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구실… 가격 안 내리는 제과 업계
밀가루·설탕값 인하속 ‘요지부동’인건비·유가 등 이유로 신중 입장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 설탕이 진열되어 있다. 연합뉴스밀가루와 설탕값이 내려가면서 라면과 제과 업계를 향한 가격 인하 압력이 커지고 있지만, 업계는 좀처럼 가격 조정에 나서지 않고 있다. 업계는 밀가루와 설탕이 제품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은 데다 인건비와 물류비 등 비용 부담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꼽고 있다. 오히려 최근 미국과 이란 전쟁에 따른 유가 급등도 가격 인하를 하지 않는 구실로 작용하고 있다.10일 업계에 따르면 라면·제과 업계에서 제품 가격 인하를 발표한 기업은 아직 없다. 농심·삼양식품·오뚜기·팔도 등 라면 업체와 롯데웰푸드·오리온·크라운해태홀딩스 등 제과업체들은 가격 인하 여부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최근 정부가 밀가루와 설탕, 전분당 등 가공식품 핵심 원재료의 가격 담합 의혹을 조사하면서 관련 원재료 가격이 잇따라 인하됐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설탕은 16.5%, 밀가루는 7.9%, 전분당은 16.7% 수준의 가격 인하가 이뤄졌다. 여기에 이재명 대통령이 인하된 원가가 소비자 가격에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일부 제빵업체는 제품 가격을 낮추기 시작했다. 뚜레쥬르는 오는 12일부터 빵·케이크 17종의 가격을, 파리바게뜨는 13일부터 11종의 가격을 각각 인하할 예정이다.하지만 라면과 제과 업계는 요지부동이다. 업계는 당초 밀가루와 설탕이 제품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는 점을 주요 이유로 제시했다. 한 라면업계 관계자는 “가격을 산정할 때는 밀가루 외에도 소스 제조비, 인건비, 전기료, 물류비 등 다양한 요소가 반영된다”며 “밀가루 가격 인하가 제조 원가 절감에는 도움이 되지만 제품 가격 조정 요인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수익성도 가격 인하를 하지 않는 요인으로 꼽고 있다. ‘불닭볶음면’ 수출 확대 영향으로 삼양식품의 영업이익률은 18% 안팎에 달하지만, 농심과 오뚜기 등 주요 라면업체는 5~7%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제과업계 역시 상황이 비슷하다. 해외 사업 비중이 높은 오리온만 15% 안팎의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롯데웰푸드와 크라운해태 등 주요 제과업체의 영업이익률은 3~6% 수준에 그친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수익성을 고려하면 가격 인하 여력이 크지 않다는 설명이다.여기에 최근 국제 정세도 가격 인하를 하지 않는 구실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 간 무력 충돌 여파로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서 물류비와 포장재 가격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제과업계 관계자는 “무력 충돌 여파가 어느 시점에 반영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가격 인하를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업계에서는 가공식품 가격이 전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점도 강조한다. 통계청 소비자물가지수 기준 가공식품 가중치는 약 8% 수준으로 물가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설명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가공식품 가격 영향은 크지 않은데 식품업계에만 가격 인하 압박이 집중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다만 정부는 가공식품 가격이 체감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원가 인하분이 소비자 가격에 반영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5일 농심, 삼양식품, 오뚜기, 팔도 등 라면업계와 간담회를 열고 식품 가격 동향과 전망을 논의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가격 조정에 소극적인 식품업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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