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파마 몰린 신약 개발 AI…SK바이오팜이 4조 베팅한 이유

'파마.AI', 화이자·사노피 등 13개 빅파마도 활용 중AI 발굴 역량 내재화…발굴 비용·시간 단축SK바이오팜 본사 ⓒSK바이오팜[데일리안 = 한보라 기자] SK바이오팜이 신약 개발에 인공지능(AI)을 본격적으로 도입한다. AI로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면 들이는 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SK바이오팜은 외부에서 기술을 빌려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중장기적으로는 발굴 역량 자체를 회사 안에 쌓겠다는 목표다. 시스템적으로 신약을 더 빠르고 싸게 찾아내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26일 업계에 따르면 SK바이오팜은 최근 AI 신약개발 기업 '인실리코 메디슨'과 최대 3조9488억원(25억7250만달러) 규모의 공동연구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로 쌓은 중추신경계(CNS) 영역에서의 전문성을 신경면역까지 확대하기 위해서다.SK바이오팜은 신경면역 영역의 신약 후보물질 3종을 발굴할 때 인실리코의 AI 신약개발 플랫폼 '파마.AI'를 활용할 예정이다. 발굴한 신약 후보물질의 글로벌 독점 권리는 100% SK바이오팜에 귀속된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분자 설계·검증 데이터도 자사에 축적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인실리코에 기대지 않고도 AI를 통해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할 역량을 갖추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인실리코의 기술력은 이미 검증돼 있다. 파마.AI는 질병을 일으키는 표적을 찾아내는 단계부터 다룬다. 여기 들어맞는 약물 분자를 처음부터 설계하는 일까지 한 플랫폼 안에서 아우른다. 사람이 일일이 후보물질을 합성하고 시험하던 과정을 AI 시뮬레이션이 대신한다.그런 만큼 신약 후보물질을 찾는 기간이 줄어든다. 이미 인실리코는 글로벌 전통 제약사의 도움 없이 특발성 폐섬유증 치료제 신약 후보물질을 1년 6개월 만에 발굴했다. 통상 4~5년 걸리는 전임상 후보 도출 기간을 3분의 1로 줄인 것이다. 효능도 증명됐다. 이 후보물질은 미국과 중국에서 진행한 임상 2상에서 효능을 입증했다.글로벌 빅파마들이 인실리코에 몰리는 이유다. 인실리코가 빅파마들과 맺은 계약은 파이프라인 기술이전을 포함해 20억달러를 웃돈다. 세계 상위 20대 빅파마 중 13곳이 인실리코의 파마.AI를 도입하면서다. 특히 사노피는 신약 후보물질 6종을 파마.AI로 발굴하는 조건으로 최대 1조6500억원(12억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이번 SK바이오팜 계약과 비슷한 구조다.국내에도 파로스아이바이오 등 AI로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대체로 후보물질 발굴이나 초기 임상 단계에 머물러 있다. 반면 인실리코는 AI로 설계한 신약을 글로벌 임상 2상에서 효능까지 입증한 드문 사례를 갖고 있다.엔비디아와의 협력설도 인실리코를 거치면 실마리가 잡힌다. 인실리코는 파마.AI에 적용된 AI 모델에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활용해 왔다. 2015년 엔비디아의 고성능 컴퓨팅 시스템을 가장 먼저 도입한 기업 중 하나다. AI 신약개발에 GPU를 끌어다 쓴 초기 사례인 셈이다. SK바이오팜은 이번 협력으로 인실리코를 통해 엔비디아 기반 기술과 간접적으로 연결된다.SK바이오팜은 엔비디아와의 직접 협력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지를 남기면서도 선을 그었다. 회사는 최근 "엔비디아를 포함한 AI 관련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면서도 "당장 엔비디아와 협업이 진행 중이라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밝혔다.미국의 대중 규제도 한 발 피해갔다. 인실리코는 미국 생물보안법이 겨냥하는 기업군과는 거리가 있다. 법인 역시 케이맨제도에 등기를 두고 홍콩 증시에 상장한 구조다. 앞서 글로벌 1위 제약사 일라이 릴리도 같은 인실리코와 약 3조8000억원(27억5000만달러) 규모 계약을 체결했었다.물론 변수는 남아 있다. 백악관 관리예산국(OMB)은 생물보안법 발효 이후 1년 안에 '우려 바이오기업(BCC)' 명단을 공표해야 한다. 아직 명단이 비어 있는 만큼, 확정 과정에서 규제 대상이 어디까지 넓어질지 불투명하다. SK바이오팜이 분산 투자에 나서는 배경이다. 회사는 아시아의 다른 신약 발굴 AI 기업들과도 추가 파트너십을 논의 중이다. 성과가 가시화되는 시점에 공개하겠다는 입장이다.SK바이오팜 관계자는 "이번 계약에 앞서 글로벌 규제 환경을 면밀히 검토했다"며 "신약개발 전 과정을 SK바이오팜이 주도하고 파트너사의 AI 플랫폼은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독립적인 R&D 구조를 짰다"고 밝혔다. 이어 "여러 우려 사항을 고려해 계약을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원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