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아티스트 심현희X주로 컬래버레이션…글과 음악을 담은 골목막걸...

취재처서 만난 ‘술 덕후’ 양조사와 의기투합칼럼 녹인 ‘우윳빛깔 막걸리’, QR코드 탑재해 실제 제품 출시“글은 이성적이지만 차갑고, 음악은 감성적이지만 휘발된다. 술은 그 사이를 연결하는 가장 감각적인 언어다.”칼럼을 음악으로 재해석하고 이를 상품과 문화 콘텐츠로 확장하는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저널아티스트 심현희는 지난해 12월 디지털 싱글 ‘쇼비뇽 블랑’을 통해 현직 기자 신분으로 싱어송라이터 데뷔에 나서며 화제를 모았다. 최근에는 에세이 ‘연결하는 인간’, 미니앨범 ‘Songs from a Real World’, 시그니처 와인을 동시에 선보인데 이어 첫 단독 콘서트를 개최하며 자신만의 ‘저널아트(Journal Art)’ 프로젝트를 선보였다.올해 초 발표한 스페셜 디지털 싱글 ‘우윳빛깔 막걸리’ 역시 이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그는 막걸리를 향한 애정과 오랜 취재 경험을 녹여낸 이 팝(Pop)한 감성의 실제 제품으로 구현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고 있었다. 이때 심현희의 레이더에 포착된 인물이 바로 전통주 업계의 ‘발효 덕후’로 불리는 박유덕 대표였다.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출연 등으로 잘 알려진 그는 충남 예산에서 전통주 브랜드 주로(JURO)를 이끌고 있다. 이 둘의 협업은 최근 노래 ‘우윳빛깔 막걸리’를 실제 막걸리 제품으로 탄생시키며 결실을 맺었다.취재 현장에서 마주한 두 ‘덕후’의 의기투합첫 만남은 예산시장 취재 현장에서 시작됐다. 자타공인 ‘술 덕후’이자 주류 관련 저서만 2권을 집필한 술 전문가 심 기자는 예산시장에 양조장이 있다는 소식에 흥미를 느껴 박 대표가 운영하는 ‘골목양조장 백술상회’를 찾아갔다.심 기자는 “가게에서 막걸리를 시음하며 대화를 나누는데 술에 대한 열정과 철학에서 통하는 부분이 많아 ‘괜찮은 양조사를 발견했다’는 확신이 들었다”며 “그날 식사 자리까지 함께하며 과거 서울신문에 연재했던 ‘심현희 기자의 술 이야기’ 칼럼과 막걸리를 주제로 만든 노래를 소개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랬더니 박 대표님이 눈을 반짝이며 ‘그럼 골목막걸리에 노래를 직접 입혀보면 어떠냐’고 제안하셨고, 식사 자리에서 협업이 결정됐다”고 설명했다.박 대표는 “막걸리를 소재로 한 기성 곡들이 있지만 이 곡들의 주제는 막걸 리가 아니라 사랑 이지 않느냐”면서 “기존의 사랑 노래가 아닌 진짜 막걸리에 집중해 쓴 가사가 돋보이는 음악이라는 점이 신선했다”며 “아티스트의 맑은 음색과 귀여운 세계관이 우리 막걸리와 완벽하게 어울릴 것 같아 흥미를 느꼈다”고 전했다. 그는 또 “돈을 벌기 위한 비즈니스보다 시도 자체가 너무 재밌어서 직원들도 함께 웃으며 곧바로 개발에 착수했다”며 “술과 노래는 떼어놓을 수 없는 완벽한 짝꿍”이라고 덧붙였다.4평 양조장에서 시작된 ‘발효 사이코’의 집념현재 주로는 전통주 애호가들 사이에서 가장 주목받는 크래프트 막걸리 브랜드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시작은 혹독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발효에 호기심이 많았던 박 대표는 대학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다. 학창 시절 용돈으로 술 만드는 재료비를 감당하기 버거워 아예 동아리를 만들 정도로 발효에 빠져 지냈다. 이를 계기로 교수들의 추천을 받아 농촌진흥청 발효식품과 연구원으로 근무한 뒤, 2017년 대전 청년몰 지원사업 공모에 선정되며 연고도 없는 대전에서 첫 창업에 나섰다.박 대표는 “창업 초기 연 매출이 1500만 원 정도였다”며 “월세 15만 원과 재료비를 내고 나면 늘 마이너스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당시 소규모 주류제조면허를 받으려면 일반음식점 면허가 필수였던 터라, 4평 남짓한 공간에서 술도 빚고 음식도 파는 초미니 브루 레스토랑 형태로 버텼다”며 “실제 술을 만드는 양조 공간은 단 한 평에 불과했다”고 말했다.사업의 전환점은 2018년 여름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출연이었다. 방송 초반 맛과 퀄리티에 대한 혹평으로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박 대표는 백종원 더본코리아의 대표의 컨설팅을 거치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 박 대표는 “‘일단 시장에서 살아남고 나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는 철학 하에 대중성을 고민하기 시작했다”며 “그렇게 탄생한 ‘골목막걸리 오리지널’은 장수막걸리를 기준으로 이보다 살짝 더 드라이하고 깔끔한 맛으로 이마트 등 대형 유통 채널에서 연간 15만 병 이상 판매되는 메가 히트 상품으로 성장했다”고 전했다.주로의 핵심 경쟁력은 ‘느린 발효’에 있다. 대량생산을 위해 3~4일 만에 인위적으로 빠른 발효를 끝내는 일반적인 방식 대신 7일까지 저온 발효하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작은 크래프트 양조장만이 유지할 수 있는 방식”이라며 “시간의 여유를 두고 느리게 빚어내기 때문에 많이 마셔도 물리지 않고 마신 뒤에도 속이 편안해 매니아층의 재구매율이 높다”고 설명했다.이후 2019년 백 대표의 제안으로 예산시장 프로젝트에 합류한 박 대표는 예산의 특산물인 쌀과 사과를 활용한 ‘사과 막걸리’를 개발, 예산시장을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기념품으로 등극시키며 로컬 상생의 아이콘이 되었다.음악을 마시고 이야기를 맛보는 오감 만족 경험심 기자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우윳빛깔 막걸리’ 콜라보 제품은 단순한 패키지 상품을 넘어 온·오프라인 통합 콘텐츠를 지향한다. 주로의 시그니처 막걸리 병목에는 특별 제작된 목탁(넥택)이 부착됐다. 이 목탁에는 심현희가 구축한 독자적 팝 세계관인 ‘화이트 파라다이스’와 막걸리를 의인화한 귀여운 캐릭터 ‘마무(Mamu)’, ‘콜리(Kollie)’의 스토리가 담겨 있다. 스마트폰으로 목탁의 QR코드를 스캔하면 노래 <우윳빛깔 막걸리>를 들을 수 있는 유튜브 채널로 즉시 연결된다. 소비자는 귀로는 세련된 음악을 듣고, 눈으로는 캐릭터 서사를 보며, 입으로는 부드럽고 친근하게 재해석된 막걸리를 마시는 오감 만족을 경험하게 된다. 이번 ‘우윳빛깔 막걸리’ 콜라보 제품은 현재 이마트를 비롯한 대형 유통 채널과 주요 온라인 사이트에서 판매 중이다.심현희는 “사람들이 점점 긴 글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 하지만 모든 콘텐츠의 뿌리에는 결국 텍스트가 있다”며 “기자로서 관찰하고 칼럼에 담아냈던 세상의 문제의식을 음악과 술이라는 대중적인 언어로 다시 번역하는 것이 저널아트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와인 프로젝트에 이어 막걸리까지 선보이게 됐는데,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술을 마시는 경험이 하나의 서사 안에서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한국 술의 길을 세계로, ‘술길’을 열다”박 대표의 회사명 ‘주로(JURO)’는 술 주(酒)에 길 로(路)를 써서 ‘글로벌로 뻗어나가는 술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중적인 제품으로 기반을 다진 박 대표의 다음 시선은 한국 전통주의 진정한 매력을 알리는 글로벌 진출과 작품성 추구에 닿아있다.박 대표는 “K-콘텐츠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만큼 한국 술 역시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며 “대기업의 대중적인 스타일보다 로컬 자원을 활용해 한국 전통주의 진정한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프리미엄 제품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발효주의 최대 한계는 이동 거리와 유통기한, 콜드체인 문제로 해외에 나가면 맛을 상실한다는 점인데, 스스로를 ‘발효 사이코’라 부를 만큼 치열하게 기술 개발에 매진해 이 벽을 깨고 싶다”며 “한국에서 마시는 맛 그대로 세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목표이며, 이제는 대중성을 넘어 내가 하고 싶었던 작품성 있는 전통주와 프리미엄 소주도 본격적으로 시도해 볼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심 기자 역시 “콘텐츠도 결국 사람들의 경험 속에서 살아남아야 의미가 있다”며 “저널아트라는 장르를 창시한 입장에서 글과 음악, 술이 서로를 확장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 콘텐츠를 계속해서 실험해 보고 싶다”고 전했다.글과 음악, 술을 하나의 유기적인 경험으로 연결하려는 두 ‘술 덕후’의 혁신적인 시도가 전통주 산업과 콘텐츠 시장에 어떤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할지 미디어와 산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강석봉 기자 ks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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