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전이 핵심인 반도체 입지, 호남 유리하지 않아”

‘반도체 석학’ 황철성 서울대 교수서울대 황철성 교수가 2024년 10월 서울 여의도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반도체 패권 탈환을 위한 한국의 과제'를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반도체 입지는 ‘인(人·사람), 수(水·용수), 전(電·전력)’이 핵심입니다. 문제는 호남이 결코 유리한 입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황철성(62) 서울대 재료공학부 석좌교수는 26일 사실상 정부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삼성·SK의 호남 반도체 투자 논의에 대해 이같이 우려했다. “반도체 기업에 입지 선택권을 주고 그곳에 정부가 인프라를 깔아주는 것이 답인데, 지금은 정부가 먼저 입지를 정하고 기업에 따라오라는 반대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고 했다.황 교수는 반도체 연구와 교육 분야의 최고 석학으로 꼽힌다. SCI급 논문 785편을 냈고, 배출한 석·박사 제자만 200여 명이다. 지난해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최고 과학기술인상’을 받았다.황 교수가 꼽은 가장 큰 문제는 전력이었다. 그는 “현재 전남 지역은 신재생 에너지가 풍부하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이는 장점이 아니라 치명적인 단점”이라고 했다. 황 교수는 “태양광은 설비 효율이 15~20% 수준으로 낮은 데다 간헐성 보정을 위한 ESS(에너지 저장 장치) 설치에도 수십조 원이 필요하고 화재 위험까지 뒤따른다”고 말했다. 그는 “한때 반도체 이전론이 일었던 전북 새만금에 삼성·SK 용인 산단 필요 전력의 3분의 1인 5GW(기가와트)만 조달한다면 새만금 간척지 면적의 97%를 태양광 설비로 뒤덮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했다. 또 전력의 신뢰도가 낮아 LNG(액화천연가스), 원전 등과 병행해야 하는데 환경론자들이 추가 건설을 막고 있고, 이는 사실상 반도체 생산을 하지 말라는 뜻이라는 것이다.황 교수는 ‘인재 확보’도 큰 난제로 꼽았다. 그는 “삼성, SK가 경쟁력을 유지해온 이유는 연구소와 생산 라인이 밀접하게 연계돼 있어 피드백이 굉장히 빠르다는 점”인데 “R&D가 지금처럼 수도권에 남아있고 생산 공장만 호남에 지으면 경쟁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일례로 대당 수천억 원 하는 첨단 EUV(극자외선) 장비는 대량 도입이 어려워 R&D 인력이 생산 라인에서 실험하는 경우가 많은데, 첨단 팹이 호남에 있으면 번번이 웨이퍼를 들고 어떻게 내려가겠느냐는 것이다. 황 교수는 “R&D 본부가 미국 아이다호주에 있고, 생산 기지는 싱가포르와 대만, 일본에 퍼져 있는 메모리 업계 3위 마이크론이 효율성 저하에 시달리는 이유”라고 했다.그는 호남행이 확정되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의 어려움이 특히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금도 협력사들이 인재를 애써 키워놓으면 줄줄이 대기업으로 빠져나가는데, 호남에 큰 비용을 들여 추가 기지를 짓고 사람을 또 뽑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황 교수는 기업들의 호남행(行)이 불가피한 결정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 배경으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절차 지연 문제를 꼽았다. 그는 “삼성과 SK 입장에서 현재 가장 시급한 문제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라며 “용인 조성 절차를 정상화하고, 전력 문제 해결 등을 위해 일종의 딜처럼 정부 제안을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했다.실제로 용인 클러스터는 올 들어 ‘호남 이전론’이 불거진 이후 조성 절차가 지연되고 있다는 호소가 잇따랐다. 지난 22일에는 국무총리 소속 사회대개혁위원회가 ‘(용인) 국가 반도체 산단 정책에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며 시민 사회가 참여하는 토론회를 주장하기도 했다. 위원회 수장인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대표는 과거 한미 FTA 반대, 광우병 촛불 시위, 사드와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 등에 참여했던 인물이다.황 교수는 “현재 용인 클러스터의 전력 문제조차 해결 못 하고 있는데 호남은 재생에너지가 많아 괜찮다는 주장을 앞세워 기업들을 호남으로 이끌고 있다”며 “지역 균형 발전은 중요하지만 그게 국가 핵심 산업 경쟁력을 훼손하는 방식이라면 우리 스스로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퇴장을 선택하는 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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