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즉각 교섭 나서라"…노란봉투법 여파, 깊어지는 노사 갈등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와 포스코사내하청광양지회가 6월22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청 교섭과 직고용 특별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포스코사내하청광양지회][디지털데일리 김유진기자]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이 시행 100일을 넘기면서 하청노조들이 원청을 상대로 직접 교섭을 요구하는 사례가 산업계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최근 중앙노동위원회가 포스코와 한화오션의 하청노조 원청 교섭권을 잇달아 인정하면서 철강·조선업계를 중심으로 하청노조들의 교섭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반면 기업들은 법적 판단 절차가 최종 확정되지 않았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어 노사 간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는 모양새다.◆ 포스코부터 현대제철까지…하청노조 "즉각 교섭 나서야"22일 업계에 따르면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 17일 포스코 교섭단위 분리 사건 재심에서 경북지방노동위원회의 결정을 유지했다. 이에 포스코는 한국노총 금속노련·민주노총 금속노조·민주노총 플랜트건설노조 등 최소 3개 노조와 각각 교섭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박병준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수석부지부장은 이날 포스코 광양제철소 본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포스코는 이제 책임을 미루거나 회피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서 교섭에 나서야 할 때"라며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당사자와의 책임 있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반면 포스코 측은 교섭을 위한 정식적인 절차를 밟고 있다는 설명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교섭을 거부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라며 "교섭 신청 접수 후 정식 절차가 진행되면 교섭에 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후 행정소송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별도로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포스코뿐만이 아니다. 지난 15일 중노위는 한화오션을 사내 급식·시설관리 등을 담당하는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사용자로 인정했다. 생산 현장과 직접 관련이 없는 급식·청소·시설관리 등 간접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하청노조까지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는 판단이 나온 것이다.이에 금속노조 경남지부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웰리브지회는 이날 경남지방노동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청 교섭 거부를 규탄하며 쟁의권 확보 절차에 돌입했다고 밝혔다.강인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은 "한화오션은 노동위원회의 판단마저 무시하며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며 "오늘부터 10일 안에 한화오션은 대화와 상생을 선택할 것인지, 더 큰 갈등과 사회적 책임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철강업계에서도 유사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은 오는 24일 하루 파업에 돌입하고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앞에서 원청 교섭을 요구하는 결의대회를 개최한다. 앞서 중노위는 현대제철이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의 교섭 상대, 즉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정한 바 있다.이처럼 하청노조들의 원청 교섭 요구가 잇따르는 배경에는 지난 3월 시행된 노란봉투법이 자리하고 있다.노란봉투법은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 사용자로 인정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노동계는 이를 근거로 원청이 임금과 복지, 안전 문제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직접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원청 사용자성 어디까지?…기업 "법적 불확실성 여전", 관권은 대법원반면 기업들은 법적 불확실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하청노조와 교섭이 늘어날 수록 기존 정규직 노조와의 노노(勞勞) 갈등도 발생할 수 있는 등 여러 측면에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업계 관계자는 "현재 하청노조들의 원청 교섭 요구는 중노위나 지노위의 판단에 근거하고 있지만 최종적인 사용자성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라며 "결국 대법원까지 올라가 전체 사안에 대한 최종 결정이 나야 방향성이 보다 명확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이어 "중노위나 지노위 판정만을 근거로 원청이 즉각 교섭에 응해야 한다는 노조 주장에 따라 여론이 형성되는 것 자체가 기업에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전문가들은 최근 노동위원회가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판단을 연이어 내리고 있지만 관련 법리가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만큼 향후 대법원 판단이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란봉투법의 취지는 하청 노동자의 임금이나 복지, 안전 등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주체가 원청이라면 원청이 교섭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라며 "원청이 나서지 않으면 근로조건 개선이 어려운 경우 사용자성 인정 범위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다만 현재는 법리가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과도기라는 분석이다. 전 교수는 "문제는 현재로서 아직 (노란봉투법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적인 판례가 없는 상태라는 점"이라며 "향후 포스코 사례 등 원청 사용자성 사건들이 대법원까지 올라갔을 때 어떤 기준을 제시하느냐가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대법원이 노동위원회의 판단을 지지할 경우 원청 사용자성 인정과 원청 교섭 요구가 더욱 확대될 수 있는 반면 대법원이 일부 사건에 제동을 걸 경우 현재 확산하고 있는 원청 교섭 요구 움직임도 조정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전 교수는 "국내 기업들은 그동안 도급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작업 과정과 근로조건에 상당 부분 관여해 온 측면이 있다"며 "앞으로는 기업이 하청 근로조건에 계속 개입하면서 교섭 의무를 부담할 것인지, 아니면 협력업체의 자율성을 확대해 전통적인 도급 관계로 전환할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이어 "노동위원회가 교섭하라고 판단했다면 원칙적으로 교섭에는 응해야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향후 행정소송 결과를 고려해 교섭 속도를 조절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며 "노란봉투법 시행 초기인 만큼 원청 사용자성과 교섭 의무 범위를 둘러싼 갈등과 혼란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현재는 제도상 과도기라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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