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화되는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공수표 되지 않기 위해 따져볼 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삼성전자 제공정부가 오는 29일 호남 지역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등을 담은 대규모 투자 방안을 발표한다. 투자 규모가 수백조원대에 이르는 역대 최대 규모의 인프라 투자가 될 것이라고 한다. 산업계 등에선 유례없는 반도체 초호황기(슈퍼사이클)를 맞아 이번 투자가 단순히 선언에 머무르지 않고 제대로 된 인프라 조성이 될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과 지역 간 관계 조율 등 구체적인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호남에 반도체 클러스터, 충청·영남에도 투자 확대할 듯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의 한 호텔에서 열린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 입장하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업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청와대는 29일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 보고회’를 열고 반도체·인공지능(AI)·로봇 등 첨단산업 분야 투자 계획을 발표한다. 김용범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은 지난 26일 “지금까지 보기 어려웠던 규모의 숫자가 제시될 것”이라며 “워낙 규모가 커 ‘이게 진짜냐’는 논쟁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호남 지역에는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설 것으로 관측된다. 당초 웨이퍼를 자르고 묶는 ‘후공정’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졌지만, 막판 웨이퍼에 회로를 새기는 ‘전공정’ 팹(공장)까지 신설하는 방안이 급부상했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분과, 전력·용수 조달이 쉽다는 실용적 측면을 함께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28일 페이스북에 “수도권의 높은 토지 비용과 제한된 인프라 여건을 고려할 때 지방이 현실적인 대안이 됐다”며 “산업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서남권의 새로운 성장 기반을 만드는 국가적 프로젝트”라고 밝혔다.호남뿐 아니라 충청·영남권에도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다. 삼성그룹은 기존 반도체 생산 거점인 충청권에 첨단 소재·부품 산업단지를 조성해 생태계를 확장하고, 영남권에는 반도체 기판 및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기존 제조 역량을 강화하는 투자를 할 것으로 전해졌 거론된다. 정부의 ‘수도권 일극체제 극복’ 기조에 발을 맞추려는 의도로 풀이된다.용인과 관계 설정 과제·반도체 사이클 변수도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는 지역균형발전을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지만, 현실화까지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우선 기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과의 관계 설정이 과제로 꼽힌다. 정부는 용인 계획을 수정하지 않고 호남에 추가로 클러스터를 구축할 방침이다. 당초 2040년대 중후반으로 예정했던 용인 클러스터 완공 시점도 반도체 초과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2035년쯤으로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문제는 인력·인프라·건설 장비의 병목 현상 우려다. 광주·전남 전공정 공장을 짓기 위해서는 별도의 취수원과 초순수 설비·변전소 등이 필요하다. 호남은 전력·용수 등 기본 자원은 풍부하지만 이를 반도체 공정용으로 정제·공급할 인프라는 새로 구축해야 한다. 이를 구축할 전문 인력도 확보돼야 한다. 용인과 호남에 투자가 동시에 이뤄지면 관련 인프라 구축 수요와 인력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병목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우선 확보되는 물량은 용인에 먼저 배정하고 추가 고객 수요가 있을 때 계획에 맞춰 호남 공장을 점차 늘리는 단계적 증설이 유력하다”며 “상황에 따라 두 지역 간의 투자 속도를 조절하는 것도 기업들이 염두에 둘 것”이라고 말했다.지역 간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것도 관건이다. 반도체 공장은 세수·일자리 효과가 커 지역에서 선호하는 시설이다. 하지만 방류수를 받는 지역이나 송전망이 지나는 지역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해 입장이 다르다.2025년 2월 경기 용인시 원삼면의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 현장. SK하이닉스 제공용인 클러스터 1기 팹도 당초 2022년 착공 예정이었으나 지방자치단체의 반발에 직면하면서 2025년에야 첫 삽을 뜰 수 있었다. 당시 오·폐수 방류 지역으로 거론된 안성시가 “오·폐수가 지역 하천으로 유입될 수 있다”고 반발해 환경영향평가가 추가로 진행됐다. 용수 공급지역인 여주도 인허가 부담 등을 이유로 난색을 보였고, 1년 6개월간 정부와 논의 끝에 상생 방안이 마련되면서 갈등이 일단락됐다.이 교수는 “클러스터 조성으로 혜택을 받는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이 갈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가 발표만 하고 끝낼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중재를 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언제까지 지속할지도 변수다. 최근 AI 붐으로 반도체 수요가 공급을 크게 웃돌고 있지만 반도체는 전통적으로 수요·공급에 따른 가격 변동이 큰 산업이다. 특히 범용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중국 반도체 업체들의 공장 증설로 2027년 말부터 병목이 다소 해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공급 과잉으로 업황이 꺾이면 업체들의 생산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업황이 부진했던 2019년 설비투자를 당초 계획대비 20%가량 줄였다. SK하이닉스도 2018년 약 17조원 투자에서 2019년 12조7000억원, 2020년 9조9000억원으로 설비투자를 점차 축소했다.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금까지 정부 주도 프로젝트에서 기업들이 수백조원대 투자를 언급했다가 사업환경 변화를 이유로 흐지부지된 경우가 적지 않다”며 “국가적 투자인 만큼 단순히 규모만 강조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시늉만 하는 게 아니라 전폭적으로 지원해 이른 시일 내 호남에 자체 생태계를 구축하고 ‘집적 효과’를 내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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