기반 투표 애플리케이션 크라토스에 따르면 가상자산 시장 투자에 공포를 느낀다는 투자자 비율이 60%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크라토스는 앱 사용자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주간 설문조사(6월23일~25일) 결과 가상자산 투자 심리를 묻는 질문에 대한 응답 비율이 ▲공포 36.6% ▲극단적 공포 25.5% ▲중립 25.1% ▲낙관 10.5% ▲극단적 낙관 2.3%를 기록했다고 6월29일 밝혔다. 가상자산 투자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심리는 ‘낙관’과 ‘극단적 낙관’을 합쳐 12.8%에 불과했다. 주요 가상자산의 단기 전망을 묻는 질문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6월29일~7월5일 비트코인 가격 향방을 예상하는 질문에 ▲하락 37.2% ▲급락 22.7% ▲상승 13.6% ▲급등 3.2% ▲횡보 23.3% 수준이었다.제도권 자금 유입 ‘대체자산’으로의 가능성가상자산 시장 위축이 일시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전 세계 큰손들이 자산 포트폴리오를 재설정하는 과정에서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을 편입하고 투자를 늘리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가상자산 관련 제도 정비에 나서는 것도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글로벌 가상자산 전문 미디어 더블록에 따르면 일본 전국기업연금기금은 2026년 회계연도부터 전체 운용자산의 약 1%를 가상자산에 투자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가상자산을 편입한 ‘패시브 펀드’에 자금을 배분해 가상자산에도 투자하는 방식이다. 일본의 전국기업연금기금은 약 1200개의 중소기업이 가입하고 총 213억엔(약 1억3180만달러)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곳이다. 전국기업연금기금은 2025년 회계연도 기준으로 엔화 80%, 미국 달러 15%, 기타 통화 5% 수준으로 자산을 배분해왔다. 그런데 2026년 회계연도부터 엔화 비중을 70%로 낮추고 약 5%를 신흥국 통화와 가상자산을 배분한다는 계획이다.일본 의회도 6월 초 가상자산을 금융상품으로 분류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통과시켰다. 해당 법안은 참의원 승인을 거쳐 내년 시행될 전망이다. 또 일본 3대은행으로 꼽히는 MUFG 은행·미즈호은행·SMBC가 공동 발행한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상업 거래를 준비하는 등 코인 시장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 금융지주 SBI홀딩스 산하 SBI 신세이은행도 올해 하반기 예금을 맡긴 이용자를 대상으로 가상자산 보상 프로그램을 출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박성제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연금 자금은 안정성과 장기 운용을 중시하는 대표적인 자금”이라며 “이런 자금이 디지털 자산을 포트폴리오에 편입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디지털 자산이 단순 투기자산에서 대체자산의 한 축으로 논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박 연구원은 “투자 관점에서 일본 연금 자금의 본격 유입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제도권 자금의 접근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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