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해상풍력도 해외서 PF…“한국판 메가뱅크 다시 띄워야”

[코어파워 KOREA] <2부> 국가 대도약 설계도④파이낸스-미약한 신산업 지원체계반도체 팹 1기당 최대 150조 필요선박금융은 외국기관이 66% 차지자본 적은 시중銀, 위험투자 기피국민성장펀드로는 수요 감당 안돼“전략산업 대규모 저리자금 공급을”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11월 “정확히 추산하기 어렵지만 용인 (반도체) 팹만으로도 약 600조 원의 투자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반도체 팹(공장) 1기당 건설 및 설비투자 비용은 약 30조~40조 원 안팎인 것으로 추정된다. 반도체 장비와 설비 고도화, 환율 등을 고려하면 150조 원까지 규모가 커진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광주에 ‘300조 원+α’의 추가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금 소요는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다.시장에서는 반도체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이익을 내고 있지만 대출과 시장 차입 등으로 조달을 다변화해야 중장기 투자 여력을 확보해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국내 은행들은 자기자본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적고 각종 규제에 막혀 있어 제대로 된 자금 지원이 어렵다.실제 스페인 산탄데르은행만 해도 총자산이 2조 2520억 달러로 국내 최대 은행인 KB금융(5527억 달러)의 4배가량 된다. 한국보다 GDP 규모가 작은 스위스(UBS)와 네덜란드(라보뱅크·ING) 등도 국내 최대 은행인 KB금융보다 큰 대형 은행을 보유하고 있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가펀드와 정부은행·지방정부가 삼각 구조를 이뤄 전략산업에 대규모 자금을 공급하는 중국과 달리 한국은 기업이 홀로 뛰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산업은행은 ‘첨단전략산업 지원을 위한 정책금융 활용 방안 및 주요 산업 육성 전략’ 보고서에서 “국민성장펀드 150조 원 중 저리대출 50조 원이 모두 실행돼도 산업금융에 필요한 전체 정책금융 수요에 비해 상당히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국민성장펀드만으로 첨단전략산업의 투자 수요를 모두 감당할 수 없다”고 밝혔다.민간 금융사의 부재는 해외 의존도를 높이는 결과를 낳고 있다. SK E&S가 전남 신안 임자도 앞바다에 조성 중인 전남해상풍력은 96㎿(메가와트) 규모의 국내 최대 민간 주도 해상풍력 프로젝트다. 사업비 가운데 5800억 원을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조달했는데 이 가운데 3800억 원을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등 외국계 은행으로부터 받았다.조선업도 외국계에 점령당한 상태다. 한국해양진흥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적 선사가 보유한 선박 1041척에 투입된 선박금융 78억 9700만 달러에서 외국계 금융기관 점유율은 66%로 전년 대비 3%포인트 확대됐다. 정책금융이 아닌 국내 민간금융이 공급하는 선박금융은 전체 3~7%로 한 자릿수다.최남진 원광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내 시중은행들의 리스크 회피 성향이 강해 위험 투자를 기피하는 문제도 있지만 자본 규모가 충분하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며 “해상풍력 터빈 몇 개, 초대형 선박 몇 척만 돼도 수조 원대 자금이 필요한데 국내 자본만으로는 조달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라고 강조했다.시장에서는 2010년대 초반 나왔던 한국형 초대형 은행(메가뱅크)에 대한 논의를 다시 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미중 패권 정책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각국이 산업 정책을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금융 지원은 필수 요소가 되고 있다.자본시장이 발전한 미국은 민간 자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보조금 지급 등을 활용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본은 3대 메가뱅크 중심으로 첨단산업에 자금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일본 미즈호은행은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와 손을 잡고 우주 전문 기술평가 시스템을 구축해 전략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는 “위험한 벤처 투자는 증권사에 맡기고 은행은 국가 첨단전략산업에 대규모 자금을 저리로 공급하는 역할을 맡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국책은행도 더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수출입은행만 해도 규모가 작다 보니 방위산업 수출 때마다 주기적으로 지원 한도에 부딪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현대로템 등 주요 방산 업체들은 2023년 폴란드 등에 K9 자주포, 다연장 로켓 천무 등 30조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으나 금융 지원을 받지 못해 수출이 무산될 위기를 겪기도 했다. 지난해 말 기준 수은의 자기자본은 186억 7000만 달러로 중국(562억 4000만 달러), 일본(217억 1000만 달러) 대비 33%·86% 수준에 불과하다.국내에서도 산업자본이 금융시장으로 유입될 수 있도록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해 은행의 규모를 더욱 키울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최 교수는 “고도성장기에 제대로 된 시스템이 없을 때 산업자본의 ‘사금고화’를 막기 위해 금산분리 규제를 도입했는데 지금은 시스템이 충분한 상황”이라며 “금산분리 규제가 산업 발전의 걸림돌이 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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