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다홀딩스, 올림픽 지원·IT 산업 협력… 민간외교로 韓日교류 앞.....
2024년 일본 도쿄에서 진행된 제24회 한일신산업무역회의. 카네다홀딩스김덕길 카네다홀딩스 회장은 평생을 한일 경제·문화 교류에 헌신해왔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간 그의 부친은 오사카를 기반으로 건설·부동산 사업을 일궜고, 김 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한국과 일본을 잇는 가교 역할의 중요성을 체감하며 성장했다.그는 한일 국교 정상화 이전인 1964년부터 1966년까지 한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서울대에 재학하며 검도부 소속으로 활동했고, 1964년 광주에서 열린 전국체육대회에 참가하는 등 한국 사회를 직접 경험하며 자신의 뿌리를 되새겼다. 그러나 1967년 부친이 별세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그는 학업을 중단하고 일본으로 돌아가 가업을 이어받아 경영을 책임져야 했다.예정보다 빠르게 경영 일선에 서야 했지만, 그 덕분에 사업가로서의 역량도 일찍부터 발휘할 수 있었다. 1970년 오사카엑스포를 계기로 회사는 크게 성장했고, 김 회장은 1980년대 들어 당시 신산업으로 평가받던 컴퓨터 소프트웨어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오사카대 출신 인재들을 중심으로 정보기술(IT) 기업 '아시아 IT 전략'을 설립했으며, 1986년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현지 법인을 세우며 글로벌 시장 개척에 나섰다.김덕길 회장그는 한일 교류 확대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1987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재일동포 사회의 올림픽 참여와 지원을 위해 5000만엔을 기부했다. 1989년부터는 한국 재계 2세들과 일본경제단체연합회 회원들이 교류하는 모임인 '한일간화회'에 꾸준히 참여하며 양국 경제계의 소통 창구 역할을 맡았다.1995년에는 한국과 일본의 청년들이 카약을 타고 인천항에서 일본 교토 후시미항까지 약 60일간 항해하는 교류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이듬해에는 일본 국회의원단이 조사한 '사할린 한국·조선인 문제' 보고서의 한국어 번역·출판을 지원하는 등 역사와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도 이어갔다.그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고 1999년부터 매년 간사이경제동우회의 방한 행사를 이끌고 있다. 2000년에는 코리안IT네트워크재팬 회장에 취임해 5년 동안 일본 시장에 한국 IT 기업을 소개하며 양국 산업 협력 확대에 힘썼다.김 회장은 현재까지도 한일 교류 활동의 최전선에 서 있다. 2018년부터 서울대 일본총동창회 회장을 맡아 서울대총동창회와 도쿄대 동창회 간 교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등 학술·인적 네트워크 확대에 기여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서울대총동창회로부터 관악대상을 수상했다.문화 교류 지원에도 적극적이다. 지난해에는 류진 풍산그룹 회장과 함께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한 오페라 '라스트 퀸'의 서울 공연을 후원했다. 김 회장은 지금이야말로 한일 경제 협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한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중국의 거센 추격, 저출산·고령화와 지방소멸, 저성장 등 양국이 직면한 구조적 과제가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해법으로 '한일경제연대' 구상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 규모를 합치면 국내총생산(GDP) 기준 약 6조달러 규모의 경제권과 2억명에 가까운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윤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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