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거의 따라잡아, 문제는 기회”… 정회식 대표의 ‘자강론’

[K반도체의 미래-소부장에게 듣는다] 포토레지스트 소재 기업 삼양엔씨켐 삼성전자 협력 속 선진 기술력 확보 HBM·유리 기판용 소재 개발 박차 “우린 ‘작품’ 아닌 ‘제품’ 만들어야”정회식 삼양엔씨켐 대표가 8일 경기도 화성 동탄연구소에서 회사의 주력 제품을 소개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삼양엔씨켐은 반도체 제조 핵심 소재 포토레지스트의 필수 원료인 고분자(폴리머)와 광산발산제(PAG)를 국내 최초로 국산화했다. 화성=권현구 기자“불화크립톤(KrF)·불화아르곤(ArF)은 일본 경쟁사 제품에 뒤지지 않는 수준이고, 극자외선(EUV)용 소재는 90~95%가량 따라잡았습니다. 문제는 국내 소재 기업에 주어지는 기회가 적다는 점입니다.”8일 경기도 화성 삼양엔씨켐 동탄연구소에서 만난 정회식 대표(63)는 일본 반도체 소재 기업들과의 격차와 관련해 이같이 설명했다. 일본이 장악한 포토레지스트(감광액) 핵심 소재 영역에서 기술 격차를 상당 부분 좁혔지만, 고부가가치 기술을 개발할 기회 자체가 부족하다 보니 현실적 한계가 존재한다는 얘기다.삼양엔씨켐은 반도체 제조 핵심 소재 포토레지스트의 필수 원료인 고분자(폴리머)와 광산발산제(PAG)를 국내 최초로 국산화한 기업이다.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기판 위에 미세한 회로를 그리는 노광공정에 쓰인다. 삼양엔씨켐이 제조한 소재를 동진쎄미켐 등이 받아 포토레지스트로 가공한 뒤 이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공급한다. 정 대표는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그룹장과 듀폰코리아 대표 등을 역임한 반도체 전문가다.삼양엔씨켐의 기술 자립 성공 비결은 우선 대기업과의 협력에 있다. 2016년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3D 낸드플래시’ 반도체를 개발할 당시 반도체를 높이 쌓아 올리는 기술 특성상 기존보다 훨씬 두꺼운 특수 포토레지스트가 필요했다. 그러나 기술 난도가 높아 이 분야 선두인 일본 기업들조차 구현하지 못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삼양엔씨켐·동진쎄미켐과 손잡고 제품 개발에 나섰고, 세계 최초로 핵심 원료 개발과 양산에 성공하며 글로벌 수준 기술력을 확보했다.정 대표는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당시 국내 소재 기업들 사이에서 기술 자립화 바람이 불었으나,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고 돌아봤다. 당시 일본은 한국을 수출 절차 우대 조치국인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배제하며,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수출 벽을 높였다. 정 대표는 “일본 수준으로 기술력을 끌어올리려면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하지만 대외 리스크가 터졌을 때 1~2년 반짝 집중하다가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다시 기존 공급처(일본 업체들)로 돌아가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초기 제품 품질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국내 기업이 실력을 키울 시간과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삼양엔씨켐은 매출액의 4% 이상을 연구개발(R&D)에 투입한다. 기술 독립을 넘어 세계 무대의 강자들과 경쟁할 내공을 쌓으려는 것이다. 특히 인공지능(AI) 붐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현시점을 시장 판도를 바꿀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정 대표는 “AI 산업이 성장하면서 미세 공정용 EUV 소재와 차세대 패키징용 소재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며 “HBM 및 유리 기판용 포토레지스트 소재를 각각 개발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국내 소재 글로벌 기업들과 제품 개발을 진행, ArF·EUV용 소재 샘플을 세계적 반도체 기업 3곳에 납품했다”고 전했다.최근 그는 중·일 관계를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대만 관련 발언 이후 양국 관계가 경색되면서 한국 기업엔 중국 시장 진입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AI 반도체 육성에 사활을 건 중국 역시 핵심 소재 분야에서는 일본에 의존하는 실정이다.정 대표는 “삼양엔씨켐을 포함한 국내 소재 기업들에 새로운 진출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면서 “중국을 중요한 성장 시장으로 판단하고 있는 만큼 기존 제품을 중심으로 신규 고객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중국도 반도체 소재 국산화 정책을 적극 추진 중이어서 시간은 걸리더라도 결국 기술 자립을 이룰 것으로 본다”며 경계감도 드러냈다.정 대표는 ‘K-반도체’ 미래를 위한 소부장 기업의 역할을 묻는 말에 “고통을 수반하더라도 해외로 나가 경쟁을 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반도체 성능 향상을 이끌 하이엔드 소재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만큼 고객사 로드맵에 맞춰 제품을 선제 개발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춰야 한다”며 “우리는 ‘작품’이 아닌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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