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시 2주 만에 5000억 몰리기도… 연금 계좌에서 잘나가는 이 상품
1년 만에 두 배로 불어난 채권 혼합형 ETF‘위험자산 70% 제한’ 룰 우회 수단으로 직장인 김모(43)씨는 최근 퇴직연금 계좌 포트폴리오를 보며 고민에 빠졌다. 작년 하반기부터 급격히 상승한 국내 주식 비율을 높이고 싶은데, 연금 계좌에서는 주식과 같은 위험 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비율이 70%로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미국·이란의 휴전 기대감이 낮아지며 코스피가 하락 출발한 27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증시 시황이 표시되고 있다. 2026.3.27 ⓒ 뉴스1 최지환 기자 김씨는 안전 자산 몫인 적립금의 30%를 채권 혼합형 상장지수펀드(ETF)에 넣기로 했다. 채권 혼합형 ETF는 주식과 채권을 함께 담지만, 주식 비율이 절반을 넘지 않을 경우 연금 계좌에서는 안전 자산으로 분류된다.따라서 주식 편입 비율이 절반인 채권 혼합형 ETF로 안전 자산을 채우면, 연금 계좌 내에서 85%까지 국내외 주요 주가지수, 반도체, 배당주 등 다양한 테마에 상대적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할 수 있는 셈이다. 김씨는 “있는 자금을 주식에 최대한 많이 투자하고 싶어서 연금 계좌를 활용할 방법을 찾게 됐다”며 “장기 투자임을 고려하면 주식 비율을 더 높여도 되겠다 생각했다”고 했다.1년 만에 두 배로 덩치 키워 김씨처럼 연금 계좌에서 채권 혼합형 ETF를 담는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채권 혼합형 ETF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30일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26일 기준 국내 상장된 채권 혼합형 ETF 순자산 총액은 17조2859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3월(9조290억원) 대비 1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불어난 규모다.2022년 말(7537억원) 1조원에도 못 미치던 채권 혼합형 ETF 순자산 총액은 지난해 말 13조8668억원 규모로 성장하더니, 올해 들어서는 3조4000억원 더 불어났다.앞서 김씨처럼 연금 계좌 내에서 위험 자산 투자 한도를 늘리기 위한 투자 자금이 몰렸다는 분석이다. 투자자가 위험 자산 한도 70%를 모두 채운 뒤 남은 위험 자산 30%를 채권 혼합형 ETF로 채우면, 해당 안전 자산에 편입된 주식 비율만큼 위험 자산 노출도가 커진다.‘반도체 투 톱’ 앞세운 ETF 인기 작년 하반기 이후 이어진 국내 주식시장 활황에 채권 혼합형 ETF 수익률도 좋다. 코스피200(40%)과 미 국채 10년물(60%)에 동시 투자하는 ‘KODEX 200미국채혼합’은 지난 1년 수익률이 46%이다.삼성전자 투자 비율을 30%로 가져가고 나머지는 국고채 3년물에 투자하는 ‘KODEX 삼성전자채권혼합’도 지난 1년간 수익률 42%를 거뒀다. 두 ETF 모두 순자산 총액이 1조원을 넘겼다.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올해 들어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투 톱’을 앞세운 채권 혼합형 ETF가 인기다.KB자산운용의 ‘RISE 삼성전자·SK하이닉스 채권 혼합’ ETF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각각 25%씩 담고 나머지는 국고채 등에 투자하는데 상장 2주 만에 5000억원이 유입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안전 성향의 투자자라고 해도 최근엔 반도체주에 대한 관심이 클 수밖에 없는데, 반도체 투 톱을 모두 담아 투자자 관심이 집중된 면이 있다”고 했다. 다만 이 ETF는 이란 전쟁 발발 후 두 종목 주가 상승세가 한풀 꺾이며 연초 이후 상승률은 -8%를 기록하고 있다.삼성자산운용도 4월 초 상장을 목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위주로 투자하는 채권 혼합형 ETF를 출시할 예정이다. 증권가에선 중동발 리스크에 국내 증시가 크게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이를 저가 매수 기회로 인식하는 수요가 적지 않아, 반도체 투 톱을 담은 채권 혼합형 ETF에 대한 관심이 지속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한 달 동안 개인 투자자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식을 각각 17조원, 7조원어치 순매수(매도보다 매수가 많은 것)했다.국내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도 커지고 실적 배당형 상품 비율도 높아지는 추세인 만큼, 퇴직연금 시장 성장을 따라 앞으로 채권 혼합형 ETF 성장세가 이어질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요즘처럼 주식 시장 변동성이 큰 시기에 채권 혼합형은 효율적인 자산 배분 수단이 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연금 계좌는 노후 안정성을 위해 위험 자산 투자 비율을 제한하고 있는데, 지수 하락기에는 채권 혼합형 ETF 수익률 변동 폭이 크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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