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도 흑묘백묘…‘순혈주의’ 깨는 기업들 [경영전략노트]
구원투수? 독이 든 성배?LG생활건강, 한미약품, 코리아세븐, 우리카드, 유한킴벌리, 신한금융, JB금융, iM금융….최근 외부 인사나 경쟁사 출신 인사를 CEO로 영입한 기업들이다. 기업들이 수십년간 지켜온 ‘내부 승진’의 전통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있다. 이른바 ‘경영의 흑묘백묘(黑猫白猫)’ 시대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듯, 출신보다는 성과와 경영 역량이 우선이라는 실리주의가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인사 혁신’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CEO 외부 수혈의 명암과 성공을 위한 핵심 조건을 짚어봤다.창사 이래 첫 외부 CEO 잇따라한미약품 53년, 코리아세븐 38년 만최근 재계의 화두 중 하나는 ‘순혈주의 타파’다. 창사 이래 처음 또는 수십년 만에 외부 전문가를 CEO로 영입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다른 업종이나 심지어 경쟁사에서도 ‘CEO 모셔오기’가 이어진다.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한미약품이다. 한미약품은 창립 53년 만에 처음으로 황상연 대표를 영입하며 외부 수혈의 신호탄을 쐈다. 황 대표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거쳐 종근당홀딩스 대표를 역임한 인물로 제약업 전문가다.편의점 업계에선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코리아세븐이 김대일 전 섹타나인 대표를 영입했다. 38년 만의 첫 비(非)롯데맨 대표다. LG생활건강은 지난해 10월 로레알 출신의 이선주 대표를 영입했다. LG생활건강의 외부 출신 CEO 발탁은 2005년 차석용 전 부회장 이후 20년 만이다.금융권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 8대 금융지주 사외이사 17명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경쟁사 CEO 출신들이 대거 영입됐다. ‘적과의 동침’ 우려에도 전문성을 수혈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읽힌다. 신한금융지주는 박종복 전 SC제일은행장을, JB금융지주는 이동철 전 KB금융지주 부회장을, iM금융지주(전 DGB금융)는 조준희 전 기업은행장을 사외이사로 앉혔다. 각 은행은 ‘금융 산업 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와 리더십 경험’ ‘리딩뱅크의 DNA 이식’ ‘전국구 영업망 관리 경험과 금융 정책에 대한 높은 통찰력’ 등을 인사 배경으로 밝혔다.이 밖에 유한킴벌리와 우리카드도 이제훈 전 홈플러스 대표, 진성원 전 현대카드 오퍼레이션본부장을 창사 이래 첫 외부 출신 CEO로 지난해 영입했다.기업들이 줄곧 지켜온 내부 인사 발탁의 불문율을 깨고 잇따라 외부 인재를 CEO로 모셔오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내부 혁신 역량 고갈’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외부 인재, 약일까 독일까조직에 자극 주지만 ‘무리수’ 함정도이랜드에서 최고인사책임자(CHO)를 지낸 전준수 멘토라이브러리 대표는 “외부 CEO 영입은 조직이 스스로 ‘우리가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문제를 만든 방식으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상황에 이른 것”이라고 짚었다. 내부에서 더 이상 답이 나오지 않을 때, 외부 영입을 통해 조직에 긴장과 자극을 주고, 시장에는 변화 의지를 가장 강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이찬진 금융감독원장도 지난 1월 기자간담회에서 “JP모건 등 미국계 투자은행은 경쟁사 출신이 이사회 멤버로 참여한다”며 외부 인재 등용을 적극 주문했다. 교수 대신 경쟁사 CEO 출신 영입이 늘면서 국내 7개 금융그룹 사외이사 중 기업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 31.6%에서 올해 41.5%로 높아졌다.외부 출신 CEO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앨런 멀랠리(Alan Mulally) 전 포드 대표가 꼽힌다. 포드는 1903년 설립 이후 2006년 앨런 멀랠리를 영입하기 전까지 103년 동안 단 한 번도 외부 인사를 CEO로 영입한 적이 없다. 그동안은 창업주 가문이 직접 경영하거나, 내부에서 평생을 바친 ‘포드맨’들이 승진해 수장이 되는 구조였다.그러나 2006년 분기당 수조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파산 직전까지 몰리자, 당시 대표였던 창업주의 증손자 빌 포드는 보잉 출신의 앨런 멀랠리를 영입했다. 그는 ‘원 포드(One Ford)’ 전략으로 방만한 브랜드들을 정리하고 체질 개선을 단행했다. 그 결과 포드는 2008년 금융위기 때 미국 자동차 빅3 중 유일하게 정부 구제금융 없이 살아남으며 회생할 수 있었다.외부 출신 CEO 카드가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2019년 신세계그룹 역사상 최초의 외부 출신 CEO로 영입되며 화제를 모았던 강희석 전 이마트·쓱닷컴 대표는 실패 사례로 꼽힌다. 베인앤드컴퍼니 컨설턴트 출신이었던 그는 G마켓 인수 등 굵직한 M&A를 주도했다. 그러나 온·오프라인 통합 전략은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마트는 사상 첫 분기 적자를 기록했고, 강 대표는 결국 취임 4년 만인 2023년 경질됐다.업계 관계자는 “외부에서 CEO가 오면 업무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만 반년이 걸린다. 혁신적인 전략을 내놔도 조직 역량이나 리더십이 안 따라주면 첫 1년은 성과를 내기 어렵다. 이에 조급함을 느껴 2년 차부터 무리수를 두다가 무너지는 경우가 적잖다”고 말했다.인터뷰 | 전준수 멘토라이브러리 대표무엇을 어떻게 바꿀지부터 정하고 영입해야Q. CEO를 외부에서 영입하는 전략에 대해 어떻게 보나.A. 냉정히 봤을 때, 외부 인재 영입의 성공 확률은 CEO든 경력직이든 30%를 넘기 어렵다. 30%는 성공하고, 40%는 보통 또는 기대 이하에 머문다. 나머지 30%는 처절한 실패로 끝난다. 이 말은 외부 영입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그 대가를 알고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다.Q. 외부 CEO가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A. 실패 사례들을 보면 대체로 세 가지 패턴을 보인다.첫째, 실제 성공 경험이 없는 사람을 데려오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을 뽑지 않겠냐”고 하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다르다. 그의 성과가 전임자의 유산 덕이었는지, 시장 호황 덕이었는지를 꿰뚫어봐야 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경력이나 타이틀이 아니라, 그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만들어 냈는지다. 진짜 실력과 운은 구별된다. 외부 영입이 실패로 끝난 국내외 사례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여기서 시작된다.둘째, 실제 실행 경험이 없는 인재의 영입이다. 경영은 진단이 아니라 실행이다. 전략만 다뤄온 사람, 본사 스태프로만 일해온 사람, 혹은 컨설턴트 출신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이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지만, 조직을 실제로 움직여본 경험이 없다. 물론 경영 위기 시 외부 전문가의 시각은 유효하다. 다만 진단을 실행으로 착각하는 순간, 조직은 방향을 잃는다. 실행의 책임은 끝까지 내부에 있다.셋째, 동종 업계 스타 인재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다.데려오기도 어렵지만, 환경이 바뀌면 성과가 그대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업종이 다르더라도 검증된 성공 경험을 가진 인재를 선택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접근이다. CEO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경영 그 자체의 전문가기 때문이다.Q. 외부 CEO 영입이 성공하려면.A. 성공적인 영입의 핵심은 두 가지다.첫째, 가치관과 철학의 정합성이다. 이것이 어긋나면, 단기 성과가 나오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균열이 온다. 조직문화는 훈련이나 결심으로 단기간에 바뀌지 않는다. 직원들의 언어, 행동, 의사소통 방식에 이미 새겨진 것들이기 때문이다.다른 하나는 인재 이식성(Portability)에 달렸다. 월가에서 스타 주식 분석가가 이직해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보리스 교수 연구에 따르면, 이유는 5P 때문이다. Processes(프로세스), Platforms(플랫폼), Products(제품), People(사람), Politics(조직 정치)의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프로세스와 조직 정치, 즉 일이 실제로 돌아가는 방식과 조직 내 권력 역학을 외부인이 체화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이 다섯 가지를 무시하면, 아무리 훌륭한 전략도 조직 안에서 표류한다.외부 CEO는 조직의 마지막 처방전이 아니다. 왜 그를 데려오는지, 무엇을 바꿀 것인지,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를 먼저 답한 후에 내리는 결정이어야 한다. 그것이 30%의 성공을 만드는 차이다.[노승욱 기자 noh.seungwook2@mk.co.kr][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7호(2026.04.29~05.05일자) 기사입니다][Copyright (c) 매경AX.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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