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흑자 쌓이는데 환율은 왜…28거래일째 1500원대

반도체 수출 호조에도 달러-원 2009년 이후 최고경상수지로 번 달러보다 해외로 나가는 돈이 더 많아미국 투자에 대미 금융자산 1조 달러 돌파…달러 수요 키워 ◆…달러인덱스와 원달러 환율 차트(자료=인베스팅닷컴, 사진=GPT5.5 제작)한국은 반도체 수출 호조로 역대 최대 수준의 경상수지 흑자를 내고 있다. 그런데도 원·달러 환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 무역으로 벌어들이는 달러보다 해외로 빠져나가는 자본이 더 많아지면서, 흑자인데 원화가 약해지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2009년 이후 최고 수준 환율…경상흑자보다 큰 자본 유출 원·달러 환율이 1550원 선에 바짝 다가섰다. 26일 인베스팅닷컴 기준 오전 10시35분 원·달러 환율은 1549.82원을 기록했다. 같은 시각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1.275로 강세를 보였다. 전날 서울외환시장에서도 환율은 장중 1548.9원까지 올랐고, 28거래일째 1500원대를 이어가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1549.0원) 이후 최고 수준을 다시 썼다. 이례적인 것은 환율이 오르는 배경이다. 통상 수출이 잘되고 경상수지 흑자가 쌓이면 그만큼 달러가 들어와 원화 가치가 오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지금은 반대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원화 약세의 핵심 원인은 금융계정을 통한 자본 유출이다. 반도체 수출 호조와 역대 최대 경상수지 흑자에도 환율이 오르는 것은, 경상수지로 들어오는 달러보다 금융계정을 통해 빠져나가는 달러가 더 크기 때문이다. 구조가 과거와 달라진 점도 주목해야 한다. 예전에는 경상수지 흑자의 상당 부분이 중앙은행의 준비자산 증가로 이어졌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는 직접투자와 포트폴리오 투자 등을 통한 민간의 해외자산 축적이 크게 늘었다. 나라가 벌어들인 달러가 외환보유액으로 쌓이는 대신, 민간이 해외 주식·채권을 사들이며 다시 밖으로 나가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 이 흐름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준비자산을 제외한 대외금융자산 잔액은 2조4396억 달러로 1년 새 3448억 달러 늘었다. 이 가운데 미국 금융자산이 1조1492억 달러로 사상 처음 1조 달러를 넘어섰다. 증가 폭(2042억 달러)은 역대 최대이고, 전체 대외금융자산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47.1%로 역대 최고였다.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이른바 '서학개미'가 늘어난 데다, 지난해 나스닥지수가 20.4% 오르면서 평가액도 함께 불어난 영향이다. 서학개미·외국인 매도 겹쳐 달러 수요 자극 민간의 미국 자산 매입은 곧바로 외환시장의 달러 수요로 이어진다. 국내 투자자가 미국 주식이나 채권을 사려고 원화를 달러로 바꾸면 환율에는 상승 압력이 된다. 여기에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팔아 원화를 달러로 환전해 빠져나가는 흐름까지 맞물리면 달러 수급 부담은 더 커진다. 올해 잠잠하던 서학개미 매수세도 다시 살아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 세이브로에 따르면 서학개미는 이달 들어 22일까지 미국 주식을 8억4000만 달러어치 순매수했다. 지난 4~5월 순매도에서 3개월 만에 매수 우위로 돌아선 것이다. 이유정 하나은행 연구위원은 "외국인의 국내 증시 순매도와 서학개미의 해외 주식 매수세가 맞물리면서 달러 수요를 자극해 환율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도 "아직 지난해처럼 대규모 자금 유출이 일어나는 수준은 아니어서, 전고점인 1560원 선을 상단으로 열어두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구조적 달러 유출 압력도 가세 구조적인 달러 유출 압력도 환율 상단을 높이는 요인이다. 한·미 관세협상의 결과로 지난 18일 한미전략투자공사가 공식 출범하면서, 전략사업 2000억 달러와 조선업 1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가 단계적으로 집행될 예정이다. 연간 상한은 200억 달러다. 매파적 색채를 강화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견조한 미국 경제도 당분간 달러 강세를 떠받친다. 금리선물시장은 미국이 올해 9월과 내년 3월 두 차례 금리를 올릴 가능성을 반영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환율 상승 압력이 우세하다는 전망이 많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은 미 달러 강세를 반영해 상승 흐름을 보일 것"이라며 "외국인의 국내 주식 순매도가 이어지면서 환율 하락을 이끌 수급 요인도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재 환율이 금융위기 수준에 근접한 만큼 1560원 근방에서는 고점 인식이 커질 것으로 봤다. 수출업체의 네고 물량과 당국의 개입 경계감이 환율 상승을 일부 제어하고, 원화와 엔화의 동조화가 심해진 만큼 일본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이나 일본은행(BOJ)의 긴축 가속도 환율 안정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증권은 분기 평균 환율을 2분기 1500원, 3분기 1545원, 4분기 1530원으로 보고, 올해 연평균은 1509원 안팎으로 전망했다. 다만 이런 단기 제어 요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환율 상승의 뿌리가 해외자산 축적이라는 구조적 흐름에 있는 만큼,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처럼 구조적 차원의 대응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원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