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패키지’ 유고연방 국가…‘선진국’ 슬로베니아에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는 관광 중심 경제에서 제조·기술 기반 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2026년 4월 관광객들이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의 구시가지를 둘러보고 있다. REUTERS크로아티아에서 근무하다보면 슬로베니아는 마치 같은 동네에 사는 이웃처럼 느껴진다. 두 나라 수도인 자그레브와 류블랴나의 거리는 약 140㎞로 자동차로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2023년 크로아티아의 솅겐조약 가입 이후 국경 통제가 사실상 사라지면서 이동의 심리적 장벽도 크게 낮아졌다. 국내 크로아티아 관광 코스에는 슬로베니아의 블레드호수가 빠지지 않는다. 알프스산맥 남동부인 율리안알프스의 풍경을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연계 관광지로 꼽힌다. 생활과 문화 전반에서 두 국가는 이미 하나의 생활권으로 작동하고 있다.두 국가는 하나의 ‘패키지’비즈니스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는 계약 체결 때 하나의 패키지처럼 묶이는 경우가 많다. 인구가 각각 약 386만 명, 212만 명 수준인데 단일 시장으로 공략하기에는 시장 규모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협상 단계에서 대부분의 바이어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353만 명)까지 포함해 독점권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다.글로벌 기업들도 자그레브나 류블랴나 중 한 곳에 거점을 두고 인접 시장을 동시에 관리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는 국경 인접 지역 물류센터 운영을 통한 비용 절감 효과 외에 서로 소통 가능한 언어·문화적 유사성으로 마케팅 전략을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 지역을 이해하려면 유고슬라비아라는 공통의 역사적 배경을 빼놓을 수 없다. 1945년부터 1991년까지 존재했던 사회주의국가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유고연방)은 요시프 브로즈 티토 대통령의 비동맹외교를 바탕으로 냉전시대에 독자적 위상을 선보였다. 옛 소련과 서구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제3세계 국가들과 협력관계를 확대했다.산업화 과정에서도 서구 기술을 부분적으로 도입하면서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독특한 경제모델을 구축했고 이로 인해 제조업 기반이 비교적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80년 티토 사망 이후 연방 구심점이 약화하면서 민족 간 갈등이 표면화됐고, 1991년부터 이어진 독립선언과 내전을 거치며 연방은 해체됐다. 이후 현재 7개국으로 분리돼 각자의 발전 경로를 걷고 있다.이 가운데 가장 빠르게 선진국 반열에 진입한 국가는 슬로베니아였다. 2025년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약 3만7천달러(약 5422만원)로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인구 212만 명의 소규모 경제라는 점도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자체 산업 경쟁력과 제도적 안정성이 이를 뒷받침했다. 제조업 비중이 GDP의 약 20% 수준을 유지하며 성장 기반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제약·자동차부품 등 고부가가치 산업 중심의 수출 구조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비교적 견조한 성장 흐름을 유지했다.크로아티아의 1인당 GDP는 유럽연합(EU) 평균의 80% 수준인 약 2만3800달러다. 이 격차의 출발점은 전쟁이었다. 슬로베니아는 1991년 독립 당시 열흘간의 무력 충돌 이후 빠르게 안정을 찾은 반면, 크로아티아는 보스니아전쟁까지 이어지며 약 5년간 핵심 기반시설이 크게 파괴돼 경제회복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같은 시기 한국 기업들의 유럽 진출이 본격화됐지만, 이러한 불확실성으로 투자는 헝가리·체코·폴란드 등으로 집중됐다. 현재 이들 동유럽 국가는 국내 제조사들의 핵심 생산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초기 외국인 투자 유치 시점의 차이가 장기적인 산업 격차로 이어진 것이다.더 근본적인 차이는 EU 편입 속도로 설명할 수 있다. 슬로베니아는 2004년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시작으로 2007년 유로존과 솅겐조약,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까지 빠르게 서구 경제권으로 통합됐다. 크로아티아는 2013년 EU 가입 이후 2023년 유로존과 솅겐조약에 합류했는데 이 10여 년의 시차가 산업 고도화 속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슬로베니아는 유고 시절의 제조 기반을 유지하면서 민영화와 구조개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제약기업 레크(Lek)는 2002년 노바티스에 인수되며 글로벌 공급망에 편입됐고, 크르카(Krka)는 2025년 매출 20억유로(3조4500억원)를 넘어서는 유럽 대표 제네릭 제약사로 성장했다. 가전기업 고렌예(Gorenje)도 25억유로 규모의 매출을 기록하며 현재 중국(하이센스가 2018년에 인수)의 유럽 전략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다.자동차산업에서는 르노 완성차를 생산하는 레보즈를 비롯해 아드리아모빌(Adria Mobil, 슬로베니아), 카르타고(Carthago, 독일) 등 다양한 기업들이 틈새시장 내 경쟁력으로 유럽 공급망에 깊숙이 통합돼 있다. 최근에는 지리(Geely) 등 일부 중국 자동차기업들이 슬로베니아에 물류 거점을 운영하며 유럽 시장 진입을 확대하고 있다.10년간 신용등급 6단계 상승출발은 늦었지만 가장 빠르게 추격하고 있는 국가가 크로아티아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 기준으로 국가 신용등급은 2026년 에이(A)등급까지 지난 10년간 무려 6단계나 상승했다. 최근 몇 년간 경제성장률도 EU 평균을 2배 이상 웃돈다. 특히 관광 중심 경제에서 제조·기술 기반 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전기 하이퍼카 제조사 리막(Rimac)은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과 협력하며 전기차용 배터리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또한 로보택시 상용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인데 2027년이면 자그레브 시내에서 자율주행 차량을 호출할 수 있다.물류 분야에서는 현재 슬로베니아의 코페르항이 크로아티아 리예카항(약 70만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대분))의 두 배 수준인 약 127만TEU(2025년 기준)를 처리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 물동량이 90만 대 수준으로 유럽 내 주요 자동차 물류 허브로 기능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등 내륙 국가와의 철도 연결이 안정적으로 구축돼 있어 중동부 유럽으로의 접근성이 뛰어난 것도 강점이다.그러나 향후 판도는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확장 여력이 제한적인 코페르항에 비해 리예카항의 개발 잠재력이 크기 때문이다. 2025년 9월 리예카게이트웨이(RGW) 프로젝트 1단계가 완료돼 처리 능력이 65만TEU까지 확대됐고, 향후 2단계가 완료되면 100만TEU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여기에 기존 리예카~카를로바츠~자그레브 저지대 철도 구간 전체가 복선화되고 고속화된다면 내륙 운송 효율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크로아티아 리예카항은 슬로베니아의 코페르항보다 현재 처리 능력이 적지만 개발 잠재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크로아티아 항만청 누리집에너지 분야에서도 양국은 긴밀히 연결돼 있다. 유고연방 시절(1970년대)에 건설된 크르슈코(Krško) 원전은 양국이 50 대 50 지분으로 공동 운영하는 대표적인 인프라로, 크로아티아는 이곳에서 내부 소비 전력의 15~20%를 공급받는다. 현재 1호기는 수명연장(2043년→2063년)을 통해 계속 운영할 계획이다. 2호기 건설은 기존 부지를 확장한 장소로 정했다. 현재 프랑스전력공사(EDF)와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기술 타당성 조사 결과를 검토 중인데, 최종 투자 결정은 2028년에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경제 격차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2025년 기준 평균 순임금은 슬로베니아 1653유로(약 285만5천원), 크로아티아 1511유로로 명목 기준 격차는 약 150유로 수준이다. 일부 분석에선 총임금 기준으로는 슬로베니아가 더 높지만, 세금과 사회부담금, 주거비와 공과금 등을 고려한 실질구매력 기준에서는 크로아티아가 더 높은 수준을 보인다는 평가도 있다.최근 4년 평균 경제성장률에서는 크로아티아가 6% 수준으로 슬로베니아(3%대)를 크게 상회하며 추격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는 관광 회복뿐 아니라 EU 기금 유입과 내수 확대, 그리고 점진적 산업구조 개선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현재 두 국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11개사가 있다. 슬로베니아는 동유럽 물류의 거점으로 코페르항에 현대글로비스(2006년)와 포스코가 코페르항과 합작한 POSCO-ESDC(2007년)가 일찍부터 자리를 잡았다.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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