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덕트 호황에 가온전선 '수주 릴레이'

가온전선 미국 생산 법인 LSCUS 전경. 한경DB 인공지능(AI) 열풍이 전세계를 뒤흔들면서 인프라 시장의 핵심 부품인 버스덕트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 버스덕트는 AI데이터센터 내부에서 대용량의 전기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대형 전기 통로’다. 업계에선 버스덕트가 AI데이터센터의 필수재로 자리 잡으면서 반도체 시장의 HBM(고대역폭메모리) 급으로 위상이 격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방산업의 유례없는 호황 속에서 LS전선과 대한전선 등 국내 전선업계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공급망을 빠르게 선점하며 역대급 수주 랠리를 펼치고 있다. ◇ 공급이 수요 못따라가업계에 따르면 LS전선의 자회사 가온전선은 올 들어 메타, 구글, 아마존, 테슬라 등 글로벌 초대형 빅테크 기업들을 잇달아 고객사로 맞이하며 북미 시장에서 전례 없는 수주 랠리를 펼치고 있다. 누적 수주 규모는 7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버스덕트는 엄청난 전력을 소비하는 AI 데이터센터가 멈추지 않고 가동되도록 돕는 일종의 ‘혈관’ 역할을 한다.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고성능 연산을 처리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 서버의 전력 소비량이 일반 서버보다 수십배 급증하면서 데이터센터 내부 배전 인프라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과거 10킬로와트(kW) 수준이던 서버 랙 전력 밀도는 최근 100kW 수준까지 치솟고 있다. 초대형 AI 클러스터는 최대 1기가와트(GW) 이상의 전력을 소비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고사양 버스덕트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특히 버스덕트는 규격화된 기성품이 아닌 100% 주문 제작 방식으로 생산되기 때문에 납기가 길고 단기간에 생산 능력을 키우기 어렵다는 게 특징이다. 수요는 폭증하는데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품귀 현상이 빚어지면서 시장의 주도권이 전력기기 제조사로 옮겨가고 있다.가온전선의 수주 행진은 폭발하는 미국 AI 데이터센터 수요를 선점한 결과다. 가온전선은 올해 초도물량 공급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매년 미국 내 수십 곳의 AI 데이터센터에 버스덕트 납품을 사실상 독점하게 된다. 이번 물량은 LS전선과 공동 생산하며, 미국 현지 생산·판매 법인(LSCUS)을 통해 공급한다.대한전선도 독자적인 기술력을 앞세워 AI 데이터센터 인프라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한전선은 고부가 버스덕트 제품 라인업과 초고압 전력망 포트폴리오를 연계해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을 대상으로 공급을 타진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맞물려 국내 기업들이 높은 품질과 신뢰성을 무기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존재감을 높일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 30조원 시장 잡아라전통적으로 글로벌 버스덕트 시장은 독일 지멘스, 프랑스 슈나이더일렉트릭, 스위스 ABB, 미국 이튼 등 유럽·미국계 전력기기 과점 기업들이 시장의 50% 이상을 장악해 왔다. 하지만 역대급 공급 부족 사태가 발생하면서 빅테크 기업들은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 신속한 납기 능력까지 모두 갖춘 한국 전선업계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글로벌 버스덕트 시장은 지난해 138억달러(약 19조원)에서 2034년 219억달러(약 30조 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될 정도로 성장성이 크다. 특히 AI 데이터센터용 고사양 버스덕트 시장만 놓고 보면 전체 평균을 훨씬 웃도는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과거 초고층 빌딩, 산업 플랜트, 발전소 위주였던 버스덕트의 성장 동력은 이제 AI데이터센터로 이동했다.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건설이 집중되고 있는 북미(30%) 시장이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AI데이터센터 고객들의 등장으로 버스덕트 구매 기준도 완전히 바뀌었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과거엔 가격→품질→납기 순이었으나, 현재 빅테크 기업들은 공급 능력→품질 및 인증→글로벌 생산거점→설계 대응 속도→가격 순으로 가치를 두고 있다.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계약 방식도 단기 발주 대신 3~5년 장기 프레임 계약을 선호하는 추세다.업계 관계자는 “버스덕트는 데이터센터 건설 공정을 좌우하는 핵심 엔지니어링 솔루션”이라며 “기술력뿐만 아니라 글로벌 생산 거점과 압도적인 납기 대응 능력을 갖춘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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