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 전 회장 또 재판에…태광그룹 안갯속
허위 급여 31억원 지급 혐의 등KOVO 총재 맡아 대외 행보 나섰지만태광 M&A 차질 우려도사면과 복권 이후 경영 복귀가 점쳐지던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위기에 빠졌다. 직원 급여를 빼돌리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면서다. 이 전 회장은 최근 한국배구연맹(KOVO) 총재로 선임되는 등 대외 활동을 시작하며 경영 복귀를 앞두고 몸풀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의 기소로 애경산업과 동성제약, 케이조선 등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그룹 체질 개선에 나선 태광그룹의 경영 환경도 ‘시계(視界) 제로’ 상태에 빠졌다. 태광 측은 이 전 회장의 개입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태광 "김 전 의장이 주도, 이 전 회장과 무관"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는 지난 5월 8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횡령 및 배임 혐의 등으로 이 전 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그룹 실세로 꼽혔던 김기유 전 태광그룹 경영협의회 의장도 특경법 위반, 배임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이 전 회장은 2008년부터 2023년까지 그룹 계열사를 동원해 임직원 계좌로 급여를 허위 지급한 뒤 되돌려 받는 방식으로 31억여 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태광그룹 소유인 태광 컨트리클럽이 골프연습장 공사비 6억원가량을 대납하도록 한 혐의와 계열사 법인카드 약 8000만원을 사적으로 사용하는 등 회사에 모두 7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친 혐의도 공소장에 포함됐다. 앞서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2024년 9월 이 전 회장을 횡령 및 배임 등 혐의로 송치했다. 김 전 의장 역시 이 전 회장과 공모해 범행을 벌였다고 보고 함께 송치했다. 검찰은 1년 9개월여간의 보완 수사를 거쳐 일부 혐의 입증이 어려운 범죄 사실을 제외하고 이 전 회장과 김 전 의장을 재판에 넘겼다.태광그룹 수뇌부의 38억원대 횡령·배임 사건은 이 전 회장과 김 전 태광그룹 경영협의회 의장 간 분쟁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김 전 의장은 이 전 회장 수감 시절 그룹 경영을 총괄한 최측근이었다. 하지만 태광그룹이 이 전 회장 복권 직후인 2023년 8월 김 전 의장을 해임하면서 갈등이 촉발됐다. 태광그룹은 자체 감사 결과를 바탕으로 같은 해 11월 김 전 의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김 전 의장은 친분이 있던 부동산 개발업자로부터 청탁을 받고, 태광그룹 계열 저축은행 대표에게 지시해 150억원 상당의 부당대출을 실행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그러자 김 전 의장도 이 전 회장을 고발하면서 경찰의 수사가 시작됐다.태광그룹은 이번 횡령·배임 사건은 이 전 회장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태광그룹 측은 “비자금 조성은 김 전 의장이 본인 측근들에게 이중급여를 지급한 뒤 돌려받은 것이고 골프연습장 공사도 이 전 회장에게 보고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반면 김 전 의장은 “이 전 회장의 지시와 승인에 따라 모든 것이 이뤄진 것이고 그런 것을 자발적으로 할 이유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태광그룹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과거 이 전 회장의 최측근이었던 김 전 의장이 (횡령·배임과 관련한) 상당한 자료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 전 회장 쪽에서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태광 공격적 M&A 추진이번 기소로 태광그룹의 경영 공백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 전 회장은 421억원을 횡령하고 법인세 9억3000여 만원을 포탈한 혐의 등으로 2011년에도 구속기소됐다. 당시 이 전 회장은 수감 직후 간암 3기 판정을 받아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이후 음주와 흡연을 하고 떡볶이를 먹으러 돌아다니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불거진 ‘황제보석’ 논란 속에 2018년 12월 보석 취소로 재수감됐다. 이듬해 징역 3년형을 확정받은 이 전 회장은 2021년 만기 출소했고 2023년 광복적 특별사면에서 복권됐다. 이 전 회장은 과거 그룹 계열사였던 케이블TV 티브로드 지분 매각 과정에서 회사에 수천억원대 부당 이득을 취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태광그룹바로잡기 공동투쟁본부 등 시민단체는 해당 의혹과 관련해 이 전 회장을 횡령 및 배임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고 수사가 진행 중이다.이 전 회장이 복권 이후에도 경영 전면엔 나서지 않았지만 그룹 핵심 계열사인 태광산업의 최대주주로서 그룹의 주요 의사결정을 주도했다고 경영계에서는 보고 있다. 태광산업의 2대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지난해 3월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하며 이 전 회장의 사내이사 복귀를 공개적으로 촉구하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의 부재 속에 ‘투자나 배당은 없고 현금만 쌓는다’는 지적을 받아온 태광산업은 작년부터 M&A에 시동을 걸었다.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명동호텔(2540억원)을 시작으로 애경산업(2237억원), 동성제약(800억원)을 잇따라 인수했다. 최근에는 케이조선과 KDB생명 인수전에도 뛰어들면서 재계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외형 확장 효과로 태광그룹은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공시대상기업집단 순위에서 48위에 올라 2025년(59위)보다 11단계나 뛰었다. 8조6700억원이었던 태광그룹 자산총액이 M&A 효과로 11조5600억원으로 30% 넘게 증가하면서다. 계열사 수도 같은 기간 20개에서 38개로 18개나 늘었다. 태광그룹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보수적인 태광그룹 특성상 1년 남짓한 시간에 수천억원에 달하는 M&A를 추진했다는 것은 오너인 이 전 회장이 결단을 내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이 전 회장이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태광그룹의 신사업 추진 속도도 더뎌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KOVO도 긴장이 전 회장은 작년부터 대외 행보에 나서며 조심스럽게 경영 복귀를 준비해왔다. 그는 지난해 11월 태광그룹 산하 세화예술문화재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세화예술문화재단은 이 전 회장의 모친인 고(故) 이선애 여사가 2009년 설립한 공익법인이다.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빌딩 내 세화미술관 등을 운영하며 국내외 작가 지원과 전시를 이어오고 있다.이 전 회장은 최근 한국배구연맹(KOVO) 신임 총재로도 선임돼 오는 7월부터 임기를 시작한다. 태광그룹은 1971년 태광산업 배구단을 창단해 현재 프로배구팀인 흥국생명까지 55년째 배구와의 인연을 맺고 있다. 이 전 회장의 부친인 고 이임용 태광그룹 선대회장도 과거 한국실업배구연맹 회장을 맡았다. 2대에 걸친 배구사랑을 이어가는 셈이다. 특히 9년간 KOVO 총재를 맡아온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물러나기로 하자 이 전 회장이 차기 총재직을 맡을 의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회장의 KOVO 총재 취임을 계기로 흥국생명도 향후 3년간 프로배구 V리그 타이틀 스폰서를 맡기로 하는 등 측면 지원에 나섰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이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기소되면서 KOVO 회원사인 14개 구단(남자 7개, 여자 7개)들도 난처해하는 분위기다. KOVO는 2012년 승부조작 파문으로 몸살을 앓았고 2021년에는 일부 선수들의 학창 시절 학교폭력 연루 의혹 등으로 홍역을 치렀다. KOVO 신임 총재가 재판에 넘겨질 경우 배구계의 이미지도 하락할 수밖에 없다고 체육계는 보고 있다.
원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