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세우는 팝업은 식상 … 향·빛·촉감 팔아야죠
김용일 제일기획 리테일비즈니스 디렉터오픈런 화제성 오래 못가공유하고 싶은 순간 중요단순히 사진 찍는 공간서기억할 만한 곳이 되어야이젠 평당 매출이 아닌'평당 기억'의 시대 왔다"오프라인 매장의 역할은 '파는 곳'에서 '기억을 만드는 곳'으로 옮겨갔다고 봅니다. 매장의 성과를 '평당 매출'로만 보면 안 되고 '평당 기억'으로 봐야 하는 시대인 거죠."팝업스토어가 특별한 일회성 행사가 아닌 브랜드 마케팅의 기본값이 되면서 유통업계의 새로운 주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팝업스토어 전문기업 스위트스팟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동안 열린 팝업스토어는 총 3371개로 전년 대비 무려 96%나 급증했다. 팝업스토어를 비롯해 오프라인에서 단발성 홍보를 하는 브랜드가 늘어난 만큼 업계 경쟁은 치열해졌다. 빠르게 지루함을 느끼고 새로운 경험을 찾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기획자들은 짧은 시간 안에 강력한 첫인상을 남겨야 하는 고민거리를 안게 됐다.김용일 제일기획 리테일비즈니스 디렉터(46)는 최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포토존을 만들고, 인증사진을 유도하고, 해시태그를 붙이는 등 그간 팝업스토어에서 보이는 흔한 공식에 이미 소비자들은 피로를 느끼고 있다"며 "이제는 '찍는 공간'에서 '경험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경희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친 김 디렉터는 2004년 CJ그룹 공채로 입사해 CJ개발과 CJ제일제당에서 주택 및 상업 공간의 건축·인테리어 프로젝트매니저(PM)와 전략구매 업무를 담당했다. 이후 LG생활건강·SK네트웍스 등을 거쳐 현재는 제일기획 옴니채널 비즈니스팀에서 공간 경험을 설계하는 글로벌 리테일 마케팅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기억을 팝니다'가 있다.알맹이 없는 일회성 콘셉트로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장에서 소비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 어렵다. 온라인 마켓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향이나 빛, 소리, 손끝의 질감 등을 활용해 오프라인 매장에서 소비자가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게 김 디렉터의 조언이다. 직원과 나눈 짧은 대화, 피팅룸에서의 경험, 구매 후 쇼핑백을 받는 손의 감각까지 사소하지만 소비자가 행동으로 참여한 순간 브랜드에 대한 기억과 감정은 층층이 쌓인다. 이 때문에 오프라인 매장은 조도의 질감이나 인테리어의 특정 소재, 입구에서의 온도 변화, 습도, 발걸음 소리까지 의도적으로 기획하고 배치해야 한다.김 디렉터는 "소비자에게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강렬한 기억을 남기려면 평균을 올리지 말고 정점을 만들어야 한다"며 "예산과 인력이 한정돼 있으니 경험의 정점이 될 장면에 자원을 비대칭적으로 몰아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령 향수 가게라면 입구보다는 '손님이 자기 향을 찾아내는 순간'을 정점으로 삼아 조명과 음악, 동선을 그 순간의 경험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구조화하는 식이다.오픈런, 줄 세우기와 같은 마케팅 방식은 소비자의 기억에서 쉽게 휘발된다는 단점이 있어 한계점이 분명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때 유통가에 열풍이 불었던 '두쫀쿠(두바이쫀득쿠키)'만 해도 줄 서서 사 먹는 군중이 사라짐과 동시에 제품의 존재감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김 디렉터는 "줄이 길면 매장 안에선 '우리가 잘하고 있구나' 착각하기 쉽지만, 그 줄은 제품이나 경험이 만든 게 아닌 남이 만들어준 화제성의 결과라 브랜드 자산으로 쌓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군중을 매장 안까지 끌어들였으면 그 안에서는 반드시 군중과 무관한 '진짜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핵심 고객층인 MZ세대가 자신의 소비 경험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바깥으로 표출하려는 성향이 강한 점을 고려해 공간을 기획해야 한다고 조언했다.김 디렉터는 "과거엔 '내가 즐거웠나'가 기준이었다면 지금은 은연중에 '이게 공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가 기준이 되면서 기억이 사적인 소유물에서 사회적 자산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며 "기획자는 이제 공간을 통해 단지 '좋은 경험'을 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공유하고 싶은 순간을 적극적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조윤희 기자 / 사진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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