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 전장, 매대에서 플랫폼·AI로

글로벌 소비 접점 전쟁발견·신뢰·구매 경로가 승부 가른다“제품은 정말 좋은데, 왜 해외에서는 잘 안 팔릴까요?”문성주 예스아시아홀딩스 이사가 ‘글로벌 K뷰티 콘퍼런스 2026’에서 던진 질문이다. 이제 K뷰티의 성장은 제품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해외 소비자가 K뷰티를 어디서 발견하고, 어떤 콘텐츠로 신뢰하며, 어떤 플랫폼에서 사는지가 그만큼 중요해졌다. 리테일 매장, 이커머스 플랫폼, 숏폼 콘텐츠, B2B(기업과 기업 간 거래) 유통망, AI 쇼핑몰까지 소비자를 만나는 모든 길목이 K뷰티 전쟁터가 됐다.(1) 유통 플랫폼의 진화수출 넘어 ‘검증·큐레이션·물류’로첫 번째 전장은 유통 플랫폼이다. 과거 해외 진출은 제품을 수출하거나 현지 유통사에 입점하는 방식이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소비자 수요를 미리 검증하고, 큐레이션부터 물류, 오프라인 경험까지 한데 묶어 키우는 ‘플랫폼 역량’이 핵심으로 떠올랐다.이진희 올리브영 플랫폼사업총괄은 올리브영의 글로벌 사업을 네 갈래로 나눠 설명했다. 국내 오프라인, 국경을 넘는 온라인 직구 거래, 현지 온·오프라인 직접 진출, 그리고 해외 유통 업체를 상대로 한 B2B 사업이다. 첫 직접 진출 국가는 미국으로 잡았다. 세계 최대 뷰티 시장이자 K뷰티 수요가 가장 높은 곳이라는 판단에서다.올리브영은 미국 시장의 ‘빈틈’도 봤다. 미국 대형 뷰티 유통사가 매장 진열을 갈아엎는 주기는 약 12개월인데, 정작 K뷰티 트렌드는 약 4개월마다 바뀐다. 시장의 속도를 매장이 못 따라가는 셈이다. 이진희 총괄은 “다양해진 현지 소비자의 요구를 채우기엔 미국 대형 뷰티사의 상품 구성이 부족한 점에 주목했다”며 “파사데나 미국 1호점은 상품 수가 320여개에 이르고, 미국 전용 온라인몰과 캘리포니아 블루밍턴 물류센터까지 갖춰 차별점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예스아시아홀딩스의 전략은 ‘입점부터 하고 보자’가 아니라 ‘소비자에게 검증받은 뒤 넓히자’다. 우선 글로벌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플랫폼 ‘예스스타일’에서 소비자 반응과 초기 수요를 확인하고, 그 다음 B2B사업부를 통해 각국 유통 채널로 펼쳐나가는 구조다.예스스타일 월매출은 약 500억원대, 월간 이용자는 약 1800만명이다. 여기에 누적 1만8000개 이상 B2B 고객망을 갖춘 ABW가 붙어, 소비자 반응이 확인된 브랜드를 각국 리테일 채널로 빠르게 확장할 수 있다.이 모델의 위력은 실제 사례에서 드러난다. 예스스타일은 지난해 6월 닥터멜락신의 초기 성장 신호를 포착한 뒤 글로벌 유통 확대에 나섰고, 그 결과 매출이 6배 넘게 뛰었다. 닥터멜락신은 올해 1분기 틱톡숍 뷰티 부문 1위에 올랐다. ‘글로벌 K뷰티 콘퍼런스 2026’에서 이진희 올리브영 플랫폼사업총괄이 ‘올리브영 미국 진출 전략’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윤관식 기자)(2) 콘텐츠 커머스의 부상짧은 영상이 매대가 되는 시대두 번째 전장은 콘텐츠와 마케팅이다. 소비자는 더 이상 검색창에서만 제품을 찾지 않는다. 짧은 영상, 크리에이터 리뷰, 커뮤니티 대화, 오프라인 체험을 통해 제품을 발견하고 신뢰한다.손익규 틱톡코리아 이사는 틱톡숍의 작동 방식을 ‘콘텐츠 → 관심 → 구매 → 재생산’으로 이어지는 무한 루프에 빗댔다. 소비자는 물건을 사러 틱톡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재미있는 영상을 보러 들어온다. 그러다 우연히 제품을 발견하고, 영상 아래 장바구니 버튼을 눌러 구매한다. 그러면 또 다른 크리에이터가 “나도 써봤다”는 영상을 올리며 관심이 다시 번진다. 이른바 ‘발견형 커머스’가 틱톡숍의 핵심인 셈이다.규모를 보면 그 영향력이 가늠된다. 미국 틱톡의 월간 활성 이용자는 2억명을 웃돌고, 틱톡숍은 16개국에 진출했다. 현재 미국 틱톡숍에 들어와 있는 K뷰티 브랜드만 400곳이 넘는다. 손 이사가 제시한 성장 공식은 ‘ACE’다. 무엇을 앞세울지 정하는 상품 구성(Assortment), 구매를 끌어내는 콘텐츠(Content), 캠페인과 광고로 퍼뜨리는 확산 전략(Empowerment)의 앞 글자를 땄다. 그는 캠페인 기간에는 총거래액(GMV)이 평소의 3~5배까지 뛰는 만큼, 마케팅 일정에 맞춰 제품을 올리는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콘텐츠를 ‘브랜드를 키우는 시스템’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마케팅 기업 매들리메들리의 렘브란트 플로레스와 피터 필립 윙소 공동창업자는 “K뷰티가 이미 주류에 올라선 만큼, 제품 혁신이나 ‘메이드 인 코리아’ 이미지, 유통 확보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비슷한 성분, 제형, 반복되는 유명인 모델로는 더 이상 차별화가 어렵다는 것이다.이들이 내놓은 해법은 데이터와 현지 접점이다. 메가 인플루언서를 동원한 일회성 캠페인 대신, 브랜드마다 소비자 반응을 분석해 먹히는 메시지를 찾고, 이를 개별 인플루언서와 커뮤니티, 오프라인 체험으로 넓혀가는 방식이다. 특히 AI로 찍어낸 콘텐츠보다, 실제 사람이 제품을 써보며 준비 과정을 보여주는 ‘겟 레디 위드 미(외출 준비 과정을 함께 보여주는 영상 형식)’가 여전히 더 강한 신뢰를 얻는다고 봤다.(3) 브랜드 성장 인프라 경쟁바이럴 다음은 세계관·데이터·AI세 번째 전장은 브랜드 성장 인프라와 AI 접점이다. 한 번 터지는 바이럴보다, 브랜드 세계관과 현지화 전략, 그리고 반복할 수 있는 성공 공식을 만드는 일이 중요해졌다.엄인영 씨티케이 이사는 K뷰티가 ‘퍼스트 웨이브(첫 번째 성장 물결)의 정점’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으로 가는 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여전히 늘고 있지만, 증가율이 2024년 56%에서 지난해 16%로 뚝 떨어졌다는 것이다. 매출 자체는 오르니 잘되는 게 맞지만, 오르는 속도가 확연히 둔해졌다는 진단이다. 그는 이 변화를 “호기심을 부여하는 시대에서 신뢰를 선택하는 시대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근거 사례가 10년 전 중국 로드숍 시장이다. 중국 관광객 수요로 빠르게 컸지만, 사드 배치와 한한령 이후 성장 모델이 통째로 흔들렸다. 미국 소비자 역시 귀여운 패키지나 재미있는 제형, 가성비를 넘어 이제는 실제 효과와 과학적 근거를 따지기 시작했다. 그냥 내놓기만 하면 팔리던 방식은 한계에 다다랐다는 얘기다.이런 가운데 구다이글로벌은 여러 브랜드의 성공 방식을 회사 자산으로 쌓는 모델을 보여줬다. 박은정 구다이글로벌 IR팀장은 조선미녀, 티르티르, 스킨1004, 라운드랩 마케팅 성공 사례를 우선 소개했다. 일례로 티르티르는 색상폭이 좁던 K뷰티 쿠션을 확 넓혀 다양한 피부 톤을 겨냥했다.스킨1004는 필리핀 등 영어권 동남아를 테스트베드(시험 무대)로 삼아, 팔로워는 적어도 영향력 있는 ‘마이크로 인플루언서’에게 분기마다 3000건 넘게 제품을 보내 리뷰를 차곡차곡 모았다. 박 팀장은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판단하고, 성공 모델은 다른 자사 브랜드에 적용할 수 있는 성공 방정식을 만들려 한다”고 말했다. 참고로 구다이글로벌은 지난해 주요 브랜드 매출을 단순 합산하면 약 1조7000억원, 자체 매출 기준 해외 비중은 88%에 이른다.마지막 접점은 인공지능(AI)이다. 뷰티는 물론 소매 업계 전반에서 ‘AI 쇼핑 시대’를 준비하지 못한 브랜드는 소비자 접점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미국 기술 기업 뉴제너레이션의 해법은 ‘커머스 에이전트’다. 조너선 아레나 뉴제너레이션 공동창업자는 “고객이 자연어로 질문하면 웹사이트가 고객 의도를 이해하고 맞춤형 화면을 즉석에서 만드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브랜드 제품, 카탈로그, 성분, 정책, 멤버십 정보를 AI가 읽고 답할 수 있는 데이터 형태로 정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장보석 인턴기자][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65호(2026.06.24~06.30일자) 기사입니다][Copyright (c) 매경AX.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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