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SK실트론 매각이 멈춘 이유

[비즈니스 포커스]SK실트론 직원들이 웨이퍼 제품을 살피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SK와 두산 간 SK실트론 지분 매각 협상이 장기화하고 있다. 6월 중순 예정됐던 재공시 시한도 넘겼다. 시장에서는 밸류에이션 이견과 두산의 인수금융 조달 문제를 표면적 이유로 거론한다.다만 자본시장에서는 최근 협상 지연을 그룹 내부 전략 우선순위 변화와 연결해 해석하는 시각이 늘고 있다. 지난해 말과 현재를 비교하면 SK그룹을 둘러싼 경영 환경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리밸런싱이 최우선 과제였던 시기와 AI 반도체 투자가 핵심 화두로 떠오른 지금의 판단 기준이 같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때는 유동성, 지금은 AI지난해 SK실트론 매각 추진의 배경에는 그룹 차원의 재무구조 개선 작업이 있었다. SK그룹은 비핵심 자산 정리와 차입 부담 축소에 속도를 내고 있었고 SK실트론 역시 주요 매각 후보 가운데 하나로 거론됐다.재계에서는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주도한 리밸런싱 기조가 당시 거래 추진의 동력이 됐다고 본다. 유동성 확보와 재무 체력 회복이 우선 과제였던 만큼 SK실트론 매각 역시 자연스러운 선택지로 받아들여졌다.하지만 올해 들어 분위기는 달라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6월 대만 컴퓨텍스 행사에서 AI 인프라 확대와 메모리 생산능력 증설 계획을 직접 언급했다. 그룹 차원의 AI·반도체 전략을 다시 전면에 내세운 셈이다.특히 최 회장은 향후 5년 안에 SK하이닉스의 웨이퍼 생산능력을 현재의 두 배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웨이퍼를 비롯한 메모리 공급 부족 현상이 2030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생산능력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시장에서는 이 같은 발언을 계기로 실트론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과거에는 재무적 관점에서 접근했던 자산이 최근 들어 반도체 공급망 측면에서 다시 평가받고 있다는 것이다.최태원 SK그룹 회장이 6월 2일 대만 '컴퓨텍스 2026' SK하이닉스 부스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SK하이닉스SK그룹 우선순위 변화. 그래픽=송영 기자 몸값보다 커진 존재감SK실트론은 국내 대표 반도체 웨이퍼 생산 기업이다. 웨이퍼는 반도체 생산의 출발점에 해당하는 핵심 소재다. HBM(고대역폭메모리) 수요 급증과 AI 반도체 투자 확대가 이어지면서 웨이퍼 공급망의 중요성 역시 커지고 있다.업계에서는 SK실트론을 단순한 제조 계열사가 아닌 전략 자산으로 보는 시각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SK그룹 내부에서도 이 같은 변화가 감지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SK하이닉스가 AI 반도체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로 부상하면서 반도체 생태계 전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이다.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SK실트론은 원래도 중요한 회사였지만 최근에는 공급망 안정성 측면에서 보는 시각이 더 강해졌다”며 “AI 투자 확대 국면에서는 전략적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SK실트론 매각 여부를 단순한 거래 차원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가치 산정 이전에 해당 자산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가 더 중요해졌다는 의미다.재계에서는 SK실트론을 둘러싼 논의를 단순한 매각 여부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최창원 의장이 주도해온 리밸런싱 관점에서 보면 SK실트론 매각은 비핵심 자산 정리와 재무구조 개선의 연장선에 있는 과제다.반면 SK실트론을 반도체 공급망의 전략 자산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시각도 그룹 안팎에서 힘을 얻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유동성 확보와 차입 부담 축소가 경영 화두였다면 올해 들어서는 AI와 반도체 경쟁력이 전면에 부상했다는 이유에서다.이 같은 변화가 최창원 의장이 추진해온 리밸런싱 기조와 최태원 회장이 강조하는 AI 투자 확대 기조가 실트론이라는 자산에서 교차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어느 한쪽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룹 내부 우선순위가 달라진 것”이라며 “SK실트론은 그 변화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사례”라고 말했다. 2.3조 투자 직후 매각, 이사회도 부담SK실트론의 구미 실리콘 웨이퍼 신공장은 올해 하반기 본격 가동을 앞두고 있다. 투자 규모만 2조3000억원에 달한다. 이 시점에서 매각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이사회 입장에서는 부담이 적지 않다.대규모 투자가 마무리되고 생산능력이 확대되는 국면에서 과거 기준으로 산정된 기업가치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증설 효과가 본격 반영되기 전 자산을 매각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고민도 뒤따를 수밖에 없다.재계 관계자는 “신공장 가동 이후 실적과 가치가 어떻게 평가될지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며 “이사회 입장에서는 의사결정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주주 행동주의 확산도 변수다. 향후 기업가치가 더 높게 평가될 수 있는데도 저평가 상태에서 매각을 결정했다는 논란이 제기될 경우 이사진이 법적 책임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시장에서는 이 같은 부담이 거래 추진 속도를 늦추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SK실트론 사옥. 사진=SK실트론 실트론 딜, 진짜 변수는 내부인수 우선협상대상자인 두산 역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두산은 반도체 소재·부품 사업 확대를 미래 성장 전략의 한 축으로 설정한 상태다. 비핵심 사업 정리와 유동성 확보 작업도 진행해왔다.시장에서는 SK실트론 인수가 두산의 반도체 밸류체인 확장 전략에서 핵심 퍼즐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문제는 협상이 길어질수록 양측 모두 부담이 커진다는 점이다. SK는 리밸런싱 완수 의지를 시장에 보여줘야 한다. 반면 SK실트론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는 판단이 내부에서 확산될 경우 매각을 강행하기도 쉽지 않다.두산 역시 확보한 자금을 장기간 대기 상태로 둘 수만은 없다. 시장에서는 SK실트론 딜이 단순한 가격 협상을 넘어선 문제라고 본다. 재무구조 개선과 반도체 전략, 자산 가치 재평가가 동시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재계 관계자는 “SK실트론 거래는 몸값만 맞으면 끝나는 성격의 딜이 아니다”라며 “결국 SK그룹 내부에서 SK실트론을 어떤 자산으로 규정하느냐가 향후 방향을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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