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지배구조 보고서, 숫자 너머의 질문
경영권 분쟁 3년째인 고려아연과 영풍이 올해 극명하게 차이가 있는 기업지배구조 보고서를 공개했다. 고려아연은 15개 핵심지표를 모두 충족해 준수율 100%를 달성했다.전년도 준수율 80%에 비하면 괄목할만한 성과다. 반면 영풍은 60%에 머물렀다. 두 회사는 서로 상대방의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그러나 숫자는 말한다. 지배구조 보고서는 이제 경영권 분쟁의 무기가 됐다.올해 이 보고서가 더 주목받는 이유가 있다. 올해부터 코스피 전체 상장회사 829개사로 공시의무가 전면 확대됐다. 2017년 자율공시로 출발해 자산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확대되던 제도가 9년 만에 완성됐다. 15개 핵심지표 전체 평균 준수율은 48.0%다. 동일 기업 기준으로는 전년 54.2%에서 58.7%로 4.5%포인트 올랐다.숫자만 보면 개선됐다. 그러나 역설이 있다. 준수율 최하위 지표는 ‘집중투표제 채택’(4.4%), ‘사외이사 이사회 의장 선임’(11.4%)다. 절차를 문서에 적으면 되는 지표는 90%를 넘고, 실제 권력구조를 바꿔야 하는 지표는 한 자릿수에 머문다. 형식은 쉽고, 구조는 어렵다.보고서의 무게가 달라지고 있다. 이사의 주주충실의무가 도입된 지금, 지배구조 보고서에 기재된 내용은 이사회의 의사결정 수준을 평가하는 증거가 된다.국민연금은 지분 5% 이상 보유 약 300개사에 대해 주주총회 전 의결권 행사 방향을 사전 공개하고, 주주대표소송 검토 체계도 정비했다.행동주의 펀드는 준수율이 낮은 기업을 골라 공개서한과 주주제안을 병행한다. 보고서는 단순한 공시 서류가 아니다.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판단 기준이자, 소송에서 이사회를 방어하거나 공격하는 문서가 됐다.올해 처음 보고서를 제출한 289개 신규 상장사의 현실은 더 직접적이다. 자산총계 5000억원 미만 기업의 평균 준수율은 30.1%다. 자산 2조원 이상 기업(70.7%)과의 격차가 40.6%포인트에 달한다.전체 상장회사가 공시하게 되면서 규모별 비교가 가능해졌다. 상대적으로 준수율이 낮은 기업은 행동주의 펀드와 소액주주 연합의 표적이 될 수 있다. 하위 준수율은 공격의 빌미다.앞으로 이 기준은 더 높아진다. 한국거래소는 독립이사, 전자주주총회 등 개정 상법의 주요 내용을 가이드라인에 반영해 지표를 신설·강화할 예정이다.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가 준수 항목으로 편입되면 지금 준수율이 낮은 기업은 더 큰 압박에 직면한다.기업이 지금 갖춰야 할 것은 명확하다. 핵심지표 준수율을 높이는 것은 기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준수에 대한 판단근거와 미준수 시 그 사유를 설득력 있게 기재하는 것이다. 거래소는 올해부터 내용 충실도와 설명 충실도를 함께 점검하겠다고 예고했다.고려아연이 준수율 100%를 달성한 것은 선의가 아니다. 법정과 주주 앞에서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합리적 선택이다. 기업지배구조 보고서는 매년 5월 말이면 제출되고 잊혀지는 문서가 아니다.이사회가 1년 내내 어떻게 결정했는지를 기록한 성적표다. 그 성적표를 읽는 눈이 달라졌다. 국민연금이, 행동주의 펀드가, 그리고 법원이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다.문성 율촌 기업지배구조센터 부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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