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넘어 디지털 헬스케어…‘건강관리 기업’으로 진화하는 제약사
부산 센텀종합병원 의료진이 스마트 병상 모니터링 시스템 ‘씽크(thynC)’를 활용해 입원 환자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다. 대웅제약 제공 국내 제약사들이 디지털 헬스케어를 미래 먹거리로 키우고 있다. 신약 중심 사업을 넘어 예방과 관리까지 아우르는 헬스케어 사업으로 영역을 넓히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다.디지털 헬스케어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 의료인력 부족 등으로 의료진이 상시 관찰하기 어려운 환자 상태를 웨어러블 기기와 AI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병상 모니터링 시스템은 환자의 낙상 위험이나 이상 징후를 조기에 감지해 안전사고 예방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이 지난해 발표한 시장동향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은 2023년 1802억 달러에서 연평균 25% 성장해 2028년 5500억 달러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는 글로벌 제약시장 평균 성장률(약 3%)의 7배를 웃도는 수준이다.부산백병원 스마트병동에 설치된 ‘씽크(thynC)’ 중앙 모니터. 대웅제약 제공제약사와 디지털 의료기기 기업의 협업은 서로의 강점을 결합하는 공생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디지털 의료기기 기업은 공학적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품 경쟁력을 갖췄지만, 병원 판로와 영업 조직 확보에는 어려움을 겪어왔다. 반면 제약사는 의약품 유통 과정에서 쌓은 전국 병원 네트워크와 의료진 대상 영업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의료기기 기업은 제약사의 유통망을 통해 제품 보급을 확대하고, 제약사는 의약품 외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하는 구조다.디지털 헬스케어는 제약사 입장에서 사업화 속도와 수익성 측면에서도 매력적인 분야로 꼽힌다. 신약은 개발부터 허가까지 통상 10년 이상이 걸리는 반면, 제약사는 이미 허가받은 디지털 의료기기를 유통·판매하는 방식으로 비교적 빠르게 사업화할 수 있다. 병원에 한 번 도입되면 병원 시스템과 연동되고 의료진의 사용 경험과 임상·의료 데이터가 축적돼 다른 플랫폼으로 전환하기 쉽지 않다. 제약사들은 이러한 플랫폼 기반 사업 구조가 장기적인 반복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모델이 메모패치를 부착한 모습. 휴이노 홈페이지 캡처실제 주요 제약사들은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유한양행은 세 회사 가운데 가장 이른 2020년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휴이노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하며 사업에 뛰어들었다. 양사는 2022년 웨어러블 심전도 기기 ‘메모패치’ 국내 판권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올해 4월 AI 기반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 ‘메모 큐’를 상용화했다. 단순 디지털 의료기기 판매를 넘어 이를 병원 시스템과 연동해 의료진이 환자의 생체신호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AI로 이상 징후를 분석하는 플랫폼 사업으로 영역을 넓힌 것이다. 유한양행은 메모 큐를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 약 100병상에 처음 공급한 데 이어 최근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도 도입하며 상급종합병원 점유율 확대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의료진이 환자에게 부착한 웨어러블 체온계로 측정한 체온을 단말기로 확인하고 있다. 씨어스 제공대웅제약은 2024년 씨어스테크놀로지와 AI 기반 병상 모니터링 시스템 ‘씽크’ 공급 계약을 맺으며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을 본격화했다. 씨어스가 단독 공급하던 시기 도입 병상 수는 2023년 90병상, 2024년 840병상에 그쳤지만, 대웅제약과 협력한 이후 2025년 10월 1만 병상으로 늘었다. 올해 2월 기준으로는 전국 162개 병원, 1만5000여 병상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올해는 공급 규모를 10만 병상까지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대웅제약은 지난 15일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아크와 협력해 아파트 입주민이 커뮤니티 내에서 간편하게 건강 상태를 측정할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보이는 등 병원 밖으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원격 환자 모니터링 솔루션 ‘하이카디’의 작동 방식. 피플앤드테크놀러지 홈페이지동아에스티의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은 2022년 추진단(TF) 출범 이후 약 2년간 시장 조사와 사업성 검증을 거쳐 지난 2024년 디지털헬스케어 사업부로 확대되며 본격화됐다. 웨어러블 심전도 솔루션 개발사 메쥬, 스마트병원 플랫폼 기업 피플앤드테크놀러지와 협력해 만든 원격 환자 모니터링 솔루션 ‘하이카디’를 중심으로 사업을 키우고 있다. 6월 현재 하이카디는 전국 730개 병원에 도입됐으며 이 가운데 상급종합병원 28곳, 종합병원 86곳이다. 판매량도 지난해 1837대에서 올해 1분기 누적 2689대로 늘며 전년 동기 대비 390.5% 증가했다. 제품은 미국 FDA 승인을 받았으며 브라질,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 해외 시장 진출도 추진하고 있다.업계에서는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이 기기 판매를 넘어 데이터 기반 사업으로 진화할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병원에서 축적되는 임상·의료 데이터를 기반으로 연구 협업과 AI 분석, 맞춤형 헬스케어 서비스 고도화 등 다양한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 활용에 따른 부가 수익 등 새로운 매출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점도 디지털 헬스케어의 경쟁력으로 꼽힌다.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의료 패러다임은 병이 생긴 뒤 치료하는 방식에서 예방과 예측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될 것”이라며 “제약사들도 신약 개발과 의약품 공급을 넘어 디지털 헬스케어를 기반으로 예방부터 진단, 치료, 사후관리까지 아우르는 전주기 헬스케어 체계를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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