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업계 “제품가격, 올려도 못올려도 문제”
중동전쟁에 나프타 수급난·가격 급등도료·건자재 업계 등 원가 쇼크 확산값 올리면 담합 조사 “팔수록 손해”재고 길어야 2~3주…공급 절벽 우려지속된 물가 상승에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겹치며 국내 건설현장의 공사비 부담이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 1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건축자재 매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윤창빈 기자미국과 이란 사이의 전쟁이 8일 오전 ‘2주간 휴전’으로 일단락 됐다. 종전이 아니라 휴전이라는 점이 관건이긴 하지만, 당장 급한불을 껐다는 점에선 일단 중기업계의 안도감이 감지된다. 관건은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온 유조선(VLCC) 및 LNG 선박들이 한국에까지 도착하는 시차가 2주~3주 가량이나 걸린다는 점이다. 덩치가 크고 무거운 이들 선박들은 컨테이너선 보다 30~40% 가량 속도가 느리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빠져나오는 데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9일 중기업계 등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 내부에는 전세계적으로 2000척이 넘는 유조선 등 선박들이 전쟁의 포화를 피해 대피해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폭이 가장 좁은 부분은 30여㎞에 불과하고 수심이 얕아 여러척의 선박이 동시에 지나기는 어려운 것으로 전해진다. 이란 측이 ‘2주간 개방’을 선언을 했지만, 통항을 위해선 순서를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당장 한국 입장에선 이미 한달 이상 유조선의 입항이 중단되면서 원유 공급이 막힌 상태다. 한국의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은 70%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지금 출발하더라도 유조선이 한국에 도착하는데까지엔 최소 2주, 길게는 3주 이상 걸린다. 유조선(VLCC)의 경우 13노트가 평균 운항속도인데 이를 한국까지의 거리(7000항해마일)로 비교하면 한국 도착까지 20일~25일 가량이 소요된다.▶정부, ‘가격 통제’ 여전… “팔수록 적자” 비명도=관건은 아직 미국과 이란사이의 분쟁이 종전이 아니라 휴전 상태이기에, 정부의 가격 통제가 당장 해소될 가능성은 현재로선 예단키 어렵다는 점이다. 한 자재 업계 관계자는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공산국가도 아니고, 모든 제품의 원가가 다 올랐는데 납품가격을 기존대로 유지하라고 하면 팔수록·만들수록 손해만 커지는 상황 아니겠나.”고 말했다.중동전쟁 이후 원자재값이 치솟는 와중에도 정부가 가격 인상 억제에 전방위로 나서면서 도료·건자재 업계의 불만도 여전하다. 정부는 사태 이후 유류에는 최고가격제를 도입했고, 중동전쟁발 물가 확산을 막겠다며 특별관리 품목도 43개로 늘렸다. 페인트 업계가 가격 인상에 나서자 공정거래위원회는 담합 의혹 조사에 착수했다. 업계에선 “가격을 올려도 문제, 못 올려도 문제”라는 말이 나온다.문제의 출발점은 나프타다. 도료, PVC, 단열재, 방수재, 실란트, 접착제, 각종 플라스틱 건자재의 기초 원료인 나프타가 전쟁 이후 빠르게 부족해졌다. 헤럴드경제 취재와 업계 설명을 종합하면 나프타 가격은 지난 2월 말 톤당 500달러 안팎에서 3월 말~4월 초 900달러대 후반까지 급등한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선 “불과 한달 남짓한 사이 사실상 두 배 가까이 뛴 셈”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나프타 가격 급등과 수급 불안은 페인트 가격 인상과 건설현장 자재 조달 차질의 직접 배경으로 지목됐다.건자재 업계 관계자는 “하루가 멀다하고 ‘납품 기일을 맞출 수 있느냐’는 문의 전화가 온다. 원재료가 부족하다는 것이 뉴스를 통해 많이 보도되다보니 기존 계약을 해놨던 곳들에서 오는 문의”라며 “원재료 부족 상황은 심각하다. 중소업체들일수록 재고가 모자라고 그래서 더 힘들어 진 것이 현재 분위기”라고 내부 분위기를 설명했다.▶도료업계 “올리겠다” 며칠만에 “철회” 후퇴=도료업계는 제품가격 인상에 나섰다가 정부의 철퇴를 맞고 ‘인상분’을 모두 반납한 상태다. 노루페인트와 삼화페인트공업은 지난 3월 23일부터 제품별 가격을 20~55% 올렸고, KCC는 4월 6일부터 도료 제품 가격을 10~40% 인상하겠다고 대리점에 공문을 보냈다. 강남제비스코도 4월 1일부터 15% 이상 인상을 추진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지난달 30일 KCC, 노루페인트, 삼화페인트공업, 강남제비스코와 업계 단체를 상대로 현장조사에 착수했다.업계에선 “원가가 동시에 뛰었으니 가격 조정 시점도 비슷할 수밖에 없는데, 일단 올리면 담합 프레임부터 씌워진다”고 볼멘소리를 냈다.실제 현장에선 인상 계획을 접거나 낮추는 사례가 잇따랐다. KCC는 1일 “정부 물가안정 기조를 반영한다”며 4월 6일부터 예정했던 10~40% 인상 계획을 전면 철회했다. SP삼화도 인상 폭을 하향 조정했고, 노루페인트 역시 일부 품목 인상 폭을 낮추거나 대상 제품을 조정했다. 공정위 조사와 정부의 물가 안정 압박이 업계 가격 정책을 사실상 되돌려 세운 셈이다.현장에서의 더 큰 문제는 가격이 아니라 재고라는 주장이 나온다. 업계 안팎에서는 최근 NCC 가동률이 60%대 후반까지 떨어졌고, 나프타 재고도 2~3주분 수준에 불과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도료업계 관계자는 “재고가 길어야 2주 정도였는데 현재는 거의 바닥이다. 가격 인상은 부차적인 문제고, 진짜 문제는 원료 공급 자체가 안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또 다른 건자재업계 관계자도 “정부는 재고가 어느 정도 쌓여 있을 것으로 보는 것 같은데 실시간 조달 제품은 지금 들어오는 가격을 반영하지 않으면 밑지고 파는 구조가 된다”며 “적자를 감수하라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고 했다.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유가와 원유 수급 불안은 레미콘뿐 아니라 석유화학 원료를 쓰는 자재 전반의 생산원가와 운송비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라며 “이 같은 흐름이 장기화하면 공사비 상승이 건축비와 분양가에 반영되고, 공사 현장에서는 공사비 증액이나 공기 연장을 둘러싼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홍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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