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명 찾던 예산시장…'관광 명소' 된 비결

더본코리아 선투자…LG전자 등 외부 기업 합류작년 논란에 방문객 급감…상인 자생력으로 버텨올해 주말 방문객 4만명…누적 1000만명 돌파그래픽=비즈워치지난 26일 오후 충남 예산상설시장(예산시장) 골목 곳곳에 고기 굽는 냄새가 퍼졌다. 평일 낮인데도 20·30대 방문객들이 시장 중앙의 광장에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앉아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떡볶이, 찜닭 등의 음식을 먹고 있었다.중국어·일본어가 섞인 대화 소리도 들렸다. 불과 4년 전 하루 방문객 10여 명에 불과했던 이 전통시장은 올해 5월 누적 관광객 1000만명을 돌파하며 관광 명소로 탈바꿈했다. 더본코리아와 예산군·지역 상인의 협업의 결과였다.52년째 한 자리를 지켜온 김지준 대흥상회 점주는 "예전엔 '꼬부랑 할머니'들만 왔는데 지금은 젊은 사람들로 가득하다"며 "미국·베트남·중국·일본 안 오는 데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를 둘러싼 논란으로 방문객이 급감하며 위기를 맞았지만 상인들이 스스로 버티면서 시장은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마중물 된 기업더본코리아가 예산시장 개발에 나선 지난 2022년 당시 예산시장은 상설시장임에도 하루에 10명 남짓 찾을 만큼 한산했다. 예산군은 50년 역사를 가진 이 시장을 현대화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한 상태였다. 지붕을 다시 씌우는 등 시장을 깔끔하게 정비하겠다는 계획이었다.하지만 백종원 대표가 말렸다. 낡고 허름한 시장의 옛 정취 자체가 관광 자원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백 대표는 "다른 시장처럼 천편일률적으로 고칠 필요가 있냐"며 "조금만 손보면 사람들이 와서 사진 찍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설득했다.예산군의 동의를 받은 후 시장 개발에 나서려니 뜻밖의 난관이 기다렸다. 분양형 시장이다 보니 가게마다 주인이 달랐는데 수소문해도 주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주인을 모르는 채 방치된 가게도 수두룩했다.26일 오후 예산상설시장 광장에서 관광객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 사진=정혜인 기자 hij@우여곡절 끝에 점포 주인들을 찾아내 동의를 얻고 나서야 더본코리아는 예산시장 리모델링에 착수할 수 있었다. 예산시장 내 중앙부를 광장으로 개편하고 바닥을 평탄화하는 작업을 거쳤다. 냉난방 시설, 화장실 등도 설치했다. 매장 일부 매입과 인테리어에 더본코리아가 들인 비용만 총 50억원이 넘는다.시장 내 상인들을 설득하는 일도 어려웠다. 건어물을 파는 김지준 대흥상회 점주는 마지막까지 예산시장 재생 사업을 반대하던 상인이었다. 50년 가까이 한 자리를 지켜온 그는 처음엔 기업이 들어온다는 게 영 탐탁지 않았다. 백 대표는 일단 리모델링을 한 후 장사가 잘 되지 않으면 모든 걸 원복해 주겠다고 약속하며 그를 설득했다. 김 점주는 "처음에는 긴가민가 했다"며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지금은 백 대표의 조언으로 반건조 오징어 등 건어물을 직접 구워 판매하는 메뉴를 추가했다. 단순히 건어물을 파는 가게에서 즉석에서 구운 오징어를 맛볼 수 있는 명소로 탈바꿈한 셈이다. 올해 75세인 그는 체력 문제로 곧 가게를 넘길 예정이다. 그는 "장사가 너무 잘 돼서 팔기도 아깝다"는 말을 남기며 웃었다.새로운 기회더본코리아는 예산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메뉴 개발에도 공을 들였다. '예산 사과'와 '꽈리고추' 등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메뉴를 개발해 시장 안 매장들에 보급했다. 단순히 음식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예산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만들겠다는 취지였다.예산시장에 힘을 보탠 건 더본코리아만이 아니었다. LG전자는 ESG 차원에서 예산시장 중앙에 대형 스크린을 기부했다. 덕분에 시장을 찾은 방문객들에게 예산 특산물과 먹거리 등을 홍보하는 영상을 상시 틀 수 있게 됐다.새롭게 탄생한 예산시장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연간 방문객이 400만명에 육박하며 전국 지자체 브랜드 평판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전국 각지에서 젊은 창업자들이 몰려들었고 백 대표의 유튜브 채널을 통한 홍보 효과까지 더해지며 예산시장은 전통시장이 관광 거점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대흥상회 김지준 점주. / 사진=더본코리아시장 안에는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가진 상인들이 새 출발을 하고 있다. 신광정육점을 운영하는 김국헌 점주는 '프로듀스101 시즌4'에 출연한 아이돌 가수 출신이다. 10여 년을 꿈을 쫓다 자리를 잡지 못했던 그는 요리 경연 프로그램 '백종원의 레미제라블'을 거쳐 더본코리아의 지원으로 예산에 정착했다.그는 "경영부터 재료 손질까지 처음부터 다 더본코리아가 도와줬다"며 "나중엔 저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친구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옛날구구통닭의 강호일 점주는 허리 수술을 받으며 예산시장 내 3년 전 가게를 접었다가 지난달 다시 같은 자리로 복귀했다. 강 점주는 "공황장애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백종원 대표가 '사람을 만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력하게 권했다"고 말했다.'대산만두'와 '백종원의 예산샌드'를 운영하는 김미선·김미정 점주는 자매 사이다. 더본코리아의 레시피 지원을 받아 대산만두를 운영하다가 백 대표의 조언에 힘입어 가게 한쪽에 '샌드' 가게를 열었다. 이들은 "가게 한쪽은 식사를 하는 곳이었는데 백 대표가 '이 자리가 너무 아깝다'며 인테리어를 해주겠다고 했다"며 "그래서 샌드 가게를 열게 됐다"고 설명했다.시장의 자생력하지만 지난해 상황은 급반전됐다. 백 대표를 둘러싼 각종 논란이 터지면서 악성 민원과 유튜버들의 집중 공세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예산군청 공무원 100여 명이 경찰·검찰 조사를 받았고 더본코리아 외식산업개발원 직원들도 상당수가 이탈했다. 방문객은 급감하면서 시장은 순식간에 멈춰섰다.시장 상인들도 어려운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김미선 점주는 "어떤 사람들은 시장에 찾아와 12월까지 망하게 하겠다고 떠들고 다녔다"며 "여기서 장사하는 사람들 생계가 걸린 문제인데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시장이 한창 잘 되던 시절 비싼 임대료를 주고 들어온 개인 상인들도 손님이 줄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대산만두와 백종원의 예산샌드의 김미정 점주는 "1억~2억원씩 주고 들어온 사람도 있는데 손님이 줄어드니까 그분들이 제일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논란이 불거진 후 백 대표는 예산시장을 찾지 못했다. 방문했다가 오히려 상인들에게 피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백 대표가 시장을 찾지 못하는 사이 상인들은 자구책을 찾았다. 장사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격을 올리는 대신 위생과 친절에 더 신경 쓰며 손님들을 붙잡았다.예산상설시장 신광정육점의 김국헌 점주. / 사진=정혜인 기자 hij@이런 '버티기'가 가능했던 건 낮은 비용 구조 덕분이기도 했다. 더본코리아는 현재 예산시장 내 직접관리매장과 간접관리매장을 합쳐 26개 매장을 지원하고 있다. 직접관리매장의 임대료는 월 30만~50만원 수준으로 고정돼 있고 로열티도 없다. 강호일 점주는 "인테리어부터 집기까지 1억4000만원을 백 대표가 10원도 안 받고 해줬다"고 강조했다.다행히 올해 들어 방문객이 다시 반등하면서 시장은 회복세를 타고 있다. 최재구 예산군수는 "군은 주변 도로와 화장실 정비만 해줬을 뿐인데 나머지는 자생적으로 이루어졌다"며 "지금 주말이면 4만명이 찾아오는데 여기서 희망을 보고 있다"고 밝혔다.더본코리아는 예산시장의 모델을 전국으로 확산해 간다는 계획이다. 더본코리아 관계자는 “예산시장의 경험을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이 가진 고유한 맛과 이야기, 산업과 공간을 바탕으로 지역별 맞춤형 모델을 만들어가는 것이 핵심”이라며 “지역민과 지자체,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지속 가능한 지역개발 모델을 전국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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