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 번 더 실패하면 끝이었다”…우리는 2008년의 스페이스X...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Space X was running out of money.” “One more failure could have ended the company.”2008년 미국 언론과 우주산업 관계자들은 스페이스X를 이렇게 평가했다. 현금은 바닥나고 있었고, 세 번의 로켓 발사는 연속으로 실패했다. 투자자들의 신뢰도 흔들리고 있었다.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훗날 회고했다. “네 번째 발사가 실패했다면 스페이스X는 끝났을 것이다.”실제로 스페이스X는 네 번째 발사를 준비할 자금조차 부족한 상황이었다. 머스크는 개인 자산 대부분을 이미 투입했고, 금융위기가 시작되면서 추가 투자 유치도 어려웠다. 테슬라 역시 동시에 파산 위기에 놓여 있었다. 스페이스X와 테슬라, 그리고 머스크 개인까지 모두 벼랑 끝에 서 있었다.그런데 18년이 지난 지금, 같은 회사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IPO)에 성공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많은 사람들은 로켓 기술을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들은 일론 머스크의 천재성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투자자의 관점에서 보면 스페이스X의 진짜 비밀은 기술이 아니라 시간이었다.우리는 흔히 혁신을 기술의 문제로 생각하지만 혁신은 기술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기존의 상식을 의심하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나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이주한 일론 머스크는 물리학과 경제학을 공부했다. 그는 기존 질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 로켓은 비싸야 하는가?” “왜 인간은 화성에 갈 수 없는가?” “왜 우주산업은 정부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다만 남들과 다른 질문만으로는 세상이 바뀌지는 않으며, 질문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스페이스X는 2002년 설립됐고 2026년 상장에 성공했다. 무려 24년이 걸렸다. 우리는 상장 이후의 시가총액과 투자수익률에 주목하지만, 투자자의 관점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보유기간(Holding Period)이다. 초기 투자자인 머스크는 24년을 기다렸다. 파운더스펀드와 DFJ 역시 각각 18년, 17년가량 기다렸다. 오늘날 이들의 수익률은 전설적인 수준으로 평가받지만, 수익률은 결과일 뿐 원인이 아니다. 진짜 원인은 기다릴 수 있었던 시간이다.여기서 우리는 한국 벤처투자 생태계의 구조적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만약 2008년의 스페이스X가 오늘 대한민국의 정책펀드 심사를 받았다면 과연 통과할 수 있었을까. 세 번의 실패, 불확실한 시장, 불안정한 재무구조, 회수 실적 부재 등 당시 대부분의 정량지표에 대해서 낮은 점수를 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역설적으로 바로 그 시기에 가장 위대한 투자 기회가 존재했다. 혁신은 과거 데이터에서 나오지 않는다. 미래를 바꾸는 혁신은 기존 데이터로 설명되지 않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국가전략기술 분야에서는 단순한 과거 내부수익률(IRR)이나 회수실적뿐 아니라 창업자의 문제의식, 기술에 대한 이해도, 장기 투자 역량, 산업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함께 평가할 필요가 있다.정부가 해야 할 일은 시장이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의 위험(Time Risk)을 분담하는 것이다. 스페이스X 역시 민간 자본만으로 성장한 기업이 아니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계약은 민간 투자자들이 계속 기다릴 수 있도록 만드는 신뢰의 기반이 됐다. 정부는 기업을 대신 성장시킨 것이 아니라 시장이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을 함께 부담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마중물 투자다.최근 논의되고 있는 초장기 성장펀드와 장기 기술투자펀드는 단순히 펀드 만기를 늘리는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투자하기 어려웠던 영역에 도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만드는 일이다. 물론 장기 펀드가 만능은 아니다. 긴 시간만큼 위탁운용사(GP)의 책임성과 성과관리도 강화돼야 한다.대한민국은 이미 뛰어난 기술과 인재를 보유하고 있고, 부족한 것은 기술이 아니다. 좋은 질문을 가진 창업자를 믿고 기다려 줄 수 있는 자본과 제도다. 2008년 미국 언론은 스페이스X를 두고 “한 번 더 실패하면 끝”이라고 평가했다. 2026년 시장은 같은 회사를 두고 “역사상 최대 기업공개(IPO)”라고 평가한다. 그 사이에 존재했던 것은 로켓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대한민국은 과연 다음 세대의 스페이스X를 20년 동안 기다릴 준비가 돼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미래 산업의 성패를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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