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바이오 클러스터 ‘건설’에서 ‘생태계’로 전환할 때 [스...

외형 성장 이면, 지속가능성 정책 논의 필요 선택과 집중, 권역별 밸류체인 연계 강화해야 ‘백화점식 바이오단지’ 지양…지역별 차별화 필수미국 보스턴에 위치한 세계 최고의 바이오 클러스터 ‘켄달 스퀘어’. [사진 한국바이오협회 홈피][황주리 한국바이오협회 대외협력본부장] 대한민국 바이오 산업은 전국적인 클러스터 조성 열풍 속에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바이오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설정하고, 주요 거점에 대규모 건축물과 연구 시설을 구축하는 데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 성장 이면에는 지속 가능성에 대한 정책적 논의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현재 가동 중인 다수의 바이오클러스터는 진정한 의미의 혁신 거점이라기보다 공급자 위주의 하드웨어 공급 모델, 이른바 ‘아파트 분양 방식’에 가까운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하드웨어 중심 조성 모델의 현황과 구조적 한계정부 주도의 방식은 부지 조성 후 취득세 감면이나 임대료 할인 등 정량적 인센티브를 통해 기업 입주를 유도하는 구조다. 이는 신도시 아파트를 건설하고 입주민을 채워 넣는 하드웨어 중심의 사고와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바이오 산업은 제조 위주의 산업군과 달리 고도의 전문 지식과 자본, 그리고 장기적 연구 결과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특수성을 지닌다. 건물을 짓고 바이오 간판을 달면 혁신이 일어날 것이라는 가설은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를 자동으로 결정한다는 치명적인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실제로 지자체별 예산 집행 내역을 살펴보면, 많은 경우 건축비와 장비 구축 등 고정 자산 형성에 예산의 대부분이 집중되어 있는 반면, 기업 간 네트워킹이나 글로벌 파트너십 매칭 등 소프트웨어적 지원 비중은 두 자릿수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텅 빈 복도와 가동률이 낮은 최신식 장비만으로는 글로벌 자본의 유입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이는 결국 국가적 자원의 낭비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향후 클러스터의 경쟁력은 단순한 시설 제공을 넘어 인재와 기술이 충돌하며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밀도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드웨어 중심 투자가 반복되는 데에는 나름의 구조적 이유가 있다. 대규모 건축·시설 사업은 예산 집행의 규모가 크고, 완공 시점에 눈에 보이는 성과물을 남길 수 있어 중앙정부와 지자체 모두에게 ‘정치적 성과’로 포장되기 쉽다. 반면, 네트워킹 프로그램이나 글로벌 파트너십, 인력 양성 등 소프트웨어 사업은 효과가 중장기적으로 나타나고 정량 평가가 상대적으로 어려워 단기 성과를 중시하는 예산·의사결정 구조 안에서는 후순위로 밀리기 쉽다. 이 같은 구조적 편향이 결국 ‘건물은 많은데,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설명하기 어려운’ 클러스터를 양산하는 근본적인 배경이 되고 있다.대전 대덕, 대한민국판 보스턴의 원형이자 자생적 성지대한민국에서 보스턴 켄달 스퀘어의 철학과 가장 닮아있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대전 대덕연구단지다. 켄달 스퀘어는 세계 최고의 바이오 클러스터다. ‘지구에서 가장 혁신적인 1제곱마일 스퀘어’를 표방하며, 하버드·매사추세츠 주립대 등 명문대와 연구중심 임상병원, 연구성과물을 상용화할 벤처기업 등이 몰린 곳이다. 이곳은 정부의 인위적인 분양 중심 정책에 앞서 카이스트(KAIST)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공공연구기관을 기반으로 과학자와 연구자들이 자발적으로 뿌리를 내리며 형성된 '기술 중심 자생적 생태계'의 대표 사례다.▲리가켐바이오(레고켐바이오) ▲알테오젠 ▲펩트론과 같은 1세대 바이오 벤처들은 대덕의 연구 인프라와 인적 자원을 자양분 삼아 성장했다. 특히 KT대덕2연구센터에서 출발한 펩트론은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항체 기술을 바탕으로 글로벌 제약사로부터 초기 투자를 유치하며 대덕의 성공 모델을 증명했다. 이들은 단순한 입주 기업을 넘어, 성공 후에도 상당수가 지역을 떠나지 않고 후배 창업자들에게 기술 노하우와 자본을 수혈하는 '앵커 벤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대덕의 자생력은 2세대 기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오름테라퓨틱은 항체-약물 접합체(ADC) 플랫폼으로 글로벌 빅파마와의 대규모 계약을 체결하며 차세대 성공 사례로 떠올랐다. 이처럼 1세대 앵커 벤처 → 2세대 후속 창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대덕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보여주며, 기술력 하나로 승부하는 바이오 스타트업들에게 대전은 단순한 입지가 아닌 '성지'와 같은 상징성을 갖는다.대덕에서 탄생한 바이오 벤처들의 성장 경로를 들여다보면 공통적인 패턴이 보인다. KAIST·출연연 원천기술 → 스핀오프 창업 → 정부과제·엔젤투자 → 글로벌 라이선스아웃이라는 명확한 궤적을 그리며, 같은 캠퍼스 내 선배 연구자·동료 창업자·기술이전조직과의 비공식 네트워크가 핵심 성장 동력이다. 이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 자본'이야말로 대덕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형 자산이다.동시에 대덕은 분명한 과제도 안고 있다. 임상 시험과 상업화 단계에서 필수적인 대형 병원 인프라와 글로벌 규제기관과의 접점이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해외 인재 유치를 위한 교육·문화·정주 여건 또한 충분히 갖춰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연구 단계는 대덕에서 진행하되, 임상·사업화 단계에 들어가면 서울·수도권으로 조직과 의사결정 중심이 이동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대덕의 기술 생태계와 수도권의 병원·자본·시장 네트워크를 유기적으로 잇는 ‘이중 거점’ 전략에 대한 논의가 한층 더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대덕의 사례는 클러스터의 본질이 거대한 예산 투입이 아닌 '사람과 기술의 자발적 결합'에 있음을 잘 보여준다. 2026년 현재, 대덕은 '바이오 벤처의 요람'을 넘어 다수의 기술이전·라이선스 아웃 사례를 통해 글로벌 수준의 기술 수출 거점으로 위상이 커지고 있으며, 이는 인위적 조성 모델이 가질 수 없는 강력한 자생력을 보여준다.송도, 글로벌 CDMO와 '외자 소부장'의 전략적 요충지삼성바이오에피스 사옥. [사진 삼성바이오에피스]대덕이 기술 창업의 성지라면, 인천 송도는 대한민국 제조 경쟁력의 정점을 보여주는 곳이다. 이곳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롯데바이오로직스라는 세계적 수준의 위탁개발생산(CDMO) 앵커 기업을 중심으로 '글로벌 제조 및 공급망 생태계'를 구축했다. 송도는 바이오시밀러 연구개발(R&D)의 메카이기도 하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송도 5공구 통합 신사옥을 기반으로 휴미라·키트루다 등 블록버스터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하며 11개 제품을 글로벌 시장에서 허가 받았다. 셀트리온 역시 램시마·트룩시마 시리즈로 바이오시밀러 세계 1, 2위를 석권하며 송도의 바이오시밀러 클러스터를 더욱 공고히 했다.대학·병원 인프라도 송도의 완성도를 높인다.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에서 운영하는 바이오공정인력양성센터(434억 투자, GMP 실습실 완비)는 삼성바이오·롯데바이오 등 앵커 기업에 맞춤형 인재를 공급하며 산학연 협력을 주도한다. 송도세브란스병원(800병상, 2026년 개원 예정)은 바이오 임상·산업화 거점으로서 연세사이언스파크와 연계해 산·학·연·병 생태계를 완성할 전망이다.특히 송도의 진정한 차별점은 항공 물류의 요충지라는 지리적 강점에 있다. 바이오 원부자재와 시약의 신속한 수급이 필수적인 산업 특성상, ▲싸이티바(Cytiva) ▲써모피셔(Thermo Fisher) ▲싸토리우스(Sartorius)와 같은 글로벌 장비·원부자재(소부장) 기업들이 송도를 거점으로 선택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이들 외자사들은 단순한 공급처를 넘어 국내 제조 기업들과 유기적인 협력 관계를 맺으며 송도를 '바이오 생산의 메카'에 가깝게 완성시켰다. 최근 K-NIBRT와 같은 전문 인력 양성 기관까지 가세하며 송도는 제조-물류-인재가 결합된 거대한 산업 밸류체인을 안정적으로 안착시켰다.송도의 위상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생산 클러스터와의 비교가 유효하다. 아일랜드의 코크·셔논, 싱가포르의 투아스 바이오파크 등은 이미 다국적 제약사의 대규모 생산시설과 관련 소부장 기업이 집적된 선도 사례로 꼽힌다. 이들 지역 역시 ▲항만·공항과의 근접성 ▲법인세·규제 측면의 우호적 환경 ▲숙련된 제조 인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교육 시스템을 바탕으로 성장해 왔
원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