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를 뛰쳐 나온 마법소녀…조각으로 확장된 이사라의 원더랜드

소녀들의 어린 시절에는 저마다의 마법소녀가 있다. 요술공주 밍키부터 세일러문, 천사소녀 네티까지. 시대에 따라 모습은 다르지만, 이들이 전한 메시지는 한결같았다. 바로 꿈과 희망이다. 지금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열리는 이사라 작가의 개인전 'A Girl From Wonderland'에도 만화 속에서 막 걸어 나온 듯한 소녀들이 관객을 맞이한다.별을 빼다 박은 듯 반짝이는 눈망울에 환한 미소, 손에는 요술봉을 든 소녀들이 전시장 곳곳에 자리 잡았다. 전시장에서 만난 이사라 작가는 "어린 시절 즐기던 옷 입히기 놀이 캐릭터와 만화 '들장미 소녀 캔디', '요술공주 세리' 등에서 받은 인상을 제 시각으로 새롭게 풀어내 만든 소녀들"이라고 말했다. Wonderland, 42 x 42cm, Acrylic on canvas, sweet pink frame, 2026. /노화랑 작가는 화면을 통해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하고자 한다. 특정한 메시지나 의미를 표현하기보다, 그림을 본 관람객이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그는 "워낙 성격이 밝고 긍정적이라 작업에도 그런 면이 자연스럽게 담긴다"며 "제 그림을 보고 '귀엽다', '예쁘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 역시 하나의 관점이라고 생각해 만족스럽다“고 설명했다.이번 전시에는 새로 작업한 평면 작업 13점과 입체 작품 16점을 선보인다. 작품 속 해맑게 웃는 소녀들은 작가의 고된 노동을 거쳐 완성된다. 프린트한 듯 매끈한 표면을 위해 작가는 특별한 작업을 거친다. 캔버스에 건축 재료 등을 섞어 바른 후 사포질하는 밑 작업을 수차례 반복하고 그 위에 아크릴 물감을 겹겹이 쌓아 올린다. 죽음으로 몸과 마음이 사라진다 해도 영혼은 계속해서 빛난다는 메세지를 전하고자 한 단색 작업. /노화랑 작가는 칼로 물감을 긁어 내는 방식으로 눈망울을 표현한다. /노화랑 빛나는 안광은 붓이 아닌 칼을 이용한다. 물감을 수천 번 긁어내 선을 만들고 이를 통해 투명한 눈동자의 반짝임을 표현한다. 눈빛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 화면의 광택도 의도적으로 없앤다.이처럼 칼을 사용하는 작업 방식에는 아버지인 한국 극사실주의 화가 이석주의 영향이 배어 있다. 이석주는 말의 근육과 갈기, 도시 풍경 등을 사진처럼 정교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작가는 "어느 날 아버지께서 미술 도구를 여러 개 펼쳐 보이시며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고르라고 하셨는데, 제가 칼을 골랐어요. 스무 살 때부터 밤낮없이 칼을 갈아가며 작업했습니다. 평소 작품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지만, 오랜 시간 한자리에 앉아 작업하는 인내와 집요함만큼은 아버지를 닮은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작가가 원더랜드 작업을 이어온 25년만에 처음으로 입체 작품을 선보였다. /노화랑 지금까지 평면의 캔버스에 머물던 소녀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 입체 조각으로 확장됐다. 팔이 없는 상반신은 그리스·로마 조각상을 연상시키지만, 평면 작업에서 볼 수 있던 반짝이는 눈망울은 그대로 담아냈다. 전시장에 선보인 18점의 조각은 헤어 장식과 목걸이, 속눈썹 색 등을 달리해 저마다 개성을 드러낸다.작가는 입체 작업을 10여 년 전부터 구상해 왔다. 그는 "외동으로 자라 작품 속 캐릭터들을 형제자매처럼 여겨와 언젠가는 이들을 화면 밖으로 끄집어내고 싶었다"며 "이번 작업을 위해 조소를 새로 배우는 등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시는 7월 23일까지.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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