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에 외식은커녕 떨이상품만 찾는다’···하반기엔 더 오를 수.....

조류인플루엔자 등의 영향으로 닭고기 가격이 고공행진 중인 23일 서울 한 마트에서 시민이 매대를 보고 있다. 한수빈 기자#경기 과천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김모씨(35)는 얼마 전부터 대형마트에서 장을 볼 때 오래 진열돼 할인하는 채소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든 채소를 사기가 꺼려졌지만 익혀 먹으니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김씨는 주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하루 전인 격주 토요일 늦은 오후에 몰아서 장을 본다. 이때가 할인 폭이 가장 커서다.김씨는 아이들 음식 재료로 많이 사용하는 미국산 달걀을 사기 위해 지난 주말 아침 ‘오픈런’을 마다하지 않았다. 국산은 30구 한 판이 1만1000원인 반면 미국산은 5880원이어서 반값이었다. 김씨 집에선 1주일에 보통 계란 한 판을 쓴다. 김씨는 “아이들 건강을 생각하면 운송 기간이 짧은 국산 달걀을 사고 싶지만 가격 차가 너무 커서 어쩔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40대 여성 장모씨는 올해 들어 외식을 한 적이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가끔 집에서 배달앱을 통해 시켜먹던 치킨, 족발 등 배달음식도 최근엔 냉동제품을 구입해 집에서 간단히 조리해 먹기 시작했다. 채소 등 신선식품만 동네 슈퍼마켓에서 소량을 구입하고,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음식재료는 온라인 몰에서 할인할 때 많은 양을 사서 쟁여놓는다. 장씨는 “단골 백반집도 밑반찬 수가 줄어드는 걸 보고 밖에서 사먹는 게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육아를 병행하며 음식을 해먹는 게 쉽지 않지만, 이거라도 아끼지 않으면 돈을 조금도 모으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식음료·외식업체들이 원재료비와 환율, 물류비 등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상품 가격을 잇따라 인상하고 있다. 특히 6·3 지방선거 이후 이런 흐름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8.5% 상승했다. 2022년 7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9.2% 급등한 이후 3년10개월 만에 최고치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도 1년 전보다 3.1% 오르면서 2년2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생산자물가 상승이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소비자들은 외식을 줄이고 최저가 상품을 찾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롯데칠성음료는 오는 26일부터 12개 음료 브랜드의 44개 품목 출고가를 평균 5.3% 인상한다고 23일 밝혔다. 2024년 6월 이후 2년 만의 가격 인상이다. 게토레이(6.3%), 마운틴듀(6.1%), 밀키스(6.0%), 칸타타(5.7%), 펩시콜라(5.0%), 칠성사이다(4.3%), 핫식스(4.0%) 등 대표상품들의 출고가가 일제히 오른다. 이에 따라 이들 제품의 편의점, 대형마트 등 소매가도 조만간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음료산업은 나프타로 만드는 플라스틱과 알루미늄 등 포장재가 원재료비의 50% 안팎을 차지한다. 국제 알루미늄 시세(런던금속거래소)는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인상과 중동 전쟁 영향으로 인한 생산량 감소가 더해져 지난해 5월 t당 2440달러 수준에서 지난달 3670달러 수준으로 1년 만에 50%가량 올랐다. 국제 나프타 시세(산업통상부 원자재가격정보)도 같은 기간 t당 568.6달러 선에서 957.7달러 선으로 68% 상승했다. 롯데칠성은 “환율 상승으로 미국 펩시사에서 수입하는 음료 원액 등의 수입 비용이 올랐고, 유가 상승으로 물류비도 올랐다”며 “소비자 부담을 최소화하고 정부의 물가 안정 정책 기조에 동참하고자 가격 인상을 최대한 자제했으나, 생산원가 부담이 가중돼 더 이상 내부적으로 감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저가 커피 브랜드 메가MGC커피는 지난 19일 ‘할메가커피’ 3종 가격을 200원씩 인상했다. 외식 프랜차이즈 더본코리아도 이달 9일 역전우동, 한신포차, 롤링파스타, 빽보이피자, 새마을식당 등 11개 외식 브랜드의 일부 메뉴 가격을 최대 20%, 평균 11% 인상했다. 동대문엽기떡볶이 운영사인 핫시즈너는 내년 7월부터 모든 제품 판매가를 약 7% 인상한다고 전날 공지했다. 이디야커피는 지난달 6일 매장 내 스틱 커피와 커피 믹스 제품 가격을 최대 15.2% 올렸다.다른 식음료·외식업체들도 원재료비 등 부담을 더는 버티기가 어렵다고 호소하는 상황이어서 하반기에 가격 인상 흐름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생산자물가와 수입물가는 통상 2~3개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내수 중심 회사들은 롯데칠성과 동일한 이유로 다들 어려운 상황”이라며 “일단 버티면서 환율과 원재료 시세 하락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외식업체 관계자는 “원가 압박이 크지만 중동 전쟁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혼란 시기에 꼼수 인상했다는 비난을 받을까봐 일단 자체적으로 감내하고 있다”고 밝혔다.물가 상승으로 소비여력이 줄면서 서민들은 먹고 입는 비용부터 줄이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19세 이상 가구주는 가계재정 상황이 악화할 경우 가장 먼저 줄일 지출 항목으로 외식비(67.2%), 의류비(43.1%), 식료품비(40.4%), 문화·여가비(39.6%) 등 순으로 꼽았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포털 ‘참가격’을 보면 지난달 서울 지역의 주요 외식 품목 시세는 냉면 1만2615원, 비빔밥 1만1769원, 칼국수 1만38원 등으로 서민메뉴의 평균 가격도 1만원을 넘긴 지 오래다.
원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