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닉스’ 다음은 삼성전기·LG이노텍?

“없어서 못 판다” 뜨거운 반도체 기판인공지능(AI) 반도체 기판 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와 범용 메모리에 이어 반도체 기판마저 품귀 조짐을 보인다. 글로벌 빅테크와 메모리 기업은 기판 업체에 투자 지원까지 하며 생산 능력 확대를 재촉한다. 국내 대표 주자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의 실적 개선 기대감도 무르익는다. 시장에서는 두 회사 모두 2022년 이후 4년 만에 올해 연간 영업이익 1조원 돌파를 전망한다. 다만, 글로벌 선두 업체의 잇단 증설과 데이터센터 병목 현상 등은 잠재 위험 요인으로 지목된다.반도체 기판이 뭐길래초미세 고속도로 역할반도체 기판은 칩과 서버 메인보드를 이어주는 얇은 판이다. 겉으로 보면 손바닥만 한 전자부품에 가깝지만, 실제 역할은 AI 반도체 안팎을 연결하는 ‘초미세 고속도로’다. AI 가속기 같은 고성능 칩은 초당 막대한 데이터를 주고받고 동시에 대량의 전력을 끌어 써야 한다. 이때 칩에서 나온 전기 신호와 전력은 기판 위 촘촘한 회로를 거쳐 서버 보드로 전달되고, 다시 메모리와 네트워크 장비, 전원부로 이어진다. 신호가 늦거나 흔들리면 연산 속도가 떨어지고, 전력 공급이 불안정하면 칩 성능을 끌어올릴 수 없다. 사람 몸으로 치면 기판은 두뇌와 몸 전체를 연결하는 신경망이자 혈관으로 보면 된다.특히, AI 반도체에서는 칩의 입출력, 즉 I/O 수가 급격히 늘어나 연결 통로의 밀도·속도, 안정성이 반도체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이 간극을 메우는 대표 기술이 FC- BGA다. FC-BGA는 ‘플립칩-볼그리드어레이’의 약자다. 플립칩(Flip Chip)은 칩을 뒤집어 붙인다는 뜻이며, BGA는 패키지 기판 아래쪽에 작은 금속 공, 즉 솔더볼이 격자처럼 촘촘히 배열돼 있다는 의미다.FC-BGA가 AI 반도체 핵심 기판으로 떠오른 데는 이유가 있다.기존 와이어 본딩은 칩 가장자리와 기판을 가느다란 금속선으로 이어 신호를 주고받는 방식이다. 플립칩은 칩 표면의 미세한 범프를 기판 쪽으로 향하게 뒤집어 붙인다. 두 방식의 차이는 전기 신호가 이동하는 ‘길’에서 나타난다. 와이어 본딩은 칩 가장자리에서 금속선을 통해 기판으로 신호가 돌아 나가는 구조다. 연결 통로가 길고 칩 주변부에 I/O가 몰릴 수밖에 없다. 플립칩은 칩 표면 전체에 촘촘히 배치된 범프를 통해 기판과 바로 맞닿는다. 신호가 우회하지 않고 아래로 곧장 내려가는 식이다. 이 때문에 전기 신호가 지나가는 거리가 짧아지고 저항·노이즈·지연이 줄어든다.이 구조는 AI 반도체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필요한 연결 단자 수가 폭증할수록 칩 가장자리만 쓰는 와이어 본딩은 병목이 커진다. 플립칩은 칩 표면 전체를 연결 면적으로 활용해 더 많은 I/O를 담을 수 있고, 전력도 여러 접점을 통해 분산 공급할 수 있다.문제는 반도체 기판 공급이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엔비디아 GPU와 구글의 텐서처리장치(TPU) 등 각종 AI 가속기에는 서버용 FC-BGA가 필수다. 조사기관별 수치는 다르지만, 글로벌 FC-BGA 시장이 2030년 전후 현재보다 두 배 안팎 커져 102억~164억달러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무엇보다 AI 반도체 수요 증가 속도를 기판 공급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AI 서버에서는 대형 GPU, HBM, 각종 보조 칩을 하나의 패키지 안에서 안정적으로 연결해야 해 기판 면적이 커지고 층수도 늘어난다. 전기 신호를 빠르게 주고받으면서 발열과 전력 손실을 제어해야 해 미세화, 적층, 평탄도, 신뢰성 기준도 높다. 범용 기판보다 생산 리드타임이 더 길고 불량률 관리도 까다롭다.공급 능력이 단기간 늘어나기 어려운 점도 병목 심화 요인으로 지목된다. 반도체 기판은 고객사 인증, 수율 안정화, 생산라인 최적화에 상당 시간이 소요된다. 서버·AI용 FC-BGA는 고객 맞춤 설계 요구가 많아 범용 제품처럼 재고를 쌓아 두기도 어렵다. 첨단 기판의 경우 소재 수급도 변수다. 고대역폭메모리(HBM)와 범용 메모리에 이어 반도체 기판마저 품귀 조짐을 보인다. 사진은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에 위치한 삼성전기 본사 사옥(위)과 LG이노텍 플립칩 볼그리드 어레이(FC-BGA) 기판. (삼성전기, LG이노텍 제공)‘품귀 부품’ 된 반도체 기판삼성전기·LG이노텍 증설 경쟁글로벌 빅테크가 사활을 건 데이터센터 증설 경쟁을 벌이면서 산업계에서는 HBM에 이어 기판이 새로운 ‘품귀 품목’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글로벌 FC-BGA 시장은 일본·대만·유럽 업체가 주도하는 과점 구조다. 지난 2023년 기준 상위 5개사의 매출 점유율은 70%를 웃돈다.이비덴·신코전기·유니마이크론·난야PCB·AT&S 등이 오랜 기간 반도체용 기판 시장을 장악해왔다. 전방 산업 무게중심이 PC와 일반 서버에서 AI 데이터센터로 이동하면서 균열이 생겼다. AI 가속기와 서버 CPU는 기존 제품보다 더 넓고 층수가 많은 대면적·고다층 FC-BGA를 요구한다. 선두 업체가 증설에 나서고 있지만, 양산까지 리드타임이 긴 데다 빅테크 입장에서는 공급망 다변화 유인이 커졌다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이 틈을 타 삼성전기와 LG이노텍 등 국내 업체에도 ‘기회의 창’이 열렸다.국내에서는 삼성전기가 선두 주자로 평가된다. 지난 2022년 국내 최초로 서버용 FC-BGA 양산에 성공한 뒤 AI 가속기, 서버 CPU, 네트워크용 고부가 기판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 LG이노텍은 같은 해 FC-BGA 사업에 진입한 뒤 초기 양산 기반을 다졌다. 지난 2024년 말 북미 빅테크 PC용 FC-BGA 양산에 들어가 추격자로 올라섰다.두 회사의 기판사업부도 존재감을 키운다. 삼성전기 패키지솔루션 부문의 올 1분기 매출은 7250억원으로 1년 전 보다 45% 늘었다. 고부가 기판 공급이 확대된 덕분이다. LG이노텍 패키지솔루션 사업도 같은 기간 4371억원의 매출을 올려 1년 전보다 16% 성장했다. 가동률도 정점을 찍을 기세다. 삼성전기 반도체 기판 생산라인 평균 가동률은 2023년 58%에서 올 1분기 86%로 올라섰다. 같은 기간 LG이노텍도 63.2%에서 91.8%로 뛰었다.삼성전기는 이미 양산 역량을 갖춘 만큼 단순 생산능력 확대보다는 고부가 기판 비중을 높이는 데 초점을 둔다. 수익성 높은 고사양 제품 비중을 키워 평균 판매단가와 이익률을 끌어올리는 전략이다. 베트남 생산법인에 12억달러 규모 추가 투자를 결정한 것도 기존 FC-BGA 생산 기반을 넓히는 동시에 고부가 제품 수요 증가에 대응하려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FC-BGA 제품 수요가 생산 능력보다 50% 이상 많은 상황”이라며 “라인 보완과 공장 확대를 병행하고 있다”고 밝혔다.후발 주자 LG이노텍은 생산체계 재편으로 추격 전략을 편다. 신기술 개발·고부가 제품 생산을 담당하는 구미 사업장과 대규모 양산과 원가 경쟁력을 기반으로 한 베트남 하이퐁 공장으로 이원화 전략을 편다. 구미 사업장을 ‘마더 팩토리’로, 베트남 증설 공장은 범용 반도체기판 생산기지로 활용한다. 이를 위해 LG이노텍은 지난 6월 4일 베트남 하이퐁시와 기판 증설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하이퐁 공장은 올 7월 착공해 내년 5월 준공 계획이다. LG이노텍은 생산지 이원화로 패키지솔루션 사업 매출을 2030년 3조원 이상으로 키우고, 영업이익은 2031년 1조원 수준까지 달성하는 게 목표다. 패키지솔루션 사업의 지난해 매출은 1조7200억원이다. 5년 뒤 이를 70% 이상 성장시키겠다는 계획이다.반도체 기판 외 다른 사업도 실적 기대를 키운다. 삼성전기는 산업용·전장용 MLCC(적층세라믹콘덴서)가 새 성장 축이다. 스마트폰 중심이던 MLCC 수요가 AI 서버와 전장으로 확산되면서 고부가 제품 비중이 커지고 있다. AI 서버에는 일반 서버보다 훨씬 많은 MLCC가 들어가 전류 흐름과 전력 안정성을 조절한다. 삼성전기는 AI 서버용 MLCC 시장에서 일본 무라타와 선두권을 다투는 한편, 우주항공용 고성능 MLCC와 실리콘 커패시터 등 차세대 제품으로 영역 확장을 서두른다. LG이노텍도 ‘코퍼 포스트(Cu-Post)’, 칩 내장형 기판 등 차세대 기술로 스마트폰용 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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