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원료’ 한 우물…‘클린 뷰티’ 타고 好好 [K뷰티 숨은 거인....

선진뷰티사이언스최근 미국 아마존과 대형 유통 채널에서 한국산 자외선 차단제들이 연일 매진 사례를 기록하고 있다. 끈적임 없이 스킨케어 기능까지 갖춘 K뷰티 선크림의 품질에 전 세계 소비자가 지갑을 연다. 이 열풍을 구조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숨은 주역은 선크림의 뼈대가 되는 핵심 원료를 연구하고 배합하는 뷰티 소재 기업이다.선진뷰티사이언스는 K뷰티 선크림 돌풍의 핵심이다. 2023년 매출액은 726억원, 2년 만인 지난해엔 매출액 807억원으로 외형 확장을 이뤘다. 자체 스킨케어 브랜드 ‘아이레시피’의 ‘세라마이드 유자 바이오 클렌징 오일’. (선진뷰티사이언스 제공)선진뷰티사이언스 어떤 회사?1978년 화학 공장으로 시작선진뷰티사이언스의 시작은 화장품이 아니었다. 1978년 선진화학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이 회사의 초기 주력 제품은 계면활성제였다. 물과 기름을 섞이게 해주는 계면활성제는 세제나 샴푸 등 생활용품에 널리 쓰인다. 하지만 범용 화학 소재 시장은 진입 장벽이 낮고 가격 경쟁이 치열해 장기적인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다.기술 장벽이 높고 꾸준한 수요가 발생하는 화장품 특수 소재 기업으로 방향을 튼 것은 1990년대 후반의 일이다. 선진뷰티사이언스는 1997년 국내 최초로 화장품 특수 원료인 실리카 비드 양산에 성공하며 변화의 기틀을 마련했다.이성호 선진뷰티사이언스 대표는 “1999년 당시 정보통신기술이 황금기를 구가하던 시절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 제조업에 합류했을 때 주변의 우려가 많았지만, 당시 한국 화장품 소재 산업이 작은 틈새 영역으로 방치돼 있던 덕분에 오히려 마음껏 성장하고 파급력을 만들 공간을 얻을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이후 선진뷰티사이언스는 2004년부터 글로벌 럭셔리 뷰티 브랜드들을 차례로 고객사로 확보하며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전체 매출의 약 80%를 수출로 벌어들이고 있다.급격한 성장세 비결은하와이 산호초 보호법이 도화선최근 수년간 선진뷰티사이언스의 매출이 급격히 뛴 데는 전 세계 화장품 시장을 강타한 클린 뷰티 트렌드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 하와이를 비롯한 해양 휴양지에서 산호초를 하얗게 말라 죽게 하는 유기계 자외선 차단제 성분 사용을 법으로 금지하면서 시장 판도가 바뀌었다. 자외선 차단제는 화학 성분이 자외선을 흡수해 열로 배출하는 유기계 방식과 피부 겉면에 얇은 광물성 막을 씌워 자외선을 거울처럼 물리적으로 튕겨내는 무기계 방식으로 나뉜다. 유기계 방식은 피부 자극과 해양 생태계 교란 문제가 불거진 반면, 무기계 방식은 인체에 흡수되지 않아 안전하다.선진뷰티사이언스가 주력으로 생산하는 산화아연과 이산화티타늄이 바로 이 무기계 자외선 차단제의 핵심 원료다. 미국 식품의약국은 2019년 이후 이 두 성분만을 안전하고 효과적인 성분으로 인정하고 있다. 글로벌 뷰티 브랜드들이 앞다퉈 무기계 원료를 찾기 시작하면서, 2019년 세계 최초로 막대형 논나노 산화아연을 개발해 양산 체제를 갖춘 선진뷰티사이언스에 주문이 집중됐다. 한 번 처방에 채택되면 원료 교체가 쉽지 않은 소재 사업 특유의 잠금 효과가 맞물리며 자외선 차단 소재 부문은 안정적인 실적의 중심축이 됐다.더불어 선진국 기준에 맞춘 공장 설비를 갖춘 것도 호재가 됐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자외선 차단제를 일반의약품으로 엄격하게 규제한다. 핵심 원료를 생산하는 공장부터 완제품을 조립하는 공장까지 모두 미국 당국이 요구하는 제조·품질 관리 기준을 지켜야 한다.선진뷰티사이언스는 이를 역으로 이용해 경쟁사를 따돌렸다. 충청남도 장항 국가산업단지에 2019년 국내 화장품 소재 기업 최초로 미국 당국의 현장 실사를 무결점 판정으로 통과한 공장을 세운 데 이어, 지난해에는 180억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해 일반의약품 전용 화장품 완제품 제조공장(F4)을 준공했다. 대규모 자금을 들여 완제품 공장까지 지은 이유는 명확하다. 미국 시장 진출을 꾀하는 수많은 뷰티 브랜드들이 현지 기준을 통과한 공장을 찾지 못해 병목 현상을 겪고 있다는 점을 파고든 것이다.최근 미국 화장품 규제 현대화법 시행으로 중소형 제조사들의 인증 유지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검증된 업체로 발주가 쏠리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이성호 대표는 “선진뷰티사이언스는 직접 만든 승인 원료를 활용해 4~6개월이라는 단기간 내에 미국 규격에 맞는 자외선 차단 완제품을 생산하는 수직계열화를 이뤘다”며 “중간 마진을 줄여 타 기업 대비 10% 이상의 높은 영업이익률을 달성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말했다.이런 선행 투자 덕에 새로운 규제가 나와도 빠른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클린 뷰티 트렌드는 최근 미세 플라스틱 규제로도 이어지고 있다. 각국 정부가 해양 오염의 주범인 화장품 내 미세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자, 선진뷰티사이언스는 모래의 주성분인 실리카를 활용해 미세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친환경 실리카 비드를 개발했다. 이 소재는 최근 4년간 연평균 25.3% 성장하며 2024년 299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핵심 효자 품목이 됐다. 의학의 제1원칙인 ‘첫째로 해를 끼치지 말라’는 철학을 소재 개발에 적용한 결과다.비교적 최근에 뛰어든 브랜드 사업도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점도 눈길 끈다. 사실 원료·제조사가 B2C 사업을 하긴 쉽지 않다. 자체 스킨케어 브랜드 ‘아이레시피’는 처음에는 원료의 우수성을 입증하기 위한 테스트용으로 화장품을 제조했다가, 최소 주문 수량 때문에 남는 물량을 브랜드화한 것이 시초다.그런데 외부에서 원료를 사 올 필요 없이 자체생산하는 최고급 소재를 아낌없이 담아낸 진정성이 통했는지 아이레시피 완제품 매출은 2024년 3억원대에서 지난해 14억원대로 급성장했다. 현재 국내 올리브영 매장과 일본 아마존 등으로 유통 채널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 매출 800억원을 넘긴 뷰티 소재 기업 선진뷰티사이언스. (선진뷰티사이언스 제공)과제는 없나ODM·임상 신사업 조기 안착선진뷰티사이언스도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대규모 시설 투자에 따른 재무 건전성 관리와 환위험 방어가 필수적이다. 완제품 공장 증설 등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지난해 말 기준 총차입금이 683억원으로 증가한 만큼 이자율 변동에 따른 금융 비용 부담을 철저히 낮춰야 한다. 매출의 절대다수를 수출에 의존하고 있어 환율 변동이 수익성에 미치는 위험 노출도를 줄이는 전략도 요구된다.또한 신규 진출한 완제품 제조 사업과 임상 센터의 조기 안착이 시급하다.박종대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180억원을 투입한 완제품 공장의 초기 비용을 상쇄하려면 단기간에 가동률을 끌어올려야 하며 새롭게 추가한 임상 개발 연구 역시 대형 브랜드사 유치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미국 화장품 규제 현대화법 시행 등 주요국들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화장품 규제라는 비관세 장벽을 높이고 있는 점도 변수다.이에 선진뷰티사이언스는 해외 영업에 더 공들인다. 2022년 한국 화장품 소재사 최초로 이탈리아 법인을 세웠고, 2024년에는 미국 법인을 설립, 주요 시장에 직접 뿌리를 내렸다. 중간 유통 단계를 건너뛰고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본사와 직접 소통하며 맞춤형 원료를 제안하는 컨설팅 영업이 가능해졌다.이성호 대표는 “애플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통합해 혁신을 이끌었듯, 화장품 소재라는 소프트웨어와 임상연구, 제조, 자체 브랜드라는 하드웨어를 통합한 뷰티 업계의 애플이 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60호(2026.05.20~05.26일자) 기사입니다][Copyright (c) 매경AX.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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