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발상’으로 매출 1조 신화 연 ‘이 회사’ [His story]
이정권 DH그룹 회장IMF 외환위기로 찬바람이 불던 1998년. 전북 부안 산골 출신의 이정권 DH그룹 회장은 광주에 정착한 후 돈을 벌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쳤다”고 당시를 회고했다.이후 지인의 권유로 광주의 한 가전제품 임가공 업체에서 4년간 일하며 사업에 조금씩 눈을 떴다. 가전제품 생산 과정을 익힌 그는 2011년 ‘두현정공(현 DH글로벌)’이라는 회사를 세워 가전제품 부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회사 규모를 키워오던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중소기업들이 대부분 가전 부품만 생산하는데, 역발상으로 아예 완제품을 생산해서 납품하면 어떨까.”그는 위니아만도 김치냉장고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사업에 뛰어들었고, 얼마 안 가 삼성전자에 납품할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된다. 2014년 당시 삼성전자는 광주 가전공장 라인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연구소를 지을 계획이었다. 삼성전자 담당자는 OEM 생산 업체를 찾던 중 이정권 회장이 경영해온 회사를 알게 됐고, 가전제품 납품 계약을 전격 체결했다.“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고 생각합니다. 때마침 품질 좋은 가전제품 생산라인을 갖춰가던 중 삼성전자에 납품할 기회를 얻게 됐으니 하늘이 도운 거지요.”그때부터 회사 매출이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삼성전자 스탠드형 김치냉장고, 의류관리기 에어드레서 등을 직접 생산하면서, 2013년 당시 60억원대에 그쳤던 DH글로벌 매출은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 3500억원 수준까지 뛰었다. 여세를 몰아 ‘스테닉(STENIQ)’이라는 자체 브랜드 제품도 내놓았다. 스테닉 브랜드의 식당용 냉장고, 소주 냉장고, 제빙기 등을 국내외 시장에서 판매 중이다.하지만 그는 결코 만족하지 않았다. 가전제품 사업만 고집하면 경기가 꺾일 경우 매출이 급감할 수 있는 만큼 또 다른 사업을 준비했다. 자동차 전장이 대표적이다.“젊은 시절부터 자동차 사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때마침 삼성그룹이 글로벌 전장 업체 하만을 전격 인수한 것을 보고 전장 사업 전망이 밝다고 확신했죠. 다만 전장 사업을 해본 경험이 없어 밑바닥부터 시작하려면 엄청난 시간,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데요. 우량 기업 인수합병(M&A)으로 자동차 사업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972년생/ 광주대 부동산금융학과/ 2011년 DH글로벌 설립/ 광주상공회의소 부회장/ 광주경영자총협회 부회장/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호남네트워크 회장/ DH그룹 회장(현) [DH그룹 제공]삼성전자 가전 완제품 납품부품 대신 완제품으로 매출 급성장이 회장이 강조한 M&A 전략은 크게 두 가지다.첫째, 위기를 맞은 기업 핵심 자산을 확보해 시장 지위를 선점하는 방식이다. 이 회장은 완성차 전장 기업 매물을 알아보던 중 2022년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대성엘텍(현 DH오토웨어)’이란 회사를 눈여겨봤고 결국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회사 실적은 좋지 않았지만 현대모비스 협력 업체였고, 무려 100명에 달하는 연구원을 보유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인수 초기만 해도 걱정이 컸지만 어느새 이 회사는 DH그룹의 보물단지가 됐다. DH오토웨어는 코스닥 상장사로 오디오, 비디오, 내비게이션을 주로 생산한다. 현대차, 기아를 비롯한 글로벌 완성차 기업에 차량용 인포테인먼트(IVI)와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기술 융합형 제품을 공급해왔다.실적도 탄탄하다. DH오토웨어는 지난해 매출 3719억원, 영업이익 19억원을 기록했다. 2022년 8월 DH그룹에 인수된 이후 매년 흑자 행진을 이어가는 중이다. 여세를 몰아 DH오토웨어는 매출 1조원 달성을 목표로 잡았다.“M&A 시장을 잘 들여다보면 경영난을 겪는 기업들이 널려 있습니다. 시장에서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지만, 잠재력 높은 핵심 기술과 숙련된 인력을 보유한 우량 기업을 선별하면 보물을 찾을 수 있죠.”둘째 핵심 사업 밸류체인(가치 사슬) 통합을 위해 M&A를 적극 활용했다. 이 회장은 첨단 전장 기술을 갖춘 DH오토웨어를 품에 안은 데 이어 대유위니아그룹 계열사였던 대유에이피(현 DH오토리드), 대유플러스(현 DH오토넥스) 등을 잇따라 인수했다.자동차 부품 업체인 DH오토리드는 국내 스티어링휠 시장 1위를 달린다. 실적도 안정적이다. 지난해 매출 2704억원, 영업이익 165억원을 기록했다. 완성차 업계 불황에도 2023년(매출 2356억원, 영업이익 158억원) 대비 뚜렷한 상승세를 이어가는 중이다.DH오토넥스는 네트워크 솔루션, 통신장비 개발 업체로 전기차 충전기 제조, LPG 차량 연료탱크 개발 등 다양한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정권 회장은 사업을 시작한 지 10여년 만에 계열사를 모두 합쳐 매출 1조원대 중견그룹으로 키워냈다.“잇따른 M&A를 통해 DH오토웨어의 첨단 전장 기술과 DH오토리드의 핵심 자동차 부품, DH오토넥스의 미래 에너지 솔루션 사업 시너지 효과를 내는 방안을 고민 중입니다. 단순한 자동차 부품 회사를 넘어, 주요 계열사 제품과 기술을 유기적으로 통합해 완성차 업체에 폭넓고 혁신적인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이정권 회장은 DH오토웨어 본사를 아예 경기도 평택에서 광주광역시로 옮겼다. 이미 광주에 본사를 둔 DH글로벌과 시너지 효과를 내 호남 대표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다.“평택에서 광주로 회사를 옮긴다고 했을 때 다들 말렸습니다. 굳이 지방으로 갈 필요가 있냐는 것이지요. 하지만 저의 생각은 확고했습니다. 지역 핵심 인재를 유치해 광주 대표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목표가 있었거든요. 삼성전자 가전을 광주에서 만든다는 걸 모르는 이들이 많은데요. 광주에 본사를 둔 기업인 만큼 호남 지역 주민들이 삼성전자 가전 소비를 늘려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회사 규모가 더 커지면 전 직원 연봉 1억원을 넘겨 광주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인재가 몰려드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꿈입니다.” DH그룹 멕시코 공장 전경. (DH그룹 제공)멕시코 등 해외 진출 속도아프리카에 DH파크 건설 ‘부푼 꿈’최근에는 글로벌 시장 진출도 힘쓰는 중이다. DH그룹의 글로벌 핵심 거점은 멕시코다.“2023년 말 당시 현대모비스에서 해외 공장 지을 기업을 찾고 있었어요. 글로벌 시장 리스크 때문에 다들 손사래를 쳤는데, 저는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해외 시장 진출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이 회장은 멕시코 몬테레이에 대규모 생산 법인을 설립해 현대차, 기아 등 북미 핵심 고객에게 부품을 직접 공급하는 ‘니어쇼어링(Near-shoring)’ 전략을 펼쳐왔다. DH오토웨어 멕시코 법인은 연간 최대 8000억원 매출이 가능한 생산능력(CAPA)을 보유한 상태다.이정권 회장은 여세를 몰아 아프리카 시장 진출도 준비 중이다.“마지막 남은 기회의 땅이 아프리카라고 봅니다. 때마침 현대차도 알제리에 반조립제품(CKD) 공장을 지을 계획인데요. 저희도 알제리에서 현대차에 납품할 스티어링휠 가죽을 생산하는 등 사업을 키울 계획입니다. 멀리 보면 알제리에 저희 계열사 공장을 한데 모은 ‘DH파크’를 건설하는 것이 꿈입니다.”어느새 계열사 매출을 합쳐 1조원에 달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지만 고민은 적잖다. 멕시코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 최대 50% 관세를 부과하기로 해서다. 대미 수출을 위해 멕시코 시장에 전격 진출했는데 고율 관세로 실적 악화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재계에서는 멕시코 시장에 진출한 중소, 중견기업에 정부가 과감한 세제 혜택을 주거나 수출금융, 해외 마케팅 등 맞춤형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저희 같은 중견기업들은 대기업과 비교해 고율 관세에 취약한 만큼 금융 지원이 절실합니다.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영난을 겪지 않도록 금융권이 대출 금리를 인하하고 세금을 낮춰주는 등 과감한 지원을 해줘야 열심히 외화벌이에 나설 수 있습니다.”[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32호 (2025.10.29~11.04일자) 기사입니다][Copyright (c) 매경AX.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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