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호황' 반도체, PEF 운용사는 관심없다…이유는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이 반도체 상승 국면에서도 신중한 투자 기조를 이어가면서 그 배경을 놓고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산업 특성상 경기 순환 주기(사이클)와 펀드 만기가 충돌하면서 반도체 제조·패키징보다 현금흐름이 좋은 소재·부품·공정 소모품 투자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출자(LP)의 보수적 성향을 충족하기 까다롭다는 점도 투자를 주저하는 원인으로 꼽힌다.1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대형 운용사들은 블라인드 펀드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 반도체 제조 기업 투자를 후순위로 미루는 경향이 나타난다. 반도체 산업은 기술의 세대교체가 빠르고 주기적으로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한 장치 산업이다. 반면 PEF의 만기는 8년에서 10년 수준이다. 실제 투자금을 집행하고 기업 가치를 제고한 뒤 회수하는 기간은 3년에서 5년 내외로 한정된다.반도체 하강 국면 초입에 자금을 투입해 상승 국면에 지분을 매각하는 시점 설정이 요구되지만 글로벌 거시경제 변수와 공급망 다변화 등으로 인해 경영 상황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 PEF업계 판단이다. 스틱인베스트먼트는 과거 아이티엠반도체, 솔브레인, 원익머트리얼즈 등 소재·부품 기업에 투자한 뒤 회수한 이력이 있다. 이후 반도체 섹터의 투자는 두드러지지 않았다.MBK파트너스도 과거 전자·반도체 고객사를 둔 대성산업가스에 투자한 뒤 엑시트(투자금 회수)한 경험이 있지만, 아직까지 국내 반도체 기업을 바이아웃(경영권 인수)한 사례는 없다.한앤컴퍼니는 반도체 소재와 공정 소모품에 투자했다. 2024년 SK엔펄스 파인세라믹 사업부를 인수해 솔믹스로 출범시켰고 SK스페셜티와 SK엔펄스 CMP패드 사업부도 차례로 인수했다. 이들 투자는 순수 제조 기업이 아니라 반복 수요를 갖춘 전공정 소재·소모품 기업이라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대신PE의 테크윙 교환사채(EB) 투자나 크레센도의 HPSP 인수 등 일부 사례를 제외하면 대형 바이아웃 시장에서 반도체 제조 기업은 외면받았다.과거 반도체 하강 국면 직전에 자금을 투입했다가 회수 시기를 놓치고 자산 가치를 상각한 선례도 PEF의 투자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2007년 보고펀드와 KTB PE는 대규모 인수금융으로 국내 유일 웨이퍼 제조사인 LG실트론 지분을 인수했으나 금융위기와 업황 악화가 겹치며 각각 2014년과 2016년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맞았다. 국내 LP의 보수적인 기조도 장벽이다. 반도체 기업은 불황기에 수주가 급감하고 재고 평가 손실을 반영하면서 적자로 돌아서는 경우가 빈번하다. 실적 변동성은 원금 보존을 중시하는 LP의 투자 심의를 통과하기 어렵게 만든다.지속적인 설비 투자(CapEx)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후속 자금 공급이 끊기면 기술 경쟁력이 뒤쳐진다. 반도체 패키징 기업 네패스라웨는 2024년 양산 수율 확보를 위한 추가 자본 지출을 감당하지 못해 자금줄이 막혔고 결국 구조조정과 경영권 매각에 들어갔다.BNW인베스트먼트와 산업은행, 기업은행,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PE), SG PE, SKS PE 등 FI는 네패스라웨가 발행한 전환사채(CB)와 전환우선주(CPS)에 2100억원을 투자했지만 엑시트에 난항이 예상된다.반면 식음료, 폐기물 등과 제조업은 매출 예상이 수월하고 꾸준한 현금 흐름을 기대할 수 있다. 사모펀드가 인수금융을 활용한 차입매수(LBO) 전략을 실행하고 구조조정을 통한 수익성 개선을 도출하기 수월한 편이다.IB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은 경기 사이클 변동이 크고 투자 진입과 회수 시점을 맞추기가 불가능에 가깝다"며 "정교하게 포트폴리오를 분석하더라도 펀드 만기가 정해져 있고 LP에게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PEF의 특성상 대다수 운용사가 반도체 투자를 꺼리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원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