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거대 기업에 맡겨진 지역 균형발전
▲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소장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인공지능(AI) 경쟁 격화와 이를 뒷받침할 하드웨어 수요가 급증하자,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이익이 덩달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연간 규모가 아니라 분기 단위의 영업이익이 각각 50조원을 넘어 10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져 나온다. 심지어 짧았던 기존 반도체 호황 사이클에서 벗어나 앞으로 수년 동안 초호황이 유지될 거라는 극히 낙관적 전망마저 유행하고 있다. 이 현상은 증권시장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인데, 두 기업의 비중이 절반을 넘으며 사실상 주식시장을 좌우하는 중이다. 또한 노사협상에도 영향을 미쳐 노조의 성과급 요구를 불러일으켰다. 결국 지방선거가 끝나고 어수선해진 정국에서 두 기업은 앞으로 한국 정치와 경제지형을 완전히 뒤바꿀 중대한 정치 전략에 합류한다. 지난달 29일 이재명 대통령과 나란히 앉아 발표한 삼성의 2천655조원, SK의 2천100조원 투자 계획은 그 자체로 한국의 산업정책이자 국토 균형발전 정책이며 일자리 정책이자 에너지 정책이 됐다. ‘3대 메가프로젝트’라고 명명된 이 계획은 정부가 발표를 주도했지만 사실상 두 기업의 투자설명회라고 불러야 마땅했다. 두 기업은 수도권을 포함해 호남과 충청, 영남 등 전국의 모든 지역에 수십조 원에서 수백조 원을 투입해서 반도체 공장, 데이터센터를 포함한 AI 관련 제조 시설을 짓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여론이 주목한 대목은 호남에 무려 800조원 이상의 자본을 동원해 반도체 팹과 데이터센터를 짓겠다는 두 기업의 계획이다. 정부는 지난달 30일 별도로 광주에서 ‘서남권 첨단산업 발전 비전 국민보고회’를 열고, “SK는 약 470조원을 투자해 서남권에 반도체 메모리 메인 팹 2기 및 1기가와트(GW) 규모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삼성은 425조원을 호남에 투자해 서남권에 반도체 메모리 팹 2기 및 국가 AI 컴퓨팅센터 등을 구축한다”고 발표했다. 산업적 소외 지대가 돼 오랫동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호남 지역민들의 숙원사업이 일거에 해결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이 계획에 대한 여론과 미디어의 논쟁은 오직 ‘호남 대규모 투자’에 대한 호불호와 다양한 문제제기에 집중됐다. 물론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비수도권에 전략적 산업을 새로 일으키고 이를 위한 다양한 투자가 과감히 진행돼야 한다. 호남은 특히 더 필요성이 크다. 하지만 서남권을 포함해 전국에 대규모 반도체 투자와 데이터센터 투자에 가려진 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두 대기업의 일차적 투자 우선순위는 여전히 수도권이다. 삼성전자 투자 총액의 5분의 4는 평택과 용인에 들어간다. 문제제기가 컸던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이 그대로 강행될 뿐 아니라 7년을 앞당겨 건설하기로 했고, 여기에 필요한 전력 15GW와 용수 150만톤도 맞춰서 조기 공급돼야 한다. SK 역시 용인 생산라인 확충 600조원이 투자계획에 포함돼 있다. 따라서 이번 계획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의 산업 재배치가 전혀 아니고, 좋게 말해서 수도권을 계속 키우면서 다른 지역도 일정한 비율의 투자를 시작하겠다는 기업 약속이다. 용인 반도체 산단을 위해 여전히 지역에서 송전망을 끌어와야 하고, 수도권 비수도권 격차도 지속된다는 말이다. 결국 제대로 국토 균형발전에 부합하려면 용인 반도체 산단의 비수도권 이전이 여전히 적극 검토해야 하며, 전체 투자 계획에서 비수도권의 우선순위를 높여야 한다. 문제는 또 있다. 이번 계획은 반도체 특수를 누리는 두 기업의 전국 단위 투자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삼성은 평택과 용인에 반도체 투자를 우선하면서 서남권에는 광주와 해남·고창에, 충청권은 천안과 온양·아산과 세종에, 영남권은 구미와 부산·울산·거제 등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SK도 유사하다. 이쯤 되면 한국의 국가적 산업 재배치와 균형발전 정책은 그저 두 사기업의 투자 선호에 전적으로 기대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만약 AI와 반도체 시장 상황이 달라지거나 기업의 경영전략이 바뀌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전력·용수 등 기반시설 구축 비용은 정부가 최대 100% 지원하겠다”고 정부는 약속했지만, 기업의 요구가 늘어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심지어 약속대로 실현된다고 해도 한국은 ‘기업 공화국’이 되지 말란 법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 냉정하게 6·29 계획을 재평가하고 필요한 조정이 있어야 한다. 녹색전환연구소 소장 (bkkim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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