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키운 ‘종이의 시간’…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최현수 제지연합회장, ‘종이의 날’ 간담회최현수 한국제지연합회장이 1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공정 지능화 등 제지산업의 미래 경쟁력 강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뉴시스 올 상반기 중동발(發) 공급망 위기 속에 플라스틱을 대신할 소재로 종이가 부각됐다. 전쟁이 일단락된 지금, 제지업계가 이 기회를 이어나가려면 산업의 체질을 바꾸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최현수 한국제지연합회 회장(깨끗한나라 회장)은 16일 ‘제10회 종이의 날’을 맞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제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산업 구조 자체를 더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하며, 고부가가치화된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현재 우리나라의 종이 생산량은 연 1100만t(생산액은 약 27조원)으로 세계 8위, 1인당 소비량은 184㎏으로 세계 6위 수준이다. 이 가운데 24%가량을 해외에 수출한다.이런 기간산업의 생존을 위해 최 회장이 제시한 구조 전환의 축은 인공지능(AI) 기반 공정 스마트화, 품질 차별화, 수출 영토 다변화, 가치사슬 상생 연대 등 네 가지다. 그는 “원재료 수급부터 생산·유통·에너지 효율화까지 AI를 접목할 수 있다”고 했다. 품질 면에선 K뷰티·K푸드처럼 까다로운 소비자 눈높이에 맞춘 ‘K-위생용품’, 나노셀룰로스를 활용한 화장품·반도체 소재를 키우고, 내년부터 강화되는 북미·유럽의 재활용 의무 규제를 오히려 기회 삼아 백판지 등으로 시장을 넓힌다는 구상이다. 종이의 원재료가 되는 산림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세계 8위 생산국 자리를 지키려면 89%에 이르는 재활용률 등 ‘자원순환 경쟁력’을 국가 전략 자산으로 키워야 한다는 제언도 내놨다.이를 위해선 정책의 일관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최 회장은 강조했다. 그는 몇 년 전 ‘종이 빨대’ 사례를 들었다. 플라스틱 규제에 맞춰 종이 빨대 설비에 투자한 기업들이 이후 ‘플라스틱 빨대가 오히려 환경에 낫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정책과 규제, 인센티브가 충분한 검토를 거쳐 만들어지고 일관되게 유지돼야 기업이 안심하고 설비와 연구개발(R&D)에 투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측 가능한 친환경 가이드라인과 회수·선별 인프라 고도화, 저탄소 설비 투자에 대한 금융·제도적 인센티브 등도 정부에 주문했다.제지산업은 올 상반기 중동 정세 불안에서 비롯한 글로벌 공급망 충격에 휘청였다. 최 회장은 “펄프 같은 원자재와 에너지, 해상 운송망까지 코로나 시기와 비슷한 패닉이 왔다”고 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5월 실시한 ‘중동 관련 중소기업 원부자재 수급 애로 설문조사’에서도 원부자재 수급 기업의 94.6%가 원가 부담 증가를, 80.7%가 물량 부족을 각각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이런 위기는 종이가 주목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석유화학 기반 플라스틱의 원료 수급과 가격 부담이 커지자 포장재 등에서 종이로 눈을 돌리는 수요가 늘면서다. 다만 전쟁이 일단락되며 상대적으로 비싼 종이의 경쟁력이 다시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최 회장은 “종이가 대체재로 부각된 건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쿠팡 등 이커머스 포장과 식품·위생용품 포장에서 플라스틱을 종이로 바꾸는 흐름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것이다.최 회장은 “대한민국 제지산업은 종이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바탕으로 포장·물류·바이오·첨단 소재 영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 산업’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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