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따라잡기 위해 독일 유학 공학자에게 힘을 싣다

[김기훈의 TalkTalk] 고기영 한신대 교수 ⑧독일서 박사학위 받은 권문식 이사에게정 회장, 파일럿 센터 건설 계획 맡겨시작차 300대 만들 수 있는 미니 공장매주 현장 찾아 실무자 보고 받고 점검정몽구 회장은 카리스마를 갖고 재임 중 품질 개선 목표를 강하게 밀어부쳤다. 사진은 정몽구(왼쪽 두번째) 회장이 독일 뤼셀스하임 유럽기술연구소를 방문해 유럽 소비자를 위해 개발한 자동차를 살펴보는 모습./현대차그룹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독일 자동차 업체 벤츠를 다녀온 뒤 현대차에도 파일럿 센터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벤츠 출장을 함께 다녀온 권문식 이사에게 건설 계획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권 이사가 어떤 사람인지 고기영 한신대 교수에게 질문을 던졌다.기획 임무 맡은 권문식 이사―권문식 이사는 어떤 인물인가?“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하여 아헨공과대학에서 생산시스템 분야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의 저명한 응용과학연구소인 프라운호퍼 재직 중 정 회장이 직접 스카우트했다고 알려져 있다. 현대정공 유럽 법인장으로 근무하다 1999년 현대차로 옮겼다.권 이사는 정 회장이 현대차 회장이 된 후 어느 술자리에서 ‘권문식 너는 앞으로 연구개발본부를 맡아라’고 미리 점 찍었을 정도로 매우 신뢰한 인물이었다. 실제로 권 이사는 연구개발본부에 와서 정 회장이 추구했던 중요한 혁신들, 예를 들면 파일럿 센터 건립, 모듈화 추진, 플랫폼 개발, 전장사업 구조 개편, 연구개발 프로세스 정립 등 거의 모든 혁신에 관여했다.”고 교수가 말을 이어갔다.“정 회장은 권 이사를 정말 아꼈고 신뢰했다. 그래서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늘 그의 의견을 물어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 일에 관여하게 하는 일도 많았다. 권 이사 또한 직책과 직급에 관계없이 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문제들을 조율했다. 그 점에서 권 이사는 정 회장의 특급 참모였고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다.늘 정 회장의 뒤에서 묵묵히 일했기 때문에 그의 공로가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권 이사는 2000년대 현대차가 연구개발 부문에서 이룬 주요 혁신 성과의 숨은 공로자였다. 다만 회장의 사랑을 많이 받아서인지 한동안 연구개발본부를 떠나 있는 등 순탄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결국 2012년 다시 현대차로 복귀하여 연구개발본부장을 지냈고 2018년 부회장으로 퇴직했다.”정몽구 회장은 현대차의 품질 개선을 위한 파일럿 센터 건설 구상을 권문식 이사에게 기획하도록 했다. 사진은 권 이사가 지난 2016년 6월 1일 '2016 부산국제모터쇼'에서 강연하는 모습./연합뉴스 ―권 이사가 파일럿 센터 건립에 어떻게 관여했나?“권 이사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파일럿 센터 건립과 운영 계획을 짰다. 그는 부품에 대한 품질 검증, 제조 공정에 대한 안정성 확보, 양산 설비에 대한 사전 검증, 작업자들에 대한 숙달 교육 등 네 가지 목표를 세우고 정 회장에게게 보고했다. 정 회장은 이 보고에 매우 흡족해 했다고 한다. 이후 권 이사가 세운 계획에 따라 파일럿 센터 건립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이전에는 파일럿 센터 같은 시설이 없었나?“연구개발본부에 시작차를 만드는 시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소형차 위주로 50대 정도, 많으면 100대 정도의 시작차를 만드는, 고만고만한 규모의 시작실이 있었다. 다만 시작실은 실제 양산 라인과는 전혀 관계없이 일종의 워크숍(workshop·작업장) 개념으로 운영되었다.”울산공장의 축소판―새로 건립된 파일럿 센터는?“약 300 대의 시작차(파일럿 카)를 만드는 규모로 셋업(set up)되었다. 이는 독일에서 정 회장이 구상한 규모이기도 했다. 또한 파일럿 센터는 양산 라인과 완전히 동일한 라인으로 설계됐다. 컨베이어도 설치하고, 제조 공정도 최대한 양산 라인과 흡사하도록 세분화했으며, 생산 설비도 양산 공장 수준으로 갖추었다. 한마디로 파일럿 센터는 미니 양산공장이었다.이 파일럿 센터에서 생산기술, 연구개발, 생산, 품질 등 관련 부문이 협력하여 품질 문제를 집중적으로 점검했다. 이뿐만 아니라 협력업체들도 납품한 부품에 문제가 있으면 파일럿 센터에 들어와서 사전에 심도 있게 논의했다. 이는 양산 이전에 최대한 문제를 걸러낸다고 하는 품질경영의 취지에 따른 것으로 새로운 시도였다. 이전에는 양산 이후가 돼서야 문제가 생기면 협력업체들이 공장에 들어와 대책을 논의했다.”현대차그룹의 연구개발 역량은 현대차 남양연구소에 집중되어 있다. 사진은 지난 2024년 3월 31일 남양연구소에서 전기차 4축 동력계(파워트레인)를 시험하는 모습./현대차그룹 ―정 회장은 파일럿 센터 건립 작업에 어떻게 관여했나?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나?“아니다. 그럴 분이 아니다. 매주 현장을 찾아 진행 상황을 점검했을 뿐만 아니라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에피소드가 있다면?“파일럿 센터 건립 후 국내에서 생산되는 차들은 철저하게 검증을 받았다. 그런데 해외 공장에서 생산할 계획인 차들은 그렇지 못했다. 해외 공장은 국내 공장과 레이아웃(공장 배치)도 다르고 설비도 다르다. 따라서 해외에서 생산하려면 다시 품질 검증을 해야 하는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어떻게 대책을 세울 것인지 사내에서 한창 논의가 됐다.이때 정 회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해외 공장 레이아웃을 모형으로 만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A0 사이즈의 미국 공장 레이아웃, 인도 공장 레이아웃이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해외 공장이 미국과 인도에만 있었다. 이 레이아웃 모형을 보면 어떤 설비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로봇은 어디에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레이아웃 모형은 파일럿 센터 메인 프레젠테이션 공간에 보관하고 있다가 필요하면 빼서 볼 수 있도록 했다. 이로써 해외 공장 생산 차종에 대한 대응 문제가 해결되었다. 이후 이 모형은 디지털화의 진전에 따라 디지털 모델로 진화했다.”건설·운용은 김영우 전무―권 이사가 파일럿 센터 건립 계획도 짜고 건설 작업도 직접 담당했나?“아니다. 김영우 전무가 파일럿 센터장으로 임명되고 나서는 그가 센터 건립 추진을 맡았다. 정 회장은 연구개발본부로 내려갈 때 김 전무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상급자인 연구개발본부장이 배석은 했지만 정 회장은 별로 대응하지 않았다. 현장을 돌아보면서 ‘봤어?’ 하는 정도였다. 파일럿 센터와 관련된 주요 내용은 반드시 센터장으로부터 직접 보고를 받았다. 현장의 목소리를 중시하는 이런 특성은 정 회장 경영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있을 때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다.”―권 이사는 이후 특별한 역할이 없었나?“아니다. 권 이사의 역할은 센터장이 임명된 이후에도 계속됐다. 정 회장이 계속 파일럿 센터 문제에 관여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 회장은 연구개발본부에 내려오면 ‘그거(파일럿 센터) 어떻게 돼가?’ 하고 묻고는 ‘가자’며 권 이사를 동행하게 했다. 또 정 회장은 권 이사가 다른 일로 본사에 보고하려 가면 ‘그거 어떻게 돼가?’ 하고 파일럿 센터 상황을 물어보았다. 그래서 권 이사는 늘 파일럿 센터 진척 상황을 팔로우업(follow up) 하고 회장의 질문에 답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했다.”현대차 연구원이 지난 2024년 6월 10일 현대차 남양연구소 도면실에서 자동차 차체의 도면을 살펴보고 있다./ 고운호 기자 ―권문식 이사와 김영우 전무의 역할이 충돌할 수도 있지 않나?“아니다. 두 사람의 역할이 나뉘어져 있었다. 파일럿 센터 건립과 운영에 관한 실무 책임은 김 전무가, 전체 기획은 권 이사가 맡는 방식이었는데, 말하자면 이중 책임 체계였다.그래서 정 회장에 대한 보고도 김 전무는 시설이나 장비 구축, 프로젝트 진행 상황 등을 주로 보고 했다. 반면, 권 이사는 회사 전체 관점에서의 기획, 즉 건설 비용, 비용 대비 효과 등의 문제를 주고 보고했다. 때문에 파일럿 센터 건립 프로젝트의 최종 보고는 권 이사가 했다. 이때 그는 파일럿 센터가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에 기존의 1센터, 2센터 외에 3센터를 추가 건설하는 등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고 한다.”고기영 한신대 교수는 현대차 임원 출신으로, 현대차그룹 전직 고위 간부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현대차그룹 발전사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 ⑨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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